• 복된 가정(마가복음 10:1-16)
  • 조회 수: 123, 2013.02.06 18:24:27
  • 얼마전 이시형 칠순 할머니의 이혼소송이 사회적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서울 가정 법원 재판국에서 서로 해로하고 살라고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 할머니는 대법원까지 가서 이혼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대법원까지 소송을 건 이시형 할머니가 한 말은 이것입니다. "내일 죽더라도 난 오늘 이혼하고 싶다."

    이혼을 한다는 것이 이제는 우리 삶에 아주 가까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나라의 이혼 증가율이 아주 높아졌습니다. 옛날에는 미국이나 서구에서만 해당되었던 일인데 이제는 우리 삶 곁에 다가왔습니다. 신문에 난 통계를 보며는 한국 신세대 부부의 이혼율이 25%에 육박하였다고 합니다. 네 커플 중 하나가 이혼을 하는 것입니다. 굉장한 이혼율입니다. 이혼이 상식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미준에서 코리언 겔럽에 의뢰하여 결혼 생활 의식을 조사하였는데 그 물음과 응답이 이렇습니다. "이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먼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상황에 따라 이혼가능 하다가 41.4%, 이혼해도 무당하다가 1.9% 합 43.3%가 이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아주 개방적인 견해입니다. 이어서 믿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에 대한 대답이 상황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가 34.2%, 해도 무방하다가 1.7%였습니다. 교인들의 경우에도 이혼에 대한 개방적 견해가 35.9%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굉장히 높은 %가 상황에 따라서 이혼을 해도 무방하다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혼, 가정의 행복, 가정의 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늘 생기가 넘칩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축복과 환희를 가지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이혼을 해야하나? 여기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냥 사니까 사는것이지 뭐하고 살아갑니까? 어떻게 살아가세요?

    오늘 본문을 봅시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시험하여 질문을 합니다. 그 시험의 질문은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대해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이혼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잘하는 것입니까? 잘못하는 것입니까? 하는 물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리새인의 질문에 대답에 앞서 왜 이들이 예수를 시험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당신은 누구 편에 속했느냐입니다. 당신은 어느 견해를 따릅니까입니다. 그 당시 이혼에 대한 두 가지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유대 샤미이파와 자유적인 힐렐파의 견해였습니다. 자유주의 힐렐파는 이혼에 대해서 개방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습지 않는 이유로도 이혼이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밥을 태웠으므로 이혼을 했습니다. 집안 청소가 형편없었으므로, 남편에게 심하게 말대꾸를 했으므로, 길거리에서 여성들이 얼굴을 함부로 보였으므로 이혼을 당하였습니다. 요즈음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여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예날같았으면 소박맞을 여성들이 여기에도 많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보수주의 샤마이파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아내가 부정을 한 이유가 아니면 이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파에 속하냐? 바리새인들은 이혼을 가지고 인간적인 대답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시험을 성경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6-9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보십시다.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이 말씀은 원래 어디에서 나오는 말씀입니까?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혼의 문제를 인간의 해석이나 전통에 풀려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푸신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말이나 답에서 그 해법을 찾으려고 합니다만은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문제를 푸셨습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삶의 해답이 있습니다.

    삶 가운데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낙태, 환경오염, 도덕과 정의의 문제, 정치, 경제, 사회, 자녀 교육등 모든 문제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활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아주 이기적인 방법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주일 학교에 보내어 신앙생활을 하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내 남편의 불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이런 갖가지 문제들을 해결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그 선택의 기준을 세상 풍조에 두고 있습니다. 성경의 원리야 어떻든 우선 눈에 보이는 현실에 입각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할 수 없이 따라간다 하며 적당히 살아갑니다. 양심에 갈등이 있지만 가능하면 그 갈등을 느끼지 않도록 작업을 합니다. 양심을 무디게 하는 방법으로 자꾸 죄를 정당화합니다. 그래서 이혼도 상황에 따라서는 할 수 있다. 간통죄를 짓는 것도 이 세상에는 간통이란 것은 없다, 남자와 남자끼리 살고 여자와 여자끼리 사는 것도 왜 사랑하는데 못하냐? 이런 논리들을 개발해냅니다.  죄를 정당화시킵니다. 사람들의 견해를 바른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통이나 율법, 세상 풍조에 따라 해석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성경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혼의 문제, 가정의 문제를 성겨에서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이제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십시다.

    1. 이혼을 신중하게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어떻게 명하였느냐?  바리새인이 대답합니다.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어 내어버리기를 허락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하셨습니다.

    왜 모세 시대에 이혼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있기 전에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살았습니다. 너무나 방탕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것을 금하기 위해서 무슨 이유외에는 이혼하지 말라고 율법을 만든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해졌기 때문에 모세가 율법을 만들었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완악함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완악함이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갈 길로 가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뜻대로 합니다. 이것이 완악함입니다. 이런 경우는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이혼할 때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인인들은 이혼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하면서도 자기의 길로 걸어갈때가 많이 있습니다.

    전에 목회를 할 때였는데 결혼한지 3개월 되는 자매가 찾아왔습니다. 신랑과 도저희 맞지 않아서 이혼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남편을 이해하라고 하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한 한달이나 있다가 이 자매가 다시 왔습니다. 신랑과 도저히 못살겠다고 이혼을 하겠다고 그러면서 묻기를 이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매는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이혼을 하면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갈 길로 간 것입니다. 이것이 완악함입니다. 이러한 완악함 때문에 모세는 불가결하게 이혼증서의 필요를 말한 것입니다. 이혼이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니 이혼할 때 좀더 신중하게 생각을 하여라.

    오늘 젊은 세대의 신혼부부들이 이혼을 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젊은 새대들이 인내심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서로 참고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처럼 샤프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지만 인내심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생각이 나는 대로합니다. 진지함과 신중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위대한 철학자로서도 유명하지만 그 못지 않게 아내가 유명합니다. 무엇으로 유명하느냐면 악처로 유명합니다. 한번은 소크라데스 집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막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크라데스가 얼마나 당황이 되고 창피하겠습니까? 그래서 손님이 왔으니까 좀 조용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더니, 옆에 있는 물둥이를 집어 들어 소크라데스 머리에 확 뒤집어 씌웠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사람들이 아내가 자리를 비킨 틈을 타서 소크라데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아내와 살아. 이혼해야지" 그러니까 소크라테스가 이런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천둥이치면 비가 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그리고 다음 말이 더 유명한 말입니다. 그리고 비가 오면 다음에는 게이지 않겠소"

    여러분, 남성 여러분 우리 소크라데스를 본받고 삽시다. 집에 들어와서 아내가 바가지 긁으면 아 지금 천둥이 치는구나, 다음에는 비가 오겠지. 무어가 날아오겠지, 무어가 날라 오면 이제갤때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소크라데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정들이 이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 가정 생활에 인내심을 기르십시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는 가정생활에서도 가장 요긴하고 필요한 말입니다. 늘 우리의 가정들이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내심을 얻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2.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을 존중해야 한다.

    창조시때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일을 하셨지만 그 중에 하나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 같이 살게 하신 일입니다.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나니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여기 창조시로부터 라는 말은 완래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은 원래 같이 하나로 살게 만드셨습니다.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얼마나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가 되어 살아가느냐에 딸렸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한번 보십시오. 아브라함 아들 이삭은 성경에 나오는 부부가운데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평생을 이삭은 그의 한 아내 리브가하고만 삽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이 결혼 적령기에 이르자 자기 종을 고향에 며느리감을 구하기 위해서 보냅니다. 이때 종이 출발하면서 이런 기도를 드릅니다. 창세기24:12절에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소서" 자기 주인의 며느리감을 만나게 해달라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드리고 아브라함의 종은 출발합니다. 드디어 고향에 가서 신부감을 만납니다. 그 신부감을 만나자 마음으로 이렇게 다짐을 해봅니다. "내가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 나에게 물을 줄 뿐만 아니라 약대에게까지 물을 준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람이다." 그리고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의 기대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리브가가 종에게 뿐만 아니라 약대들에게까지 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종이 창세기 24:27절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이들은 결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평생을 둘이 하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만약 이런 확신을 가지고 가정 생활을 그 가정이 얼마나 아름답게 달라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원래의 뜻에 따라 평생 한 남편은 한 아내에게 만족하고, 한 아내는 한 남편에게 감사하고 산다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습니까?

    우리의 가정은 과연 하나님의 원래의 뜻대로 살고 있습니까? 서로 서로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서 불타는 사랑과, 불타는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시큰둥한 상태에 있습니까? 결혼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다면 우리 가정의 아내들이야 말로 내게 주신 완전한 아내요, 우리 남편들이야 말로 가장 존경할 남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남편보다 더 좋은 남편이 없고 더 좋은 아내가 없는 것입니다.

    저 유명한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자동차왕이면서 훌륭한 가장이었습니다. 그가 50대 생일 파티를 열었는데 파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예. 나의 가정 생활의 성공한 비밀은 자동차 생활에 성공한 비밀과 거의 비슷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 회사가 자동차 사업에 성공한 것은 한 가지 모델만 집중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한 여자만 집중적으로 개발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가정은 한 곳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집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생각을 어겨서 다른 일 하는 것 아닙니다. 남편도 아내의 생각을 어겨가면서 다른 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라기2:14절에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라"하였습니다.

    하늘로도 맹세하지 말고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하신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만큼은 서로 맹약한 사이라고 말씀합니다. 살아갈수록 서로 가까운 사이가 되십시오. 몸도, 마음도,생각도, 종교도 무엇이든 하나가 되십시오. 그럴 때 가정의 신비한 축복이 열리게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정이란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며는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녀들이 예수님께 안수를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 기도를 받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신앙입니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식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대해서는 각자마다 해석이 다르고 방법이 다릅니다만은 오늘 이 부모는 아이를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예수께 안수를 받고 싶다" 내 자식을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지게 하고 싶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아이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새벽부터 자정까지 자식들은 학교에 학원에 맡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모두가 자녈르 일등으로 만들려고 열병에 휩싸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끔직하지만 또 현실적으로 그 끔직한 일을 자기만 안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다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그 교육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부모는 아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가치관을 서슴없이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너는 뒤지면 안된다"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몰아댑니다. 아이들을 경쟁사회의 한 일원으로 키웁니다.

    저는 본문의 이 부모들을 생각해봅니다. 예수님 앞에 자기 자식을 데리고 왔던 이 부모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들은 제자들이 막는 것을 무릎쓰고 예수님을 만날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안수받게 하고 싶었고 기도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 부모는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어린 자녀가 만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주기를 그렇게 애쓴 것입니다.

    가장 복된 가정은 그 가정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자라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들을 축복하도록 해주세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매일 안수해주십시오. 그냥 기도해 주지 말고 손을 꼭 잡아 주든지, 머리에 손을 얹든지, 가슴에 품어주십시오.  안수는 목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주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이럴 때 가정은 행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만 예수님 앞으로 데려와야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이들의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합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이루어가는 천국의 교회로 만드십시오. 우리의 모든 욕구와 생각과 행동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록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가정에 복음을 전하십시오. 날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그 가정이 복음에 무릎을 꿇도록 하여야 합니다.

    왜닙까? 가정에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이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얽매였던 문제들, 상처 입은 것들, 자녀 문제들 이 모든 문제는 예수님이 해결점입니다.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전환점입니다.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예수님을 믿게 하십시오. 지금 대각성 전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가정을 복음화 시키기 위하여 금번에 우리에게 대각성전도운동의 기회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에 행복을 드리기 위해서 대각성 전도 운동을 허락하셨습니다. 열심히 전도하십시오. 금번 기회에 모든 가정이 다 구원을 받도록 하십시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게 하십시오. 그 가정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주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가정은 정말 복되고 풍성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작고 기이한 모습의 곱사등이 처녀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그녀는 방문조차 열어주지 않고 냉대를 하였습니다. 비탄에 잠겨 눈물만 흘리던 그는 문득 한번 실망했다고 포기한다면 자신의 외모보다 못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곱사등의 얼굴엔 희망의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찾아간 곱사등에게 한참에야 문을 열어준 처녀는 귀찮다는 듯 곱사등이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을 참으며 곱사등이는 처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결혼이라는 것이 하늘에게 맺어주는 것임을 믿나요?" "그래요 당신도 그것을 믿나요?" "그렇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나에게도 미래의 신부가 정해졌습니다." 곱사등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신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대의 신부는 곱사등일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쳤습니다. '안됩니다. 차라리 나를 곱사등이를 만드시고 나의 신부에게는 아름다움을 주십시오.' 그렇게해서 나는 곱사등이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처녀는 고개를 돌려 곱사등이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인 모세 멘델스존과 그의 헌신적인 아내 프롬체의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신 뜻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인내해가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힘쓰십시오. 그리고 서로 하나가 되도록 애쓰십시오. 나아가 복음을 가지고,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정에 이루어지도록 힘쓰십시오. 의 인도를 따라서 서로를 아끼고 희생하고 인내하며 가정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갈 때 거기에 아름답고 풍성하고 복된 가정이 이루어 지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다 이런 복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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