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는 영광을, 땅에서는 평화를(눅 2:13-14)
  • 조회 수: 291, 2012.12.24 18:59:31
  • 메리 크리스마스! 이렇게 추운 날씨 가운데서 오늘 아기 예수의 탄생을 감사하며 기념하기 위하여 예배하러 나온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을 기원합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아서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그리고 새 정부를 맞는 우리나라에도 좋은 일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는 영광, 땅에는 평화" 라고 외치며 노래하는 천사들의 노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천사들의 노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는 영광, 땅에는 평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저는 두 아들을 군에 보내면서 입으로는 ‘두 아들을 다 최전방으로 보내니 가문의 영광이다...’ 이러면서 큰소리쳤지만 실제로는 검은 선글라스로 안경 뒤로 흐르는 눈물을 감추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아버지셨던 하나님이 그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면서 뭐 그리 영광스러워서 “하늘에서는 영광...” 이렇게 했겠습니까?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아니하시고 인간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라고 주님의 오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들 군에 보내는 것도 그렇게 서운하고 눈물이 나는데 우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도대체 뭐가 영광스러워 천사들이 “하늘에서는 영광....”그렇게 했느냐 이 뜻이죠.

    우리는 그렇게 노래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기에 그렇게 중심으로 노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죽기까지 낮아지시는 주님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창조가 회복되니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조금 있으면 십자가의 죽음 너머로 부활의 영광, 새 창조의 영광....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런 영광을 외칠 수 있었던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으므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밟아야 했던 과정들은 죽기까지 낮아지는 참으로 비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으나 그 과정을 거쳐 마귀의 권세, 죽음의 권세,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셔서 모든 만물들을 그 앞에 굴복시키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확립하셨으니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우리도 하나님처럼 이런 영광을 노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사극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입니다. 사극의 시나리오는 언제나 정해져 있습니다. 주인공이 될 인물은 초기에는 고난과 인고의 세월, 그리고 더 이상 떨어질 수가 없는 처참한 형편에까지 떨어지게 되지요. 그러다가 모든 고난을 딛고 왕이 되거나 권력을 쥐게 됩니다. 모든 사극 드라마가 다 그래요. 이런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시나리오 작가는 주인공이 언제쯤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되는지 잘 압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의 실제 역사를 움직이시는 드라마의 작가와도 같습니다. 죽기까지 낮아지시다가 모든 만물을 그 발아래 굴복시키시는 그 순간을 즐기시면서 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8절 이하에서 보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어렵습니까? 비참하기까지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서도 동일한 영광을 받기 원하십니다. 믿으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 환경과 문제를 돌파하여 영광에 이르기까지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산악이이었던 박영석 대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70% 정도 해 보다가 실패한 사람은 그 다음에도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100퍼센트의 철저한 도전을 통해 실패한 사람들은 그 다음에는 반드시 성공한다.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들은 그 때에야 비로소 지옥과 천국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여러분은 반드시 영광의 자리에 오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영광의 주인공으로 쓰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너머로 기어코 부활의 영광을 체험하리라.... 이런 마음.... 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천사가 이 땅을 향해 외친 말에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평화.... 우리말에 평화를 한자로 표현하면 '平和"입니다. '평평할' 평과 '화할' 화자로 모든 이들이 서로 조화롭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조화롭게 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경제전쟁입니다. 미국의 거대 자본의 힘이 휴지조각으로 변해가고 있고, 1930년 대공황에 준하는 경제공황이 앞으로 온 세계를 뒤덮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경제학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이 무너짐을 막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또한 오늘날은 지식과 정보의 전쟁입니다. 어제의 지식이 오늘이면 정 반대로 바뀝니다. 마늘이 좋다고 하다가 또 나쁘다고 하고.... 어떤 음식이 좋아서 먹으라고 하다가 갑자기 암을 유발한다고 하고...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항상 뒤집히기 일쑤입니다. 이런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부자들도 자살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합니다. 삶의 목적이 없이 방황합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온갖 술수와 모략이 넘실대고 어제의 원수가 오늘은 친구로, 동지가 적으로 바뀝니다. 돈과의 전쟁, 사랑의 전쟁, 모두가 손에 칼을 들고 피를 흘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세상에 무슨 평화가 있습니까? 도무지 평화는 보이지 않는데.....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사업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에 서로 싸우며 더 많이 가지려고 다투다 보니 흉악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우리 마음, 우리 가정, 우리 직장에 모tu야만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어린 아기로 탕생하셨을 때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이란 아기 예수의 은총을 입은 사람, 주님을 마음에 모시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유대 땅 예루살렘은 어땠습니까?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의 지배아래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압제하고 있던 시절 아닙니까?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로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에 주님이 아기로 나신 것입니다. 람보나 또 어떤 무기를 장착하고 악의 세력들을 물리치는 열혈의 용사가 아닌 순진무구한 아기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런 분이 이 험악한 세상에 어찌 평화를 이룬단 말입니까?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한 사람은 그 때 몇몇 뿐입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과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 단지 몇몇 만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임을 알았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평화란 무엇을 말합니까? 에베소서 2장 2-3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본질상 진노의 자녀.... 누가 그렇단 말입니까? 우리가 그랬단 말이죠. 하나님이 진노할 만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 절대자에게 찍히면 불안, 공포 그 자체죠. 사람이 왜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느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을 위기를 만나면....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부처님’이 아니라.... 아이고 하나님.... 이러는 겁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어르신들이 나이가 차서 돌아가시던 순간들을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주님을 모신 어르신들은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에 얼마나 평화로운 모습으로 눈을 감는지.... 너무 은혜가 되었어요. 바들바들 떨면서 죽음 너머의 세계를 직시하는 그 어떤 두려움도 그 얼굴에 없었어요. 얼마나 멋있는 죽음입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된 상태로 죽었다면 그런 얼굴을 할 수가 없어요.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입고, 하나님과 화해가 되었으니 하나님을 만나는 저 죽음 너머의 세계도 두렵지 않다.... 이런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보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소개해주고 있는데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죄를 지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를 하나님과 회해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피흘려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합니까? 오늘도 우리는 젊은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접합니다. 부자인데도... 아니 그 잘사는 강남에 집을 가진 자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자살을 합니까? 허무해서 그래요. 평화가 없어서 그래요. 최진실 양의 자살을 시작으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자살을 했어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은 채 죽어가는 그런 부유한 자들을 보면서 물질의 풍요와 인기, 명예나 권력 그 무엇으로도 인간 영혼이 만족할 수 없다, 평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사람들은 알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참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원수됨을 끊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될 때 거기에서 비로소 물질, 환경, 명예, 사람.... 이런 외적인 것을 떠나 진정한 평화가 우리 삶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이십니까? 그러므로 아기 예수의 탄생이 인간적으로 보면 한 없이 초라하지만 그 분이 이루실 놀라운 일들은 하나님에게는 놀랍고, 엄청난 영광이 되고, 이 땅에서는 주님의 나심을 기뻐하여 이 성탄절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택함 받은 주의 백성들에게는 평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절기가 성탄절기 입니다. 굶주리는 이웃을 돌아보고,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따뜻한 정을 베풀면서 더불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능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한일서4,18)... 그러므로 주님은 이 두렵고, 낮고, 천한 곳에 오시지만 전혀 두려움이 없이 순진하고, 평화로운 아기의 모양으로 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과 평화의 왕이신 예수..... 이 분을 맞이하는 뜻 깊은 성탄절에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  직장에 평화와 사랑이 충만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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