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에게 가르칠 것(잠언 22:1-6)
  • 조회 수: 201, 2013.10.30 21:18:30
  • 본래 이 어린이 주일은 지금부터 100여년 전인 1856년 북미 마사츄셋 주 첼 시에 있는 제일 유니버살 교회의 G. H. 레오날드 목사에 의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레오날드 목사는 어린이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하여 그 부모가 어린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뜻으로 매년 6월 둘째 주일을 특별히 정해서 예배를 드리곤 하였는데 이것이 오늘에 와서는 전 세계적으로 지키는 꽃 주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꽃 주일을 맞이하여서 우리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며 키워야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7년 어린이를 위한 헌장이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이 시간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 몇 가지만 보면 가령,

    “모든 어린이는 가정과 그 권리를 누려야 한다.”
    “어린이는 가정과 사회에서 참된 애정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등. 9조로 된 헌장이 있는데 사실 이 헌장의 원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린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와 같으니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으로 어린이의 권리를 옹호해 주셨습니까? 

    그러므로 어린이 주일은 엄격히 말하면 어린이의 명절도 되지만 사실 어른된 사람들이 경고를 받는 날이기도 합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인생의 진리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수많은 어린이를 키워본 교육자나 가정의 부모님들에 의해서 확증된 실제적 지식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번역에는 좀 다른 말로 표현했습니다. train up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 말은 “가르치라”는 말보다는 “길들이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길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사실 사람을 길들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옛날이나 오늘이나 어린이를 어떻게 키우나 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당면한 문제입니다. 

    꽃과 같이 아름다운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꽃과 같이 그 마음도 아름답게 깨끗하게 키울 수 있을까? 

    대개 사람을 생각할 때 육신과 정신과 영혼으로 봅니다. 자녀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정신을 건전하게 양육시키고 영혼을 바로 키우려면 어떻게 하여야 될까? 이것이 오늘 우리 믿는 부모의 당면한 문제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건강한 몸으로 자라고 지혜가 있어서 가령 학교에 다니는 아이로 말하면 좋은 성적으로 공부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부모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물론 몸도 건강해야겠고 공부도 좋은 성적으로 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면으로 후원하여야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몸의 주인이 되는 영혼이 바로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 여간 힘쓰지 아니하면 아니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이가 나기 전부터 여러가지로 조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나면 신명기 6장 4절 이하에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여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그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건전한 부모에게서라야 건전한 자녀가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건전한 자녀를 가지려면 그 부모가 먼저 경건한 아버지, 경건한 어머니가 되어야겠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겠습니다. 

    아마 구약의 가장 모범적인 어머니를 꼽으라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기억하게 될 줄 압니다. 한나가 그 아들 사무엘을 성막에 데리고 와서 제사장에게 맡기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는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로써 받은 아이를 온전히 그 평생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아이를 올바로 키우려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성모 마리아도 결레의 날이 다할 때에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친 기록을 누가복음 2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인데 더구나 다른 모든 기업 가운데도 가장 귀한 기업이요, 우리 부모될 사람은 그 청지기인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하게 주신 자녀를 온전히 하나님께 다시 바쳐서 내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이 아이를 하나님의 뜻대로 키우는 것은 모든 믿음있는 부모님들의 의무인 것입니다. 

    가령 여기 어떤 아버지가 사업을 잘해서 좋은 집 짓고 어린아이에게 모든 편의를 보아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책임이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크리스천의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아이를 하나님의 뜻대로 길러서 하나님께 자녀를 삼게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집안 살림 잘하고 어린아이를 깨끗이 의복을 입히고, 영양가를 생각해서 골고루 음식을 먹이고 이와같은 것 다 잘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러나 어머니의 책임이 거기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귀한 어린이를 믿음의 소유자로 만들어 장차 교회를 메고 나가며 그 가정에서 믿음의 유산을 이을만한 경건한 자녀를 기르는 것이 믿음있는 어머니의 책임입니다. 

    아무리 부모된 사람이 다른 것 잘 했다고 하지만 믿음으로 키우는데 실패했다고 하면 사실 크리스천 부모로서는 제일 큰 실패인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어린이를 믿음으로 길들일 수 있습니까? 우선 믿음으로 자랄 수 있게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줄 책임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좋은 분위기란 말은 좋은 집, 좋은 가구,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정에 믿음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야겠다는 말입니다. 

    꽃이 아름답게 자라서 피려고 하면 햇빛이 잘 쬐이고, 통풍이 잘되고, 땅이 비옥하고, 적당한 수분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의 영과 육이 바로 잘 자라려고 할 것이면 우리 가정의 믿음의 분위기가 좋아야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들의 가정의 믿음의 분위기를 한번 살펴봅시다. 혹시 겨울 날씨같은 가정은 없습니까? 문자 그대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충만합니까? 

    이렇게 사랑이 넘치고 기쁨이 가득하고 화평스러운 가정에서라야 어린이의 영혼이 바로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대개의 문제 아동들이 그 가정의 불화 가운데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좋은 분위기 안에서라야 이 자라나는 싹들이 잘 자라서 빨갛게 혹은 노랗게 아름다운 꽃이 필 것입니다. 가정의 분위기가 어린이를 믿음으로 키우는데 얼마나 필요한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정 뿐만 아닙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좋은 분위기는 어린 심령을 바로 아름답게 자랄 수 있게 합니다. 

    오늘 미국인들의 한 가지 부러운 것은 그들의 돈이 아니라 친절과 예의, 이해와 동정 그리고 협조의 생활입니다. 그들에게서 흔히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May I help you?” 하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다정한 말입니까 ! 

    우리가 교회 안에서도 이렇게 귀하고 사랑이 깃든 말을 들어보기 어려워져 갑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에서는 교회 안에서 서로 부를 때에도 형님! 아우님! 누님! 이렇게 서로 성도 사이에 불렀습니다. 이렇게 가정적인 인정이 통하는 말로 불렀는데 요사이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됨을 가르쳐 주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악의없이 동정과 이해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들여 주어야겠습니다. 이렇게 길들여진 친절과 예의, 이해와 동정 그리고 협조의 생활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의 앞날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어린이를 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자녀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귀로 듣고 보는데 매우 민감합니다. 부모의 언어와 행동은 어린이의 심령의 거울에 깊이 새겨집니다. 부모가 좋지 않은 말을 쓰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말 쓰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싸우면서 자녀에겐 형제간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쓸데없이 외출을 자주 하는 어머니가 아이는 나가 놀지 말고 집에서 공부하란다고 어머니의 말에 권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부모가 어린이들 앞에서 하는 일, 하는 말이 모두가 어린 자녀의 도덕 생활의 장성에 있어서 출발신호가 됩니다. 

    부모가 어린이에게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말로 가르치려 해도 어린이들은 그 부모의 언행과 일상생활에서 영향을 받고 부모의 하는 행동은 모두가 옳은 것이라는 어린 자녀의 장래 인격의 표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디모데같은 분은 본래 그 어머니와 외조모의 진실한 믿음을 본받아서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배웠고 그 인격을 본받아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의미깊은 말씀 한 마디를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사도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생활을 하기에 애썼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힘쓰는 이것을 너희도 좀 닮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러분 ! 

    과연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꼭 여러분의 인격을 본받아도 아무런 손상이 없겠습니까? 과연 여러분이 온전히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 노력합니까? 

    어느 부모나 자녀가 잘되고 좋은 사람되기를 원하는 것은 똑같은 줄 압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되게 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은 부모의 모범이 귀합니다. 

    이런 풍자적인 이야기를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열 발 달린 게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 새끼를 낳은 게의 어미가 그 새끼들이 나와 노는 것을 가만히 보니 다른 짐승들은 눈이 앞에 달렸으니 앞으로 가는데 자기 새끼들만은 옆으로 기어다닌단 말이에요? 그래서 섭섭한 어미 게가 한번은 새끼 게들을 다 불러다 모아놓고 감동되리만큼 일장의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연설이 다 끝난 다음 호령을 쳐서 “앞으로 가!” 하였더니 한 마리의 예외도 없이 옆으로 벌렁벌렁 기어간단 말이에요? 속이 답답해진 어미 게는 옆으로만 기어가는 새끼 게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한 마리의 새끼 게가 불만스럽다는 둣이 어미 게에게 대들었습니다. 

    “우리더러만 그러지 말고 어머니가 한번 가르쳐 보여 주세요.” 

    그래서 어미 게는 새끼 게의 말대로 앞으로 두어 발자국 걸어갔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나니까 앞으로 두어 발걸음 옮겨 놓았던 어미 게는 어느 샌가 옆으로 기어 숨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새끼 게들은 깔깔대며 웃어대고 어미 게도 그후에는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내가 하지 못하면서 남더러 하라는 어리석음이 어떠한 것을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자녀되게 하기 위해 부모된 우리가 좋은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이를 기르는데 특히 크리스천의 인격으로 바로 양육시키는 일은 큰 일 중에도 큰 일입니다. 이것이 사실 부모의 힘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하나님과 아이, 아이와 부모, 부모와 교회 그리고 나라가 긴밀한 협동을 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 부모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아이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 생활을 바로 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며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 주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새 사람으로 길러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부모된 책임만 바로 다할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
    우리 교회에서 자라나고 꽃과 같은 어린이들 저들의 육과 영을 지켜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잘 자라 귀한 인재들 되게하여 주옵소서. 어린이를 맡은 부모님들에게 더욱 은혜 베푸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잘 키우게 하여 주옵시고 특별히 어린이를 지도하는 여러 선생님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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