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례자가 누리는 축복(마태복음 3장 13절-17절)
  • 조회 수: 157, 2012.12.20 12:49:54
  • 오늘은 우리 교우들 가운데 학습과 세례를 받는 분들이 있어서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세례는 언제 시작하였을까요? 우리가 하는 예식들은 다 그 기원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세례도 그 기원이 있습니다. 이 세례의 기원을 말씀드리자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세례 예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인데 예수님 당시 제사장의 문중들은 대개 유다 광야 쿰란에 거주하였다고 합니다. 쿰란에서 성경을 사본하는 일을 전임하였는데 성경을 사본 할 때는 몸을 씻고, 글을 쓰는 붓을 물에 빨면서 엄숙한 작업을 했습니다. 쓰다가 글자가 틀리면 손을 씻었고,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을 쓸 때는 반듯이 붓을 물에 빨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혹 틀리게 쓰여 졌으면 죄스럽게 여겨 온 몸을 씻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접하는데 거룩해야 한다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 사본을 했던 제사장의 아들로서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접하면서 목욕을 하고 손발을 씻는다면 입교자와 같이 처음 하나님을 모시게 된다면 무엇보다도 깨끗이 해야 되지 않나... 이런 차원에서 물로 씻는 세례를 베풀었다고 해석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 시작하시기 전에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부활하신 후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범과 명령으로서 세례예식이 기독교 예식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세례는 교인이 되는 의식으로서 첫째, 문답식을 통해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둘째 영적인 의미로서는 죄를 씻는다는 표로 물로 적시거나 잠그거나 하는 과정을 밟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례의 신앙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이 3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세례는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는 인치심입니다. 고후1장 22에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 말씀하는데, 인치심이란 나는 하나님의 것으로 예속된다는 말이며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하고 인정하는 예식입니다. 인이란 고대 시대에 노예가 주인에게 가면 받는 불도장인데 이마나 팔에 맞죠. 이 흔적은 평생 흉터로 남아서 지워지지 않아 이 도장이 찍히는 순간부터 자유를 잃고 그 주인의 소유가 되어 그 주인의 시키는 대로, 명하는 대로 하면서 종으로 일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분들은 주님의 소유,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엄숙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세례는 죄 씻는 예식으로 용서 받는 증거의 예식입니다. 엡 5장 26-27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 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용서는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러기에 세례는 용서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눈으로 보여 믿게 하는 가시적인 예식입니다. 물로 더러운 것을 씻듯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씻는다는 표식입니다. 또한 이런 비슷한 관점에서 바울은 물에 들어감으로 죄에 대하여 죽고, 물속에서 나옴으로 새롭게 산다는 의미로 해석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물 자체가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을 통한 용서의 확신을 주시는 예식입니다.

     
    셋째, 세례는 신앙의 공동체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예식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베드로는 주님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통해 베드로는 주님께 칭찬을 들었지요. 베드로가 그 고백대로 살았기 때문에 칭찬 받은 것이 아닙니다. 얼마 후에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형편없는 사람이었죠. 그러나 올바른 신앙고백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신앙의 고백은 그렇게 대단합니다. 살아가면서 그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사랑해 본 사람은 압니다.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사랑의 고백도 이런 능력이 있는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고백은 '인생관'이 바뀌는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현대인은 신앙의 위기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삽니다. 이런 위기가 올 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자신의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내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뜻대로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약속대로 산다는 것이 말처럼 녹녹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만 믿는다고 맘 먹은대로 살아지는 세상이 아니고, 또 세상 사는 일에 장애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삶의 중심을 잃었을 때 방황하고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사치처럼 느껴 질 때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잊고 쓸쓸히 냉담하며 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고백 때문에 주님은 베드로를 붙들어주셨습니다. 비록 베드로가 사탄이 밀 까부르듯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였지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는 산앙고백을 했기에 고백을 받은 주님이 그를 끝까지 붙들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를 통해 신앙고백을 분들과 이미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가 다 주님 보시기에 완전한 삶을 살지는 못할지라도 우리가 고백한 정직한 신앙의 고백을 받고 주님이 기뻐하셨기에 우리가 넘어질지라도 우리를 붙들어가면서 복의 길로, 천국의 길로 우리를 반드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전에는 마귀의 소유였으나 세례예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치시는 예식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주인이 마귀에서 하나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둘째,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이 세례의 예식을 통하여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사는 축복된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교인들 앞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끝까지 주님을 사랑한다는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성도들이 들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다 들으셨습니다. 이 고백을 들을 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와 평생을 함께 하시며 베드로를 붙들어주신 것처럼 우리와도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은 세례자들은 이러한 세례의 축복을 바로 알고 오늘의 신앙고백이 천국 가는 그 순간까지 변치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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