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자의 온 것은(막 10 : 35 - 45)
  • 조회 수: 66, 2013.02.06 21:09:58
  •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인류의 최대의 축복인 성탄의 기쁨이 성도 여러분들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원한 멸망에 빠진 죄인들에게 주님이 이 지구촌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은 모든 성도들의 기쁨이요, 소망입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이 축복스러운 성탄절이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빠진 체 기이한 성탄절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탄절 문화는 이제 성도들마저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거리낌이 없이 하고 있다는데 여간 심각하지가 않습니다.
    동심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짓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이미 '예수님이 오신 날'이 아니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날'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왜 우리는 자녀들에게 예수님이 너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이렇게 좋은 선물까지도 예수님의 은혜로 받게 됐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오염된 성탄절 때문에 이제는 '즐거운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가 아니라 '죄송한 크리스마스'(Sorry Christmas)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보실 때 '성탄절'이 아니라 '한탄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탄절은 츄리나 화려하게 장식하고, 싼타 할아버지의 선물이나 이야기하는 절기가 결코 아닙니다.
    성탄은 나를 위하여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악을 내어놓고 자복하며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인간은 다 죄인임을 알리는 날이요,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참 구주이심을 알리는 날입니다.
    성탄 절기를 맞아 오늘도 함께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인자의 온 것은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이 오신 참 목적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자의 온 것은...

    1. 섬김을 위함입니다.

    본문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을 말씀하시게 된 배경은 35절부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야고보와 요한의 야심에 찬 발언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우리 중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열 제자들은 분히 여기는(41절)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분노와 시비는 저들이 가진 세상적 욕망과 허영 때문이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그 길이 곧 이스라엘의 왕위를 획득하기 위해 가는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절).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어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처럼 자기의 목숨까지도 주면서 섬기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관념은 섬김을 받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수정하여 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43-44절).
    여기 '섬기는 자'(        :디아코노스)는 '일군', '협력자', '봉사자', '시중드는 자', '분주히 먼지를 일으키고 다니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종'(      :둘로스)은 노예로서 주인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자입니다.
    이렇게 종으로서, 섬기는 자로서 사는 자가 큰 자요, 으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섬기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세상에서 섬김을 받는 세속적인 영광과 부귀와 권세를 구했지만 주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마땅히 섬김을 받을 위치에 계시지만 섬기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섬긴다'는 말은 십자가의 죽음, 희생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스(Jeremias)는 '섬김이란 장차 뭇 사람을 위하여 흘릴 피'라고 하였습니다.
    보튼(P.H. Bouton)은 '섬긴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 희생, 완전 성취, 곧 자기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나의 마시는 잔'(십자가의 죽음 의미), '나의 받는 세례'(고난과 죽으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십자가의 죽음도 피하지 않고 인간을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섬기는 자는 자신의 것을 주는 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 재능, 물질, 그리고 목숨까지도 주는 자가 섬기는 자입니다.
    우리는 섬기는 자만이 누리는 신령한 기쁨을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섬김'은 역설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면 으뜸이 되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44절).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어 종의 위치로 내려 사람과 같이 되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빌2:6-8).
    이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빌2:10).
    우리는 예수를 믿는 자로서 교회 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영광이란 내가 높아짐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낮아짐으로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가 올해 성탄절을 맞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2. 대속물로 주기 위함입니다.

    본문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대속물'(      :뤼트론)이란 사람이나 물건을 도로 찾아내기 위해 대신 지불하는 정당한 값을 말합니다. 노예를 해방하기 위하여 주는 속전(贖錢)을 의미합니다.
    '뤼트론'이란 범죄한 인류에게 속전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예수님께서 자신이 몸을 바쳐 그 요구와 그 분의 공의를 만족시킴으로써 인류를 죽음과 죄와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킨 사실을 내포한 용어입니다.
    모든 인생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사단의 침노를 당하여 죄와 사망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망 없는 죄인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와 사망에 대한 속가로서의 대속물이었습니다.
    흠없고 점없는 자기의 피를 우리의 죄와 사망에 대한 대속물로 지불한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롬6:23).
    예수님은 그 사망의 값을 죄없는 자신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지불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4)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물은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속량하실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죄 없으심에 대해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6절에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절에는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서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3장 5절에서는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눅19:10).
    이것이 성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는 정말 세례 요한의 고백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요1:29).
    이러한 진리를 히브리서 9장 28절에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대속물로서의 예수님의 죽으심의 효과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곧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에게 죄가 용서되는 축복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에서는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어 버린 우리를 대속물로서의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선고 내린 하나님의 심판을 그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가 없었지만, 오직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가장 비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죄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죄인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공소시효가 지나면 모든 것이 정상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죄도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도 모두 다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이렇게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면을 받게 되었으니 성도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1996년도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있습니다.
    해마다 맞는 성탄절이지만 우리 한번 다른 해보다는 다른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섬김이요, 대속물로서의 죽음이라면 그 분을 따르는 성도들도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크고자 한다면 종으로서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섬기는 자로서 묵묵히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큰 자로, 으뜸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이 축복스러운 성탄에 진정 섬기는 자로, 남을 위해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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