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있는 첫 계명(엡6:1 - 3)
  • 조회 수: 269, 2013.07.20 21:16:07
  •  옛날 고려 시대에 칠십 이상 된 노인들을 구덩이에 산 채로 내버렸다가 죽으면 그 자리에 매장하는 그러한 풍속을 가리켜서 고려장이라고 이름을 합니다. 이 악습이 어떻게 없어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세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늙은 어머니를 내다 버리려고 어머니를 엎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등에 업힌 어머니가 손에 잡히는 대로 나뭇가지를 뚝뚝 꺽어서 길바닥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아들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나뭇가지는 꺽습니까?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여기는 깊은 산속이란다.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갈 때는 길을 잃기가 쉽다. 그러니 돌아갈 때는 내가 던져둔 이 나뭇가지를 방향으로 삼아서 길을 잡아라. 그리하면 무사히 집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아들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목이 메였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버리러 가는 몹쓸 자식인데도 불구하고 그 자식이 무사히 집까지 돌아가도록 바라는 어머니, 자기는 죽어도 자식은 잘 되길 바라는 그 어머니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 아들은 어머니를 도로 엎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그 어머니를 정성을 다하여 모셨는데 이 소문이 퍼지면서 고려장이 없어지게 되었더랍니다.  

     

      두 번째 얘기, 어떤 사람이 늙은 아버지를 버리려고 아버지를 지게에다 지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노인네를 지게와 함께 내버려두고 돌아서는데 따라간 아들이 갑자기 지게를 둘러메는 것이었습니다. 너 왜 그 지게를 메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대답합니다. 이 지게를 지고 가야 아버지가 늙을 때 나도 갔다 버릴 거 아닙니까? 이 말을 들은 아버지 가슴이 철렁 합니다. 내가 크게 잘못 생각했구나! 내가 지금 젊다고 해서 늙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인데 나도 반드시 늙을 것인데 내 자식이 본대로 하겠구나! 생각한 그 아버지는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더랍니다.

     

      세 번째 얘기, 어떤 효자가 국법으로 고려장을 할 나이가 된 어머니를 차마 내다 버릴 수가 없어서 몰래 숨기고 봉양을 했는데 중국에서 사신이 와서 그 나라 사람들의 지혜가 얼마나 되는가를 시험코자 어려운 문제를 냈더랍니다. 재상이었던 이 아들은 조정 대신들과 함께 그 문제를 아무리 풀려고 해도 풀 수가 없어서 근심을 하다가 어머니를 만나게 되자 그 얘기를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얘기를 듣더니만 웃으시면서 그거 아주 쉬운 문제다 하고 답을 알려 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 문제를 풀수 있었냐고 왕이 묻게 되자 재상은 솔직하게 사실은 내 늙은 어머니의 지혜였다고 고백을 하게 되고, 그 말을 들은 왕은 나이든 사람의 지혜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해서 마침내 고려장이 폐쇠가 되었더랍니다.    이 이야기는 효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교훈 세가지를 말해줍니다.

     

      첫째는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다는 것, 자기를 다 주고도 부족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한없는 사랑이라는 것, 둘째는 내가 부모에게 효도 할 때 자식도 그것을 보고 배울 것이라고 하는 명백한 사실, 셋째, 노인들은 늙었으므로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살아온 지혜는 놀라와서 젊은이를 능가할 수 있다는 것, 결코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시대는 바뀌어서 이러한 고려장의 악습은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과연 그러할까에 대해서는 퀘션마크입니다. 여러분 이 얘기가 옛날 얘기처럼 먼 옛날 얘기처럼 들리십니까? 현대판 고려장은 오늘도 있는 겁니다. 나 몰라라 하고 부모를 내버려둔 자식도 많고 죽을 수 밖에 없도록 방치하는 자식도 있고 하루에도 몇번씩 내가 빨리 죽어야 되는데, 그런 말이 나오도록 만드는 자식이 많은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적인 고려장은 아직도 있다고 봐야 할 줄로 압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부모를 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효도 한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왜 그럴까? 왜 자식들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가? 그 이유가 뭘까? 오늘 본문은 그것을 말해줍니다. 효도하지 않는 이유와 그리고 어떻게 효도해야 되는가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부모에 대하여 효도하지 않는 이유를 첫째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만은 배워야 하고 특별히 효도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대 교육학의 큰 문제중의 하나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다 그러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라. 그것이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배울까 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싫어하는 것은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입니다. 어린이 교육 방법중에 중요한 몬테소리 교육도 이 교육 철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싫은 것은 안하지요, 시키지도 않죠, 안하다 보니 못하게 되지요, 이렇게 되는 것이올시다. 또한 너만 최고라 하고 높이다 보니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는단 말이지요. 싫어하면 안 가르칩니다. 그러다 보니 받아야 할 훈계를 받지 못하고 징계없는 아이로 자라게 되고 다 제 멋 대로가 되더란 말이지요. 하나님의 교육 방법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은 자기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없이 가르치라 올시다. 그것도 반복해서 가르치고 머리속에 꽉 박히도록 새겨 넣으라. 이게 하나님의 교육 방법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도 사람들에게 수없이 반복해서 효도를 가르칩니다. 1절 말씀 함께 봉독합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 나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언 23장 23절에서 가르칩니다. 가르치다 뿐입니까? 하나님도 협박도 하고 경고도 하고 그렇게 적극적인 방법을 보이십니다.

     

      아비나 어미를 조롱하며 순종하기 싫어하는 자의 눈은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힐지니라 잠언30장 17절의 말씀입니다.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마가복음 7장 10절이요.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거나 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출애굽기 21장 15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가르치고 협박하면서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효도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효도에 대하여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는데요, 나는 계속... 중요한 것은 말로만 가르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고 순수하고 깨끗할 때 부모님을 어떻게 모시는가를 보여주는 산교육을 통해서 열매는 맺혀지는 거란 말이지요. 때로 자식들이 부모님을 생각해서 선물을 사올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물건 하나 사올 때도 말을 잘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잘 가르쳐야 되거든요. 얘! 뭐하러 사왔니? 돈도 없는데 다음부터는 절대로 사오지마라 그러지 마세요. 정말 안 사옵니다. 배운대로 하는 것이지요. 그럴때는 어! 사왔냐! 잘 사왔다.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받으셔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나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치냐? 멋적다. 그런 말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가르치는 거에요. 너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 받는 가장 큰 지름길이니라. 나자신이 아니라 너를 위해서 배워야 한다고 가르쳐야 되는 것이에요. 자식을 위해서 효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효도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부모와의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로 세상에 좋은 부모만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나쁜 부모 얼마든지 있습니다. 부모 생각만 하면 가슴이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느끼는 사람도 많아요. 이렇게 좋지 못한 부모를 모셨던 자녀들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오늘 본문은 설명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란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주님의 모범을 따라서 그런 말이지요. 예수님도 세상에 계실 때 부모님께 정말로 순종하고 효도했느니라. 그러므로 주님의 본을 따를 것이요. 또 하나는 주님의 명령이란 말이지요. 이유 불문하고 하나님의 명령이니 신앙적 이유로 부모에게 순종할지어다.  그런 말입니다. 부모가 좋든 나쁘든 나에게 해준게 많든 적든 간에 효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옳은 것이기에 마땅히 너희는 순종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의 일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순종하라 하셨으므로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 세 번째 이유가 뭔가 하면, 사회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지요. 옛날에는 신분과 재산을 다 부모에게 물려받았고 아버지로부터 땅이라도 물려받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시대니까 효도했지만 이제야 그렇지 않단 말이지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높은 신분에도 오를 수 있고 재산도 모을 수 있는 시대에 효도 안하면 어떠냐 말이지요. 많은 젊은이들의 의식 구조를 조사해 보면 효도란 옛날의 가치요, 비생산적 윤리라고 매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효도가 비생산적이고 유익이 없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3절 말씀 함께 봉독 합시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네가 이 세상에서 잘 되려면 그리고 정말로 오래 살고 싶으면 효도해라.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올시다. 명예와 장수와 건강을 효도하는 자에게 부어 주겠다고 하나님이 그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복받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복된 길을 주시고 그 길로 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줍니다. 이건 원리지요. 그 길을 벗어나서 복받겠다고 아무리 아우성쳐도 안 됩니다. 그에게 복이 되도 저주가 될 겁니다. 효도해라. 그럼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이 길로 걸어가라! 하나님의 약속. 가장 생산적인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많은 젊은 부모님들은 생각을 하지요. 나는 효도하지 못했지만 내 자식은 나에게 효도할 것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때로 부모님들 중에는 내 자식과 내가 나중에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고. 계획을 말합니다. 꿈을 꿉니다. 그러나 자녀가 그렇게 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내가 자녀에게 이렇게 받고 싶다면 오늘 그 일을 부모에게 그 일을 행할 것입니다. 아~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 나하고 영원히 같이 살거라고 말하는데... 그럼요. 아이때는 다 그러는 겁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커서는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효도한 이상 자녀들에게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엄숙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상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정도의 정직은 가지고 나가야합니다. 부모를 섬기고 효도하는 일에는 가장 큰 축복을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도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에서는 두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시면 "주안에서 순종하라." 2 절에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했습니다." 순종과 공경이 효도하는 두가지 방법임을 말씀합니다. 왜 두가지일까? 이것은 자식의 나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겁니다. 어릴 때는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라고 하는 말. "휘파코에테"라는 말은 두단어 합성입니다. "휘포" 무엇 무엇 밑에 "아쿠오" 듣는다 그런 말입니다. 밑에서 듣는 자세가 순종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견이 내 것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내 의견이 당신의 밑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듣는자세  이걸 가리켜서 순종이라 합니다. 어릴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요. 부모님의 의견을 높여서 잘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듣는 동안 자식은 자라가고 성인이 됩니다. 부모님은 또한 늙어갑니다. 이제는 독립하는 나이가 됩니다. 그때는 어떻게 모셔야 되는야? 순종이 아니지요. 부모가 명령하지도 않거니와 다 듣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효도의 방법이 바뀌는 것이지요. 어떻게요? 공경으로 바뀌어 지는 것이올시다. 공경이라는 말 "티이마"라는 말 영어로 변역하면 "아너"올시다. 높이 사랑한다. 그런 얘기죠. 사랑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아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가리켜서 "긍휼"이라 합니다. 동등한 사랑을 가리켜서 "우정"이라 합니다. 높이 존경하여 사랑하는 것을 "공경"이라 합니다. 왜 늙은 부모를 향하여 공경하라 했는가? 이유가 분명한 것이죠. 부모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죠. 노인네가 늙었는데 불쌍해서 구제하는 마음으로 돌본다는 말이죠. 애도 봐줄겸 겸사겸사 모시지 뭐. 밥값은 할텐데 뭐. 음식이나 드리고 연명이나 하고 용돈이나 드리면 된다고 하는 그러면서 짐처럼 생각하는 이 부담감. 이런 것 가지면 안된다는 거지요. 부모를 모시는 방법은 공경으로 압축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존경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런 얘기입니다. 어머니의 자식된 것 생각하면 난 참 행복해요 어머니. 아버지가 이렇게 계시니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님을 네 머리의 관으로 네 목의 금사슬로 여기라 했습니다. 면류관으로 생각하고 금목걸이로 생각하라. 뭐요? 자랑하라는 것이죠. 면류관처럼 목걸이 처럼 귀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라 자랑하라는 거죠. 학벌을 자랑하고 재산을 자랑하지 말고 제 늙으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자랑하고 높여라. 이게 공경이니라 그런 말입니다.

     

      이렇게 공경하는 것이 2절 말씀에 보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 말씀합니다. 이 첫 계명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올시다. 왜 첫 계명이라 했을까? 십계명이 열갠데 그 중에 앞에 네개는 하나님을 향한 계명이요, 뒤의 육개는 인간을 위한 계명이올시다. 그 항 중간에 5계명이 뭐냐?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올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위한 계명중에서 첫번째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래서 첫째 계명이다 그렇게 해석을 하지요. 신학적으로 십계명의 구조를 분석해보면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인간을 향한 계명 한가운데 누가 있냐? 부모를 향한 계명이 있어요. 왜 그러냐하면 부모란 하나님과 다른 인간을 이어주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다른 인간을 이어주는 중간존재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어떻게 이 본문을 해석했는고 하니 계명이 많지만은 자식에게 있어서 모든 계명의 시작은 부모공경의 계명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도 해석을 했습니다. 쉽게 한번 예를들어 봅시다. 여기 아이가 있는데 말이죠 이 아이가 이제 처음 만나는 분이 부모입니다. 이 부모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 아이는 모든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도 배워가고 하나님도 사랑하게 되고, 우리 부모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을 나도 사랑해야지 그걸 배우는 겁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부모님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게 됩니다. 세상의 원리와 질서를 배우고 권위에 대한 복종의 자세를 배워 갑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을 바로 알 때에 모든 계명을 잘 지킬 근거를 확보합니다. 하나님도 바로 알게되고 세상도 바로 알게되는 것이 이런 의미에서 부모를 향한 공경의 계명은 인간에게 있어서 첫계명이 되는 것이올시다.  

     

      여러분! 부모 공경하는 이유가 신학적으로 많습니다. 부모는 제2의 창조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과 몸을 주실 때에 부모를 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의 중요한 도구로 제2의 창조자로 부모를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부모에 대한 효도는 생명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됩니다. 또한 부모는 하나님의 계시자올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부모를 통하여 보여줍니다. 이 부모에 대하여 순종하고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수용적 자세를 의미합니다. 또한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부모를 통하여 우리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부모를 통하여 다스리고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효도란 수직적 권위에 대한 인정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뒤집어 말할까요? 효도하지 않으면 모든 질서에 대한 복종심이 없어집니다. 부모에게 반항적인 사람은 모든 것에 반항적입니다. 그러므로 효도하라는 말은 너 나 기분좋자는 얘기거나 늙으신 부모 살 길 없으니까 모셔라, 그런 의미에서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 조건 이것이 바로 효도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얘기죠. 왜 옛날 사람들이, 나라에서 효도에 대해 그렇게 강조했느냐? 이유가 있지요. 효도란 모든 질서 의식의 기본이 됩니다. 그러므로 효도하지 않는 자는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더 나가서 사회의 모든 질서와 체계에 대하여 거부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체제 유지와 질서유지 그리고 국가 충성의 기초가 뭐냐? 이게 효도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효도란 백행지본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모든 행동에 효도가 기본이라는 거지요. 효도가 되지 않은 인간은 바른 인격자가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말이죠. 효도하는 사람은 자기 윗사람을 배반하지 않는답니다. 특별히 회사원 중에서 부모에 대하여 효도하는 사람은 회사에 대하여 절대로 적대적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또한 질서에 순응하는 스타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객관적 지표는 효도하느냐를 보고 따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인격을 단적으로 드러낼 수있기 때문이죠. 얼마전에 영국에서는 이런 조사가 있었습니다.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청소년들의 가치관이 전부 다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고치냐 말이죠 이걸. 교육을 통하여 고치자니 안되겠어요. 근본은 어디냐? 가정으로 돌아가냐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정에서도 뭐냐? 부모에게 복종하는 자세를 배워야 겠다는 겁니다. 이거 없이는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식들에게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나라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느냐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가르쳐줘야겠는데 근거가 없어요. 성경밖에는. 그래서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 명령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을 길러내지 않으면 나라의 운명이 기대할게 없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효도란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럼 왜 효도하라면서 제사는 못지내게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그런 질문을 합니다. 이유가 뭐냐? 분명히 있지요. 효도란 일반문화이기 때문이죠. 일반문화란 자연스럽게 형성된 삶의 패턴을 말합니다. 이건 가치가 있는 것이죠.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만은 제사란 종교문화입니다. 일반문화속에 영적인 문화가 섞여있다는 것이지요. 이건 잘 생각을 해야되는 겁니다. 이 일반문화와 종교문화를 구별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나름대로의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한 마귀도 문화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그래서 영적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것이 뭐냐하면 제사입니다. 아 부모에 대한 감사표현 효도하겠다는 거. 이게 왜 나쁜거요? 당연한 것이고 칭찬해야 할 것이지요. 살아있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부모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신 분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겁니까? 이제 돌아가신 분에게 할 일은 없지요. 그 분의 뜻을 받들어서 하나님 잘 섬기며 보람있게 사는게 돌아가신 분에게 최고의 후손의 자세가 되겠습니다만은 여기에 묘한 방법이 가미되는 거지요. 제사를 지냄으로써 부모가 그 영이 오신다. 부모를 귀신 만드는 거요. 그래서 그 부모를 신으로 섬기게 되는 겁니다. 이건 영적으로 잘못된 우상숭배가 되는 겁니다. 부모를 귀신 만드는 거 아닙니까? 1년에 한번 제사지내는데. 여러분 와서 제사지내는데 왜 일년에 한번 드려요? 삼시시때 드려야지요. 따뜻하게 해서. 왜 고조할아버지 때 까지만 해요? 계속드려야지. 여기에 미신적인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러나 사람들은 그거에 대해 알지 못하고 제사에 대해 거부하면 왜 미풍양속을 해치느냐? 대대로 내려오던 효도의 전통을 거부하느냐? 그렇게 말합니다만은 이게 무슨 소리냐? 종교문화를 일반문화화 해서 삶의 양식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게에요. 이건 영적인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올시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효도해야 한다고... 그러나 제사는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다만 부모님 살아 계실 때에 더욱 효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는 기쁨이 되고 자식에게는 바른 교육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이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들에게 부모님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비옵나니 우리 부모님들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건강하게 하옵소서 병으로 시달리지 않게 하옵소서. 또한 총명을 주시고 기억을 새롭게 하여 주시고 밝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또한 경건케 해주셔서 하나님을 더 알아가게 하시고 주님과 그 나라를 사모하는 부모님들 되게하여 주옵소서. 우리 수서의 모든 가정들이 효도하는 가정들이 되게 하시고 그래서 수서의 가정들의 부모님들 얼굴에 기쁨이 있게 하시고 자녀들이 잘 배워 인격적으로 성장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들 다 되게하여 주옵소서. 혹시 부모에 대하여 원망하고 분노하는 자 있으면 그 상한 맘을 위로하사 치료하시고 정말로 주 안에서 순종하는 변화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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