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들에게 주어야할 교훈(잠언 22 : 1 - 6)
  • 조회 수: 187, 2013.03.21 22:08:27
  • 로마의 한 명문 귀족가정에 많은 손님들이 모였습니다.  부인들이 따로 모여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가 그 집주인의 부인의 현숙함과 귀족스러움에 다른 부인들이 요청을 합니다.  이 집의 가장 멋지고 값비싼
    보석을 구경시켜달라고 말입니다.
      간청에 못이긴 부인은 조용히 별실로 그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귀중한 보석, 다이아몬
    드, 루비, 산호 등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을 때 부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말
    하길  여러분, 이 아이들이 저희 가정의 가장 귀중한 보석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귀중한 보석들의 장래는 저들의 운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가정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들의 고사리 같은 손들을 보십시오.  언젠가 저 손들이 성경을 잡을지, 무서운 살인무기를 잡을
    지, 혹은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지, 화투장을 잡을지, 저들의 손이 환자의 아픔을 치료하
    는 손이 될지, 술잔을 잡는 폭력적인 손이 될지는 순전히 우리들의 관심여하에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 두 사람의 임종을 소개하겠습니다.  한 어머니의 임종순간입니다.  겨우 눈을 뜨고서 남편을 보고는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남편이 대답합니다.  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묻습니다.   아이들
    은 다 들어 왔어요? 하고 말입니다. 남편이 다 들어왔노라고 대답하자 운명합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아이들의 생활질서를 점검하는 어머니의 관심입니다.  밤이면 아이들은 집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자녀들이 늘 천국 문에 있어야 합니다.  
    천국 문에서 멀어지고 세상으로 가까이 가면 안됩니다.  
      그러나 여기 한 남자의 임종이 있습니다. 운명을 앞에 둔 남자가 묻습니다.  여보, 부인 어디 있소!    여
    기 있잖아요?  손을 잡아 확인합니다. 그러자  큰아들은 어디 있소  묻습니다.   아버지 저 여기 있습니다.  
    손을 잡으며 큰아들 눈물을 흘립니다.
      둘째는 하고 묻고, 있음을 확인한 다음에  막내가 어디 있는가 묻습니다.  아버지 저도 여기 있어요 하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면서  다들 여기 있으면 가게는 누가 보냐?  그리고는 운명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5월은 온갖 소망과 희망과 정감이 넘치는 달입니다.  우리에게 5월이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5월을 일컬어  계절의 여왕 이라 부릅니다.
      가장 산과 들이 아름답고 날씨나 온도가 가장 알맞은 싱그러운 계절에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으
    며, 스승의 날과 성년의 날도 들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5월은 가정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절입니다.  그
    리고 이 날들은 모두 우리의 삶에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 그런 날들입니다.
      오늘 특별히 꽃 주일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하나님께 그들의 존재가 바쳐지는 유아세례식을 거행했습니다.  
    부모의 믿음으로 어린 생명들을 하나님께 바쳐지는 성례식 즉 헌아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아세례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아이의 장래를 하나님께 맡긴다 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신뢰와 경외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둘째는  장차 이 아이를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로써 키우겠다는 다짐 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어린 생명을 하
    늘의 양식인 말씀으로 경건한 신앙 속에서 양육하고 기도로 키울 것을 다짐하는 부모의 각오가 들어 있습니다.
      셋째는  장차 이 아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해 달라는 기원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그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주신 어린 생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양육해야 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이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렇게 바쳐지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무흠함 입니다.  보세요!  어린아이들에게는 흠이 없습니다.  꾀가 없고, 수단이 없으며, 죄가 없
    습니다.  마치 백지와도 같은 깨끗한 무공해상태입니다.  어린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세요.  천진스러움과 평
    온함, 전혀 꾸밈이 없는 그 순수한 어린아이가 특징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어린아이는  인간의 원형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인간을 창조
    하셨을 때 그 상태가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들이 모두 선하고 순진하고
    꾸밈이 없었을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은 완전한 인간상을 지닌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바로 그 완전한 인간의 모
    습이 바로 어린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가 없다 (마18:3)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의 행동을 보세요!  한 손 가득히 쥐었다가도 다른 것을 주면 먼저 손에 쥐었던 것을 내려놓습
    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잡습니다.  거기에 욕심이 없습니다.  탐욕이 없습니다.  아주 지극히 인간다운 인
    간 원형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 원래의 모습은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린아이는
    어쩌면 인간원형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천사의 모습 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천사입니다.  거기
    엔 거짓이 없고 속임이 없고 포악스러움이 없습니다.  좋으면 마냥 웃고 싫으면 곧바로 웁니다.  싫어도 좋
    은 척 좋아도 싫은 척하는 그런 가식이나 위장이나 꾸밈이 없습니다.
      누굴 미워하고 증오하고 속이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더럽혀지지 않고
    순전한 상태인 아이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아세례입니다.
      신학자  에밀 브루너 는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개발하는데 있다 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값진 보물인 이유는 바로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교육은 이와 같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게 하고 창조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데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신 본문의 말씀도 그런 말씀입니다.  몇 가지 강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마땅히
    자녀들에게 주어야할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는  재물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교육입니다.  요즈음 우리주변에서 흔히 재벌이라고 하는 기
    업들의 붕괴를 종종 봅니다.  허무하게 와해되어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재물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입니다.  재물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생명이 길지가 않
    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사람이 물질에 생명을 걸고 목적을 두고 살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순간 얻어지고 또 순간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그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것은 영생을
    살아야 할 성도들로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명예는 그 생명이 무척이나 오래갑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려도 그 명예의 생
    명은 여전히 지속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 오래 간직되고 기억되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
    리들에게 기억되어 있는 위인들은 모두 명예를 소중하게 지킨 분들입니다.
      그 분들은 100년 혹은 2000년 전의 시간적인 과거 속의 사람들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서 기억되고 역사가 그들을 기억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명예를 소중히 하라고 강조
    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명예는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지고 쌓아지고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명예는 무척이나 소중한 정신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깊이가 있고 무게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명예는 정신적인 무형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고 일시적으로 형성시킬 수 없는 가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일부이긴 해도 사람들은 너무나 이 물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그 물질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영혼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기에 인생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
    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즈음 총체적 비리사건 가운데 하나가 병역비리사건입니다.  사회 지도층사람들과 부유층사람들의 전유
    물처럼 비리가 저질러졌습니다.  부모들이 앞장서서 자식들에게 황금만능주의를 심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
    르치고 본을 보여 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명예와 영혼까지 더럽히면서 공무원들까지 여기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그의 자녀들이 자라서 이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고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라고 그럽니까?  더구나 그 가운데는 분명 그리스도인들
    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러한 물질 때문에 부모와 갈등하다가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가 길러졌고, 형제간에 갈등하다가 영영 인연
    을 끊고 살아가는 상처 난 집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종국에는 가정도, 부모도, 형제도, 인륜지 도덕도 그리고 재물마저 다 잃고 얼마나 비참한 모습으로 남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바로 명예를 소홀히 하고 물질만을 너무 숭상해서 오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지나치게 물질 중심시대요, 현재적인 것에 집착하는 시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명예를 소중히 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이것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교훈하고 있
    습니다.  바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은 금보다 은총을  소중히 하라고 했습니다.  은과 금은 사람들에게 황홀감을 안겨줍니다.  사
    실 황금은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황금은 빛도 나고 값어치도 있어서 분명 그 위력이 있습니다.  황금은 사
    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이성을 잃게 하며 마음에 죄를 짓게 만듭니다.   황금은 무척이나 좋은 것인데 때로
    이것 때문에 오히려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듯 은 금은 참 좋은 것인데 사람들이 그 은, 금을 목적화하기때문에 이 은, 금이 사람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불행의 요소를 작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훈 합니다.  그 보다 은총을 더 중히 여기라고 말입니다.  은, 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은총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는 마음이며, 사람으로부터도 사랑 받고 세상으로부터도 사랑을 입는 생활
    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같은 축복을 입어야합니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은총을 입고 살아가
    야 합니다.  은총의 대상이 되어야합니다.  
      자식은 무엇보다도 부모로부터 사랑을 입고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가장 잘 균형 잡힌 아이로 성격이 형
    성되어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학생은 스승으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군인은 상관으
    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하고 정치인들도 윗사람으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힘이 있고, 정치생명이 길어집니다.  
    스승으로부터, 상관으로부터, 윗사람으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마음껏 표현하고 자
    신만만하게 성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자본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인간은 폐일언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야곱이 이 은총 때
    문에 성공했습니다.  요셉이 이 은총 때문에 축복의 인생을 살았으며, 아브라함이 이 은총을 입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신약에 사도바울이 바로 이 은총 때문에 핍박자 사울에서 복음전도자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었
    습니다.
      그래서 이 은총은 값있고 무게가 있고 영원하고 충만한 뜻이 들어있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떠한 복을 말해도 이 은총보다 더 좋은 복은 없습니다.  이 보다 더 좋은 은혜는 없습니다.  
    이 보다 더 좋은 배경도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다 가진 것이나 마찬가
    지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이 재미있고, 즐겁고, 그 삶이 행복하며 자신 있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경
    은 말씀하시기를 은, 금보다 은총을 더 귀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덕의 근원이요, 생각의 근원이
    요, 행동의 근원이며 모든 복의 근원으로서 여타의 것이 혹히 형통할지라도 이 부분이 잘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모든 것의 근원이고 근본인 것입니다.
      사실 명예도, 은총도, 순서적으로 따지자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다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이
    땅에서 잘 되고 형통하는 길의 첩경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처음이고 시작이고 원리이고 길입니다.  그래
    서 자라나는 아이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부모들이 먼저 경외하는 일에 최우선해서 열심을 보여줄 때 그 모습을 자녀들이 보고 배웁니다.
      
      이제 이 같은 교육은 어떻게 하여야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일까요?  무조건 강조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
    은 아닙니다.  좋은 방법과 더 좋은 길은 없을까?  
      잠3:3절에 보면 두 가지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목에 매어 가르치라 고 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목걸이를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동전 10개를
    꿰어서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하면 악귀로부터 자신을 구해준다고 믿는 민간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전을 실에 엮어서 그것을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이 풍습은 신약시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눅15:8을 보면 잃은 동전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여인이 동
    전 열 개를 가지고 있다가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잃은 동전을 찾기 위해 밤새도록 고생하며 찾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전을 찾은 여인은 동네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수학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을 발견합니다.
      이 동전의 의미는 오늘의 혼인반지격 입니다.  이것은 빚쟁이도 못 가져가는 신성한 것입니다.  결국 이
    여인은 혼인반지를 잃은 심정으로 그 동전을 찾았으며, 그것을 찾은 다음 기쁨이 넘쳐서 동네사람들과 잔치
    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장신구를 만들어서 목에 걸고 다니기를 좋아했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인장을 줄에 매어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이 같은 습관을 성경은 인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되 마치 사람들이 목에 걸고 다니듯이 그렇게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되 일시적으로 가르치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그 말씀을 밤낮
    없이 보고 듣고 생각하며 생활화하도록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목에 매어 가르치라 고 했습니다.  말씀을 목에 매 주면 아이들이 어느 때라
    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마음 판에 새기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돌 판에 새긴 십계명에서 유추된 말씀입니다.  당시에 매우
    중요한 교훈은 모두 돌 판에 새겨서 전했습니다.  그리고 금속이나 돌, 나무로 만든 서판에 새겨서 전해졌습
    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되 자녀들로 하여금 마음의 비(즉 심비)에 새겨주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그 말씀으로 생활화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삶이어야 그 인생에서 중요한 고비 때마다 말씀이 힘이 됩니다.  그리고 지혜가 되어 주고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길  마땅히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러면 늙어서도 떠나지 않
    으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참으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이 귀한 자녀라 할지라도 낳아 놓는 것만으로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르치라고 했는데 세상 좋은 것만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치되 어떻게 가르치
    는가 하면 하나님의 교훈을 목에 매어 가르치고 마음 판에 새겨 주어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
    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적당히 가르치고 형식적으로 가르치지 말고 철저하게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오늘 같은 세속화된 시대에도 방황하지 않고 정도를 걸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자녀들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우리 자녀들을 주의
    말씀대로 교육하고 가르치고 양육시키고 있는가를 말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교육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자라는 축복의
    자녀들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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