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언 22:01-16/ 믿음으로 길들이라
  • 조회 수: 127, 2013.11.09 20:15:08
  •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오월의 첫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킵니다. 본래 이 어린이 주일은 지금부터 140년 전인 1856년 미국 메사츄세츠주 첼시에 있는 제일 유니버설교회의 레오날드 목사님에 의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레오날드 목사님은 어린이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 그 부모가 어린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뜻으로 어린이 주일을 정해서 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이것이 오늘에 와서 전세계적으로 지키는 어린이 주일이 된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며 키워야 할까 하는 데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7년에 어린이를 위한 헌장이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을 이 시간 다 말씀드릴 수 없고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하여 모두 아홉 개 조항으로 되어있습니다.

    ․ 모든 어린이는 가정과 사회에서 그 권리를 누려야 한다.
    ․ 어린이는 가정과 사회에서 참된 애정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 헌장의 원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으로 어린이의 권리를 옹호해 주셨습니까? 어린이 주일은 엄격히 말하면 어린이의 명절도 되지만 사실 어른 된 사람들이 경고를 받는 날이기도 합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인생의 진리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수많은 어린이를 키워 본 교육자나 가정의 부모님들에 의해서 확증된, 실제적인 지식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번역에는 “train up”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가르치라’보다는 ‘길들이라’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길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사실 사람을 길들이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옛날이나 오늘이나 어린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당면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꽃과 같이 아름다운 어린이를 꽃과 같이 그 마음도 아름답고 깨끗하게 키울 수가 있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제일 큰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소망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의 발표를 보니 초등학교 학생 중 93퍼센트, 중학교 학생 중 96퍼센트나 학교 수업 외에 과외로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학생이나 중학교 학생의 거의 모두가 학교수업 말고 과외수업을 받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대개 사람을 육신과 정신, 그리고 영혼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정신을 건전하게 양육시키고, 영혼을 바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이 모든 우리 믿는 부모가 당면한 문제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건강한 몸으로 자라고, 지혜가 있어서 학교에서 좋은 성적으로 공부하면 그것으로 만족해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부모들은 그것만 가지고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믿는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도 몸이 건강하고, 공부도 잘하도록 여러 가지 방면에서 후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는 가정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몸의 주인이 되는 영혼이 바로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 힘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여러 가지로 조심한 것은 말할 것 없고, 아이가 세상에 나면 신명기 6장 4절 이하에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이렇게 해야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건전한 부모에게서 건전한 자녀가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자녀를 가지려면 그 부모가 먼저 경건한 아버지, 경건한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마 구약에서 가장 모범적인 어머니를 꼽으라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생각할 것입니다. 한나가 그 아들 사무엘을 성막에 데리고 와서 제사장 엘리에게 맡기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는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기도해서 받은 아이를 온전히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아이를 올바로 키우려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결레의 날이 될 때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친 기록을 누가복음 2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인데 더구나 다른 모든 기업 가운데도 가장 귀한 기업이요, 우리 부모 된 사람은 그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하게 주신 자녀를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이 아이를 하나님의 뜻대로 키우는 것은 모든 믿음 있는 부모의 의무입니다.

    여기 어떤 아버지가 사업을 잘해서 좋은 집을 짓고, 어린아이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맛난 음식 먹이고, 용돈 넉넉히 주고, 불편 없이 돌보아 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책임이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는 아버지가 아이를 하나님의 뜻대로 길러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집안 살림 잘하고, 어린아이에게 깨끗한 옷 입히고, 영양가 생각해서 골고루 음식 먹이는 것과 같은 것을 다 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책임이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한 어린이를 믿음의 소유자로, 장차 교회를 메고 나가며 그 가정에서 믿음의 유산을 이을 만한 경건한 자녀로 기르는 것이 믿음 있는 어머니의 책임입니다. 부모 된 사람이 다른 것 다 잘했다고 해도 믿음으로 키우는 데 실패한다면 사실 그리스도인 부모로서는 제일 큰 실패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자녀를 믿음으로 길들일 수 있습니까?
    첫째, 믿음으로 자랄 수 있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은 분위기라는 말은 좋은 집, 좋은 가구, 좋은 옷, 좋은 음식, 넉넉한 용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정의 믿음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꽃이 아름답게 자라서 피려면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고, 땅이 비옥하고, 적당한 수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꽃을 사랑해서 볼 때마다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정의 아이들이 영과 육이 바로 자라게 하려면 우리 가정의 믿음의 분위기가 좋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가정의 믿음의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혹시 겨울 날씨같이 싸늘한 가정은 없습니까? 문자 그대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화평과 기쁨이 충만합니까?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자녀도 사랑을 베풀 것 아니겠습니까? 부모가 밤낮 싸우면서 아이더러 사랑하라면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부모가 다른 사람 존경하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 아는 인격을 가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부모가 성실 근면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인격으로 자라지 않겠습니까?
    좋은 분위기 안에서라야 이 싹들이 잘 자라서 빨갛게, 노랗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입니다. 가정의 분위기가 어린이를 믿음으로 키우는 데 얼마나 필요한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애들이 학교에 갔다 집에 오면서 제일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머니가 집에 있다가 반가이 맞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왔는데 어머니가 안 계셔서 썰렁한 빈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어린이들에게는 가장 싫은 것이라고 합니다. 돈 들여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의만 있으면 됩니다. 
    저는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사로서 여러 어머님들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절대로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집을 비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도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절대로 모임을 갖지 않습니다.

    가정뿐만 아닙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좋은 분위기는 어린 심령을 바로 아름답게 자랄 수 있게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한 것처럼 화평을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화평한 분위기를 만들려면 서로가 양보하고, 서로가 섬기고, 서로가 존경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 됨을 우리의 교회 생활을 통해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악의 없이 동정과 이해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들여야겠습니다. 
    이렇게 길들여진 친절과 예의, 이해와 동정, 그리고 협조의 생활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자기 자신의 앞날에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둘째, 자녀에게 부모는 좋은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귀로 듣고 보는 데 매우 민감합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은 어린이의 심령에 거울처럼 비쳐집니다. 부모가 좋지 않은 말을 쓰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말 쓰기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싸우면서 자녀가 형제 간에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말씀을 들으면 어린이들이 학교에 와서 친구들과 같이 지내면서 하는 말, 행동을 보면 그 부모의 직업을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쓸데없이 외출을 자주하는 어머니가 아이더러 나가서 놀지 말고 집에서 공부하라고 한다고 해서 어머니의 말에 권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부모가 어린이 앞에서 하는 일과 말이 모두 어린 자녀의 도덕 생활의 전선에 있어서 출발 신호가 됩니다.
    나는 부모님 섬기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면서 내 자녀에게는 부모 된 나를 잘 섬기라고 기대도 안하겠지만 해서도 안됩니다. 내가 부모를 섬긴 것만큼 내 자녀가 내게 대해 준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어린이에게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말로 가르치려 해도 어린이들은 말보다는 그 부모의 일상생활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가 하는 행동은 모두가 옳은 것이라는 어린 시절부터의 생각 때문에 부모는 어린 자녀의 장래 인격의 표본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디모데가 하나님의 훌륭한 일꾼이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는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의 진실한 믿음을 본받아서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배웠고 그 인격을 본받아서 그처럼 귀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의미 깊은 말씀을 한마디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생활을 하기 위하여 애썼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힘쓰는 이것을 너희도 좀 닮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꼭 여러분의 인격을 그대로 본받아도 아무런 손상이 없겠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온전히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 힘쓰십니까?

    어느 부모나 자녀가 잘되고 좋은 사람 되기를 원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 되게 하기 위하여 부모의 모범이 귀합니다. 아이를 기르는 데 있어서, 특히 그리스도인의 인격으로 바로 양육시키는 일은 큰 일 중에도 큰 일입니다. 이것이 사실 부모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이와 부모, 부모와 학교, 하나님과 아이, 부모와 교회가 긴밀하게 협동을 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부모 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이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 생활을 바로 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며, 어떻게 하든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가르쳐 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새사람으로 길러주는 것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 중에 요긴한 말씀은 6절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구약 출애굽기에 보면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죄에 대하여 말씀하신 성경 구절입니다. 
    모세는 이 말씀이 너무 인상적이고 그에게 잊혀지지 않는 말씀이어서 출애굽기 34장 7절에서 다시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후에 신명기 5장 9절에 또 말씀했습니다. 모세는 이 말씀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부모의 지은 죄가 3, 4대까지 갑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러니 부모가 가정에 대한, 특히 자녀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큽니까?
    갈라디아서 6장 7절의 말씀은 너무 옳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은 대로 거둡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기에 세 가지 기본 명령이 있습니다. 사랑과 훈계, 그리고 가르침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잘 길들여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도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자녀 하나 하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으신데 이것을 발견해서 바로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기의 어떤 욕망과 야심을 자녀에게 씌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내가 자녀들에게 옳게 행하고 있는가?” 자문해야 할 뿐 아니라, “나의 가르침이 아이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 반성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를 낳도록 위임받았고 일정 기간 교육시키고 양육하는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를 잘 길들여야 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교육과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인사하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식사하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줄서는 것도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에서 생활하는 것이나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이나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사랑과 인내로 지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린애라도 집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습관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휴지통을 버리는 것은 다섯 살만 되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일에 휴지통을 비우다가 방바닥에 휴지를 흘렸으면 어머니는 그 아이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흩어진 종이를 모조리 줍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훈련을 잘 받은 아이는 커서도 무슨 일이든 책임 있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식은 서적을 통해서 얻지만 지혜는 힘든 일을 통하여 배웁니다. 일을 통해서 배우는 지혜를 “Transfer wisdom(이동 지혜)”라고 하는데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를 잘 훈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인 엘리가 그의 아들을 훈계하지 못했을 때 그 집에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사무엘상 3장에 보면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했습니다. 
    잠언 13장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매를 아끼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채찍은 사랑의 방법입니다. 잠언 29장 15절에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또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은 음부에서 구원됩니다.

    어린애들이 귀엽다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학자의 말에 의하면 아주 어릴 때 안 만져야 할 것을 만지고, 안해야 할 일을 하면 무조건 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커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는 때리지 말고 말로 이해를 시키라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그와 반대입니다. 어릴 때는 내버려두고 크면 때립니다. 그러니까 자녀가 반항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언젠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데 “내가 너에게 돌보라고 맡긴 자녀를 어떻게 했는가? 너는 자녀를 믿음으로 길들였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넘쳐야 합니다. 자녀를 믿음으로 잘 양육해서 여러분 가정의 자녀가 여러분의 자랑과 면류관이 되고, 사회와 국가, 그리고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12편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했습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모든 가정 위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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