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를 사랑하신 예수님(막10:13-16)
  • 조회 수: 132, 2013.02.06 18:32:30
  • 요즈음 우리 교회의 낮 예배 때 어린아이들이 많이 출석을 합니다.
     성도들의 가정에 아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바드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쿠룩 박사는 <오늘 우리 사회는 문제의 자녀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부모들이 더 많이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자녀들을 마치 자기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자녀들을 이용하는 부모들이 많아진 세상입니다.
     자기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한 것을 아이들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고 아이들을 얼마나 혹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가 명령하는 대로 행하지 않지만 부모가 행하는 대로 따라합니다.>
     아주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린아이일 때는 그렇게 부모의 말에 잘 순종을 하더니 이제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부모의 말은 듣지 않지만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기들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녀들을 이용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조금 성장하면서 자기들의 욕심만 채우려고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주님의 모범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부모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또한 주님이 어린이를 놓고 하시는 교훈 가운데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 주셨습니까?
     먼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고 용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마지막 길을 가고 계시는 길입니다.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가시는 길입니다.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올라가시는 그 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라고 데려 온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이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지만 너무나 많이 지키지 않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먼저 우리들이 어떤 일을 수행할 때에 어린아이들을 귀찮은 존재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을 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에서 어떤 문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눌 때에 아이들의 의견은 대부분 무시됩니다.
     여전히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부모의 결정된 의견에 무조건 순복만 하도록 합니다.
     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을 비슷하게 이루어집니다.
     온 교인 연합예배를 드리면서 참석한 인원을 계수하는데 아이들은 빼놓고 계수했습니다.
     어른들의 모임이나 예배는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모임이나 예배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뭔가 모순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린이들을 귀찮게 여기는 교인들도 많습니다.
     경건하게 예배를 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에서 제자들의 어린이를 대하는 행동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꾸짖을 때 <예수께서 보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주님이 분히 여기셨습니다.
     오늘날 주님이 우리들을 보실 때 분히 여기셔야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바라보실 때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어린아이를 귀중한 한 인격으로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그 길에서 어린아이들을 위해 그 귀중한 시간을 투자하십니다.
     어린이를 귀중한 인격으로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어린이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공부만 위해서 돈을 투자하고 어떤 열정을 투자하는데서 이제는 좀 바뀌어서 어린이를 귀중한 인격으로 보고 그 영혼을 위해서 투자해야 합니다.
     이제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주님께서 어린이를 어떻게 귀중히 여기셨는지를 돌아보고    우리에게 제자들이 어린이에 대해 잘못한 모습과 같은 것들을 더 이상 반복하지 말고 분명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시각부터 가져야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아이들과 관계해서 또 하나의 귀중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14절 하반부에서 15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시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린아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우리가 주님께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하셨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우리 자신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아이 같은 지 돌아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가끔 저를 돌아보면서, 또 성도들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아이 같아라>하는 말씀을 우리들은 아주 많이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욕심을 부리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 그저 싸우기나 좋아하는 것 등등 다시 말해서 어린이의 철부지 같은 모습만 비슷하게 닮아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한 손에 먹을 것을 쥐고 있으면서도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봅니다.
     먹을 것을 남에게 주는 데 인색한 아이들을 우리들은 종종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모습을 바로 우리들에게서 얼마나 많이 찾을 수가 있습니까?
     온통 자기 욕심에 사로 잡혀서 먹을 것 쌓기에 급급한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 말입니다.
     지구촌 한 쪽에서는 매일 매일 굶어 죽어가고 있고, 한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처리 규정까지 만들어야 하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다른 사람을 죽이고라도 내 재산만 더 축적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돈을 모으는 세상이 아닙니까?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에게서 발견되는 문제입니다.

     또 하나 어린아이들의 철부지 같은 모습을 닮은 것들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꼭 철부지 같이 이기적으로만 생각합니다.
     부모의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는데 우리들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아이들끼리 싸우면서 던지는 말 줄에 <엄마는 누구만 사랑한다.>고 토라집니다.
     자녀들이 싸울 때 부모의 마음이 어떠할까? 전혀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그렇게 닮았습니다.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싸우기를 참 좋아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어린아이를 같아라>라고 하신 것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의 그런 모습을 닮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어린아이의 가장 좋은 점을 무엇을 두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전적인 신뢰심이 아닐까요?
     부모에 대한 전적 신뢰, 맡기는 것,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것을 믿음이라는 단어로 말합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부모에게 맡기는 것을 봅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를 다녀와서 배가 고프면 무조건 <밥을 달라>고 합니다.
     그 아이가 쌀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돈걱정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밥이 있을까 없을까, 돈이 있을까 없을까 머리로 재지도 않습니다.
     부모를 무조건 믿고 달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들에게 <어린아이 같아라>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아이들은 모든 것에 한계가 있는 부모들을 그렇게 전적으로 신뢰하는데,
     왜 무한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맡기는 모습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닐까요?
     자꾸 한계가 있는 머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계산해 보지 말고 말씀하신 대로, 약속하신 대로 믿고 맡기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대할 때에 이리 저리 계산해보고 이 문제를 부모님께 맡길 것인가 안 맡길 것인가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들은 늘 머리로 잽니다.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맡기지를 못하고 이리 저리 머리로 재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집의 이제 대 여섯 살 먹은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식량 문제를 맡기지 못하고, 어느 날 아침 일을 하러 나가서 돈을 벌어 가지고 쌀을 사다가 밥을 해서 먹는다면 뭐라고 해석하시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는 삶입니다.
     특별히 구원의 문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는 누구도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누구도 구원을 얻을 자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정말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을 가지고 나의 구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나의 삶의 모든 문제까지 다 맡기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지를 어린이 주일에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어린아이의 좋지 못한 모습은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던져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부리고 이기적인 모습, 싸우기를 좋아하고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생각은 벗어버리고,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길 줄 아는 주님이 기대하시는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로써의 삶이 있도록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주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취하신 행동을 우리는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16절을 보면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을 안아주신 주님, 그리고 안수하신 주님, 축복하신 주님, 그 주님의 모습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줍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아이들을 안아주기보다는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들만 안겨줍니다.
     <재능도 없는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 바이올린을 가르친다.>고 무거운 짐을 안겨주고,
     학교 다니는 것도 벅찬 아이들에게 학교수업을 마치면 각종 학원들이 시간을 따라 기다리고 있는 무거운 짐,
     1등 해라, 공부해라 온통 짐들을 다 안겨 주면서 굉장히 자기들은 잘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제 친구들을 돌아보아도 부모님이 안겨준 그 무거운 짐을 잘 감당했던 사람들,
     곧 공부 잘했던 사람들은 정말 사는 게 영 아닙니다.
     오히려 그 무거운 짐을 잘 감당 못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더 잘삽니다.
     우리 주님은 아이들을 안아 주셨습니다.
     이제 너무 짐을 안겨주지만 말고 여러분 품으로 안아주십시오.
     저는 맞벌이 부부를 그렇게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이 좀 모자라게 살아도 엄마는 아이들을 좀 집에서 안아주셔야 합니다.
     엄마 아빠가 돈을 번다고 밖에서 뛰고 있는 시간에 아이들은 안기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안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성도들에게도 행해야 합니다.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을 안아주셔야 합니다.
     나보다 어린 신자들을 안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우리가 돌아보고 고쳐야 할 부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어린이들을 안수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를 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는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인들 그것이 자녀들에게 어떤 유익을 주겠습니까?

     여러분은 아이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십니까?
     매일 매일 아이들에게 밥은 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매일 매일 자녀들을 위해 기도를 하십니까?

     교회학교 교사들은 어떠합니까?
     매일 매일 맡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교역자들, 장로님들, 권사님, 집사님들은 어떠하십니까?
     성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십니까?
     구역장님들은 구역 식구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십니까?
     그것도 우리 주님이 하신 것처럼 축복하는 기도를 하십니까?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우리의 자녀들을 대하는 태도, 성도들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어린아이들과 어린 신자들에게 짐만 주고 억누르고 손가락질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이제 늘 복을 빌어주는 기도를 하는 부모와 교사, 장로님 권사님 구역장 권찰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으면서 단순히 어린이들을 한 번쯤 생각해 주는 것으로
     혹은, 선물 한 가지 교회에서 주는 것으로 그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린이를 귀중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어린아이의 좋지 못한 모습, 욕심을 부리고 이기적인 모습을 버리고 전적으로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의 모습을 배우며,
     어린아이와 어린 신자를 안아주고 위해서 늘 복을 비는 기도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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