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신 복을 따라(신 16:16-17)
  • 조회 수: 150, 2013.01.28 19:22:06
  • 일년의 네 계절 가운데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거두어 드리는 가을은 시골 농촌 사람이나 도시에 사는 사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넉넉함과 더불어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하며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추수의 기쁨은 모든 이의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아가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려 나아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편 5절)" 라고 말씀한 것처럼 눈물로 씨를 뿌리고 땀으로 그것을 가꾼 사람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씨를 뿌리지 아니한 논과 밭에서 곡식을 거두게 하는 기적을 베푸시거나 적게 뿌리고 곡식을 가꾸지도 아니하는 게으른 농부에게도 풍요를 주시는 요행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좋은 씨를 골라 씨를 뿌리며 추위와 더위와 가뭄과 홍수를 이겨내며 땀을 흘려 성실하게 노력한 농부의 밭에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고 거두게 하시는 복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그 추수의 기쁨을 자신이나 죽은 조상이나 다른 신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추수 감사절의 의의입니다.

    1. 추수감사의 성경적 배경

    먼저 생각할 말씀은 우리가 추수의 기쁨을 조상에게 제사하는 추석대신에 오늘과 같은 추수 감사절로 지키는지 그 배경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회 일각에서도 지금 우리들이 지키는 추수 감사절은 미국 교회의 수입품처럼 생각하고 우리 나름대로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는 추수 감사절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추석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자는 토착화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지키는 추수 감사절의 유래나 근거는 우리 민족의 정서나 미국 교회의 정서적 유물이 아니라 성경에 그 근원을 두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성경적인 근거가 바로 오늘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삼대 절기 중에 하나인 초막절이라고도 하는 수장절입니다.

    (신 16:16)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신 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이처럼 추수감사절인 초막절이 다른 명절들과 함께 묶여져 있는 것은 추수 감사절이 단순히 추수의 기쁨만에 대한 감사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치신 장소는 아무 것도 씨뿌릴 것이 없는 광야였으며, 그들이 감사해야 할 장소는 우상이 만연한 가나안 땅에서 바알이라는 결실의 신에게 감사하는 이방인들이 보는데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드려야만 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사가 바알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의 감사와 크게 다른 것은 추수에 초점이 있지 않고 출애굽의 구원에 있다는 것과 감사의 대상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혀지는 우상이 아니라 눈에 보여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는 공허하게 보여지는 감사라는 것입니다. 만일 감사의 초점을 구원이 아닌 결실에 둔다면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참된 감사를 할 수 없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감사와 이방인의 감사의 본질적인 차이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유월절이 없었다면 그들에게 추수의 기회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먼저 출애굽의 해방을 감사하는 무교절을 지키는 것이며, 그들이 첫 열매라는 적은 수확을 얻었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면 이제 일년의 모든 농사를 다 끝내었을 때 더 많은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신앙의 패키지로 당연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무슨 일을 할 때에 그것이 운동이든지 기술이든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1) 그 만도 못한 경우, 2) 그 정도인 경우, 3) 그 보다 더 잘하는 경우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에 있어서 누구와 비교하든지 그만도 못한 감사나 그 정도의 감사가 아니라 그 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 감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던 초막절 정도나 미국 사람들이 칠면조 고기를 뜯으며 성탄절 행사보다 더 성대하게 지키는 청교도 수준의 모방이나 반복의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추수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 내가 받은 구원과 오늘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그들 못지 아니한 보다 더 크고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추수감사의 역사적 배경

    그렇다면 우리 한국 교회에 추수 감사절을 가르쳐 준 미국 교회의 추수 감사절의 역사적 유래는 어떠한지를 알아야 과연 우리가 받은 구원과 축복이 그에 못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해마다 추수 감사절이 되면 이상적인 감사의 모델을 미국의 조상 청교도들의 추수 감사절에서 찾게 되는데 그 이유는 사대주의 산물이 아니라 그들의 감사가 남다른 감사이며 그 감사 정신이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기쁜 일이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2) 기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3) 역경 중에서도 여전히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며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요?
    미국 사람들은 추수감사절 때 옥수수 다섯 개를 식탁에 올려놓고 옛날 청교도들이 미국땅에 정착할 때 하나님께 받았던 은혜를 회상해본다고 합니다. 1620년 4월 5일 102명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나는 데서부터 그 기원을 찾게 됩니다. 그들은 메이플라우어 라는 배를 타고 망망한 대해를 항해하다가 도중에 51명이 죽었고 장장 3,400마일(5440Km)을 항해하여 뉴잉글랜드 "프리마우스"라는 곳에 정박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했던 사람 중의 반이 죽었고 산 사람도 대부분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건강한 사람은 일곱 사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추위와 질병과 인디안의 도전을 극복하면서 그 다음 봄이 되었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영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뉴잉글랜드에 도착해서 한해 겨울을 지낼 때 먹을 것이 없어 1인당 옥수수 5개씩을 배급받아 그것으로 연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년을 지내는 동안 맹수의 위협과 원주민들의 살상공격, 그리고 질병과 싸우고 굶주림과 싸우다가 남은 사람의 반수가 죽고 49명이 생존한 가운데 땅을 개간하여 옥수수를 심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울창한 숲속에 들어가 짐승들을 사냥하여 일용할 양식을 삼으며 보내었습니다.

    땅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감자를 심고 옥수수와 호박을 심었는데 가을에 그 열매를 거두는 추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거둬들인 얼마 안 되는 곡식을 모아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이 예배가 바로 첫 번째 추수감사절 예배였습니다. 그들의 추수감사절 예배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가운데서 지극히 원시적인 여건과 가난한 사람들의 손길에 의하여 드려진 예배였습니다. 그들이 드린 추수감사절의 예배는 동료를 절반이나 잃어버린 예배로서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동료들의 묘지 곁에서 드린 예배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함께 쓰던 공동변소도 불이 나서 타 버린 상태에서 얼어붙은 땅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예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는 곡식을 가지고 한해 겨울을 지내려고 하니 까마득하고 추위와 질병과 토인들의 내습을 이겨나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까 불안하기 그지없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7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7일 동안의 금식기도를 마친 후에도 여전히 두렵고 마음이 평안하기를 못해서 한 주간 더 금식 기도 할 것을 제의하자 한 농부가 '여러분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서 많은 친구들을 잃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셔서 농사를 지어 추수하여 곡식을 쌓아둘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제는 금식을 그만두고 두렵고 불안한 생각을 바꾸어서 주님께 모두 맡겨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라고 제의를 하였습니다.

    그 농부의 제의를 받아들여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린 다음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며 기뻐하고 춤추게 되었던 축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적인 추수 감사나 역사에 기념할 만한 감사는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어느 해보다 태풍도 가뭄도 없었고, 어느 해보다 장사가 잘 된 것을 감사하는데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고귀한 구원의 은총과 신앙의 자유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순경이 나리 역경 중에 하나님께 드려진 감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들이 그렇게 감사할 수 있게된 뿌리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을 먼저 발견해야만 오늘 우리도 그 이상의 질 좋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다고 하지만 돌이켜 보면 오늘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미국의 조상 청교도들과 비교가 되지 아니하는 더 크고 더 많고 더 좋은 복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보다 더 좋은 감사를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금년은 어느 해보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오히려 누가 알곡 신자이며 누가 쭉정이 신자인지를 잘 구분할 수 있는 기회이며, 금년은 어느 해보다 하나님께 가장 질 좋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한숨을 쉬는 추수감사가 아니라 기쁨의 축제적인 감사예배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우리들이 받은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과 비교할 때 우리가 받아 누리는 구원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고상하고 아름다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보면 해마다 죽는소리이고 형식적인 감사이고 그 정도가 아니라 그 보다 못한 억지 감사가 오늘의 고난을 자초하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풍요로웠을 때보다 더 질 좋은 감사를 드려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경제는 과거의 호황과 비교하면 감사대신 한숨만 나오는 형편이지만 청교도들의 첫 해 수확과 비교하고 앞서간 한국 교회의 선진들이 보리 고개를 넘으면서도 일년 농사를 추수하고 난 그 곡식을 추수 감사예물로 교회 마당에 쌓아 놓던 그 때와 비교하면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아직도 감사할 것이 많은 사람들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들의 감사

    신16:17절에 보면,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한 말씀과 같이 한 해 동안 하나님께 받은 복을 따라서 최선을 다해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물질을 삶의 최대 가치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금년 소득이 지나간 해보다 더 많을 경우에만 복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오히려 감사가 아니라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금년은 어느 누구도 감사할 사람이 없는 한해가 되고 말 것입니다.

    『D.L 무디』가 하루는 정신 병동을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울타리 저쪽에서 막 뛰어옵니다. 그리고는 무디를 향해서 소리를 지르는데, "여보시오! 당신은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데 대해서 감사한 적이 있습니까?" 하고 소리를 지르는 말을 듣고 무디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을 주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별로 감사하지 않은 것을 새롭게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헌신하면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육간에 내게 주신 복을 따라 힘을 다하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신16: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지난날의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고 안정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인하여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 되었던 것에서 해방된 것처럼 방탕했던 나, 병약했던 과거의 나를 죄와 질병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하시면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며 온갖 질병과 환난 중에서도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켜 주신 큰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신16:15절에 보면, "...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했습니다.
    즉, 아직은 아무런 감사 거리가 없지만 앞으로 하나님이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질 좋은 감사는 "축복의 때만이 아니라 환난의 날에도, 평안의 때만이 아니라 고난의 날에도, 건강의 때만이 아니라 병중에도, 성공의 때만이 아니라 실패 할 때도, 장수의 때만이 아니라 죽음의 날에도 감사" 하는 것입니다.

    주시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주신 것 중에서,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 중에서,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 감사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놓는 것이 될 것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 3:9-10)"
    너무나 잘 살고 못 사는 데에만 목표를 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스펄젼은, "복된 행위를 얻은 돈 한 푼이 저주받을 행위로 얻은 백 만원보다 낫고, 거지 나사로가 막은 밥 부스러기가 부자가 먹은 진수성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눅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시37: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
    (잠15: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와 같이 참다운 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땅위에 사는 동안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땅위에 사는 동안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보호와 인정하심을 받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말씀을 알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감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있다는 증표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그 사람의 내면에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자신이 성공을 하든지 실패를 하든지 그 모든 주권이 지금도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이루어지며 나는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떤 현실에 처하든지 절망은 없고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2) 감사는 자기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증표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이 더 크게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셨다는 생각을 하면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데 그 생각보다는 이것은 내가 피땀을 흘린 것인데 라는 생각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상대주의에 빠져 하나님을 불공평한 분으로 생각하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크게 떠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일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교하지 아니하는 무조건적인 절대 감사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없어도 오직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한 가지 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은밀한 선행을 기뻐하시면서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과 성도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베풀어주신 복에 대해서 감사를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생색을 내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으로 말미암아 더욱 그의 백성들이 행복 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까닭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으나 인간이 타락한 후 그 영광을 귀신에게 돌리고 사단에게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은 그 영광을 당신께로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와 찬송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 됩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매사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셨을 때 한 명만 돌아와 감사하는 것을 보고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했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처럼 감사를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스펄죤은 "촛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도 필요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나쁜 환경 속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수 있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좋은 환경 속에서도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혀 고생을 당하였지만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9-21)"

    영적인 건강, 정신적인 건강, 마음의 건강, 육체의 건강을 원하시면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박사님 아멘 약 주세요"란 책을 쓴 황수관 박사에 의하면 우리 몸속에 암세포가 매일 생기는데 근심, 걱정, 불평이 있을 때 이 암세포가 자라서 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우슈비츠 같이 지옥같은 포로수용소에서도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사람은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영육간에 복을 헤아리면서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진정 행복하려면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만 아니라 인간 관계 속에서도 '고마워요 감사해요' 서로 칭찬하며 적은 일에도 감사하며 인사할 때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예 화

    독일에서 한창 기근이 심할 때 한 부자가 매일 빵을 구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빵을 받아든 사람들 중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저 큰 것만 골라 잡을려고 애를 쓰더랍니다. 그런데 크레첸이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제일 나중에 남아서 사람들이 가져가고 남은 것, 제일 작은 빵을 가져가면서 "할아버지 감사합니다"하고 진심으로 꼭 인사하고 가더랍니다. 할아버지는 그 소녀의 감사합니다 라는 말한마디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제일 작은 빵 다섯 개를 만들어 그 속에 은전 한 개씩을 넣어서 그 소녀가 가져가게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은전 다섯 개를 도로 가져와서 할아버지에게 되돌려 주더랍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그 소녀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신단다. 너한테 주려고 일부러 제일 작은 빵에다 은전을 넣어 만든 거란다"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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