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사 49:8-13, 눅1 :26-38)
  • 조회 수: 486, 2013.08.22 22:01:58
  • 오늘은 대강절 넷째 주일로 성탄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읽어 드린 누가복음 수태 고지(受胎 告知) 이야기를 통하여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천사의 이런 인사말에 시골 처녀인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처녀인 마리아에게 이런 인사는 분에 넘친 인사였습니다. 특히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는 말씀에 더욱 놀랐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인간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천사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천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흔한 일도 아니었고, 평범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성경 전체적으로 볼 때 천사가 나타난 이야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오는 경우인데 천사를 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대단히 중요한 명령을 듣게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기 같은 비천한 어린 처녀에게 하나님이 무슨 명령을 주시려고 천사까지 보내셨을까 두려운 마음과 떨리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그에게 다시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심판이나 책망을 전하려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전하러 왔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천사가 계속하여 말하였습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심판이나 저주의 말씀이 아닌 것은 다행이었으나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것이라는 놀라운 선언에 마리아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같이 천하고 보잘 것 없는 한 처녀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수 있겠는가 믿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는 말씀에 순복하여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 간직된 깊은 뜻을 함께 찾아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재창조의 역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들,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그가 죄악으로 떨어져 나간 보잘 것 없는 인간 속에 잉태하셨다는 것은 그 인간을 하나님 안에 다시 결합시키시는 재창조의 역사를 뜻합니다.

    캐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였다고 해서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여인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은 인간인 마리아가 그를 양육하고 그를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인간을 온전케 하시고 하나님의 세계에 다시 통합시키기 위한 역사라는 점에서 마리아는 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그를 높이면 오히려 그 원래의 뜻이 손상되고 맙니다.

    마리아는 그가 자신을 표현한 것처럼 비천한 여인일 뿐입니다. 마리아는 바로 죄악 때문에 타락하여 비천(卑賤)하게 된 인간을 상징하는 인간의 어머니일 뿐입니다. 마리아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태에 잉태하셨다는 것은 곧 이 세상 온 인류 가운데 잉태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죄 많은 인간을 찾아오신 사건입니다. 결국 은혜를 받은 것은 마리아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성모(聖母)가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한 비천한 인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결코 마리아 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온 인류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즐겨 자기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온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오신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은혜를 입은 마리아의 태는 온 인류의 태입니다.  하나님이 온 인류와 함께 하시는 것이요, 성령이 온 인류에게 임하신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세상을 덮으신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 공동체

    원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모든 만물은 하나님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몇 번 설교를 통해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하나님이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떨어져 나온 독립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텔레비전 공장에서 텔레비전을 생산해 내듯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텔레비전은 그것을 만든 사람과 상관없이 팔려나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그 텔레비전은 만든 사람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독립된 존재이면서 그러나 부모와 자식이란 혈연관계가 이루어져서 그것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자식은 그 부모를 공경하여 모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간과 피조세계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자식을 낳은 것과 같아서 지으신 세계를 끊임없이 돌보시고 가꾸어 가시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이나 피조세계가 온전할 수 없으며,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 그가 창조하신 인간과 자연은 유기적(有機的)인 생명 공동체입니다. 유기적이란 말은 한 몸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머리가 되시고 그의 피조물인 인간과 자연은 그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은 하나의 몸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피조물인 인간은 이런 관계를 올바로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뜻을 따를 때 이 생명 공동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악의 화신 사탄이 끼어 들어 그 관계를 파괴시켰던 것입니다. 인간을 유혹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게 만들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유혹하였고, 이 유혹에 넘어간 인간들이 타락하여 하나님 없는 세계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 중심의 세계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얼룩져 서로 싸우며 죽이는 살벌한 세계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약한 자들은 가난하여 먹을 것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게 되고, 강한 자들은 권력과 부를 독점하여 자기들 뜻대로 세계를 요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세계인 자연을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구 파괴하였고, 오늘에 이르러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생태계가 파괴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간 중심의 세계는 날이 갈수록 더욱 타락하고 부패하여 마침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떨어지고 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떨어져 나간 인간과 피조세계를 다시 자기 안에 통합시키기 위해 그의 아들을 인간의 태 속에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태 속에 잉태하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다시 인간 속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하늘의 생명을 다시 찾게 하신 것이며, 떨어져 나갔던 인간을 하나님의 생명에 다시 연결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태에 잉태하심으로 산산조각 났던 피조세계가 다시 하나님 안에서 봉합되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에 진흙으로 그를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죄악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 속에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신 것입니다.

    은혜의 역사

    그러므로 마리아의 잉태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입니다. 죄악으로 떨어져 나간 인간을 비롯한 피조세계 전체를 다시 자기의 생명 안으로 이끌어 들이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천사가 마리아게 나타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라고 한 인사말은 늘 하는 평범한 인사말이 아니었습니다. 공동번역성경은  이 부분을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영어성경도 대부분 "highly favoured" 즉 크게 은총을 받은 자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길 한 번만 주셔도 그것이 은총이 되며,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로 향하시기만 해도 말할 수 없는 은혜가 됩니다. 옛날 대제사장의 축복을 보면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얼굴을 돌리신다는 것은 곧 은혜요 평강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돌리시면 그것은 곧 저주요, 화였습니다. 시편 30편에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길 한 번 주시는 것도 복이며 은총이라면 하물며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그 생명을 우리 속에 주신 것은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임과 동시에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가 시작되는 획기적인 역사의 순간이며, 우리의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정말 기뻐하여 찬송 부를 날이며, 이사야서가 예루살렘의 회복을 노래하면서 외친 대로 우리도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고, 동시에 우리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드려진 것입니다. 로마서에 보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롬 8:14)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양자가 되어 이제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르게 하시는 역사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 속에 탄생하심으로 인간을 들어 올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이로써 하나님의 세계 속에 이들을 통합시키므로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일어났던 온갖 불평등함을 심판하시고 이를 고르게 하시는 역사가 시작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는 순간 이런 놀라운 은총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노래하였습니다.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셨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낮은 자는 들어올리시고, 교만한 자는 깎아 내리셔서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려 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멸시받지 아니하고, 누구도 천대받지 아니하는 사회를 이룩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낮은 자들, 가난한 자들을 영적 부자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있어 은혜요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를 돌아보신 것은, 저들에게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골고루 분배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물질의 균등한 분배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땅의 재물이 아닌 하늘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영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 주려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세계를 지탱해 주던 권력이나 물질을 재편성하여 이룩하시는 나라가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선포하신 나라입니다. 권력이나 재물에 의존하지 않는 영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모든 차별이 극복된 평등한 사회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은혜의 역사는 바로 그에게서 떨어져 나간 인간과 피조세계를 자기의 생명 공동체 속에 다시 이끌어 들이시므로 저들 속에 자리 잡은 모든 욕망과 죄악, 그로 말미암은 불평등과 싸움과 죽음을 몰아내고 사랑과 평화의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에게 잉태하신 의미이며, 성탄의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전쟁과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더욱 황량하여진 인간의 세계와 더욱 파괴된 자연 환경을 만들어버린 20세기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20세기가 우리에게 안겨준 헛된 욕망과 꿈을 따라 뛰다가 당한 상처와 아픔, 우리의 어리석음을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용히 우리 속에 잉태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품으십시다. 그가 우리에게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받아들이므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욕망대로 살아온 지난날들을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의 통치 아래서 그가 주시는 은총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헛된 인간의 욕망에 휘둘려 당한 상처를 이제는 우리 속에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통해 치유 받아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분주한 삶에서 조용히 물러나 내 속에 잉태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 들여서 그가 가져오시는 하늘의 생명과 사랑과 평화와 기쁨을 맛보고 늘 감사하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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