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들의 복을 막지 마십시오(마가복음 10장 13∼16절)
  • 조회 수: 226, 2013.02.06 18:36:48
  • 우리는 불과 며칠 전 한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명문대를 다니는 학생이 부모를 살해하고 토막을 내서 버렸던 사건입니다. 물론 부모의 차별대우, 비교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상식을 가진 인간으로서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해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예전에 있었던 한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박한상 군이 그의 부모를 살해한 사건입니다. 부모를 죽이고 불을 질러서 자신의 죄를 드러나지 않게 하였던 사건이죠.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 후에 교회에서 그 학생을 가르쳤던 어떤 교사가 했던 말을 기억해 봅니다. "이 학생이 처음부터 그러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학생회의 회장으로 열심이었고, 그의 부모는 안수 집사였습니다. 부모의 직업은 한의사로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한번은 이 학생이 수련회에 가서 은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잘못하였던 것에 대하여 아버지께 가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참 감동적인 장면이지요. 그런데 그때 부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대학을 가야돼! 교회는 그 다음에 나가도 돼!' 그리고 그 이후로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회개하고 이제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잘 살려고 하였던 그 마음의 싹을 꺾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방황하기 시작하였고, 그럴 때마다 부모는 매를 때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대학시험을 보았습니다. 역시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고, 지방의 전문대학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돈이 많았기 때문에 그 아들을 유학을 보내기로 한 부모의 결정에 의하여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유학생활도 마찬가지로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유학생활 가운데 3400만원의 빚과 함께 방탕하게 보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그의 아버지는 "당장 한국으로 들어와서 호적을 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그 사건을 벌였던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아버지는 안수집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한번도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새롭게 살고자 하였던 아들에게 교회를 그만 다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이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은 어렸을 때, 신앙을 갖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어린아이가 신앙을 갖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13절에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참 기뻐하시며, 복된 부모입니다. 사실 부모가 아이에게 신앙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은 이때입니다. 조금 더 성장하면 자녀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되고, 그 때는 신앙을 가르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내 품에 있을 때, 집안에 있을 때 예수님에 대하여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자녀가 정말 축복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자녀는 영원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이었습니다. 왜 입니까?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아이들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아서 지금 요란 떨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어린아이가 가진 영적인 능력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과연 성령의 역사를 깨달을 수 있을까? 복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이들도 복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순수하기 때문에 더 잘 받아들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태 속에 있는 아이도 성령충만을 알 수 있음을 말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분명히 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셋째, 귀찮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오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아마도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와 그 아이들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열심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돕는다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분개하셨습니다. 마가복음 전체를 통하여 가장 분개하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입니까? 복음은 어떤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도 예수님의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14정 말씀을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① "어린아이들을 내게 오게 하라" 예수님은 좋은 신앙의 부모를 만나 신앙의 좋은 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자녀를 나에게 오게 하라" 부모가 하나님의 명령보다 우선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오게 하라" 이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② 어린아이들의 신앙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부나 진로로 신앙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
    ③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들의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셨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이러한 착각을 합니다. "나는 내 자녀를 키운다." 그렇습니까? 사실 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키우는 것입니다. 잠시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모든 결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15절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받들다" 받아들인다의 의미지요.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이든지 쉽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릴 때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을 전하면 무한대로 성장하게 됩니다. 아무리 많이 집어넣어도 다 들어갑니다.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자기의 생각과 경험으로 판단해 버리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많지요. 그러나 어린아이는 다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하나님만이 맞고 나는 틀리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본문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서 안수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부모가 기대하였던 것보다 더 많이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보다 더 크게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손해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십니다. 안아주십니다. 안수하십니다. 안수를 통하여 그 사람의 영적 능력, 사랑, 영성이 전달됩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예수님의 능력, 사랑, 영성이 전달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깨끗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통하여 드러났을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말씀하십니다.
    ① 자녀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막지 말라!
    ② 너희의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라!
    ③ 하나님의 손에 자녀를 맡기라! 요즘, 학교마다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자녀들을 안심하고 학교에 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손에 자녀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녀들을 위한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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