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마19:13-15, 엡6:4)
  • 조회 수: 110, 2013.05.27 07:00:42
  •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국민의 특유한 국민성(國民性)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을 말할 때는 신사의 나라라고 하고, 독일은 근면(勤勉)과 검소(儉素)한 나라라고 하고, 미국을 말할 때는 실용주의(實用主義)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방예의지국(禮儀之國)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나라들마다 그 나라의 국민의 특성을 말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시민의 성품은 어떠한 것일까? 생각해 보게됩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그 점을 어린이들을 통하여 가리켜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은 수(數)에 치지를 아니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숫자에서 여자와 아이들은 제외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해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순례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성인 남자들만이었고, 출애굽의 숫자도 20세 이상 된 남자들만으로 60만이라고 하였고, 그 밖에 전쟁에 나갈 때도 남자들만의 수를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오늘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은 매우 파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에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안수하여 기도해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그것을 제자들이 거절하였습니다. 본문에 보면 '꾸짖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본 주님께서는 도리어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백성의 성품이 어떠해야 함을 어린이들을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1. 어린이를 통하여 우리 어른들의 거짓됨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를 내세워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고 하였을 때, 어린이들의 무엇
    을 보고 그렇게 말하였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어린이들의 순진성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어린이들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래도 말합니다. 어린이들은 꾸미
    거나 가식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체면도 모릅니다. 너무나 솔직합니다.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말하고, 갖고 싶은 그대로를 말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린이들도 이 점이 공통성입니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정직함에 때가 묻었다는 뜻입니다. 
    어린이들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지만 어른들은 벌써 가식으로 꾸밉니다. 
    천국 백성의 모델을 어린이로 삼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린이를 통하여 자신
    이 천국 시민의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게 합니다. 
    어린이들의 말, 행동, 마음씨 하나 하나에서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하겠
    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유황불에 들어갈 자들이 어떤 자들이라고 하
    였습니까? 우상숭배자들과, 짐승의 표에 인 맞은 자들과, 음행자들과 술객들
    과,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은 모두 불 못에 던짐을 받겠
    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거짓말 잘하는 자들이 도리어 출세도 하고, 사업도 성공하고, 남
    보다 앞서 갑니다. 사업도 정직하게 하면 돈을 못 벌게 되어 있습니다. 부정직
    하게 섞어서 팔고, 음식물에도 먹어서 안될 것도 넣어서 팔고, 가짜를 진짜로 
    속여서 팔아야 돈을 빨리 벌어들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것을 도
    용하고, 남의 글을 자기의 것으로 인용하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
    이 빨리 성공합니다. 그래서 지식에도 지적소유권을 보존하려는 국제법이 생겼
    습니다. 이번에 국회 의원 선거에서도 이력을 속이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던 같
    습니다. 학벌도 속입니다. 
    고향도 속입니다. 이렇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모두 속이는 것들로 차 있습니
    다. 심지어 결혼 상대에까지 속이고 결혼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들입니까?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에서는 욕하는 것이 어
    른들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싫으면 그 자리에서 
    싸울지언정 남을 모함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미워하면서 속
    이려는 어린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천국은 마치 어린이들처럼 정직한 
    자들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어린이를 통하여 우리 어른들의 고집과 교만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들은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뜻이 없습니다. 벌써 자기 주장이 생기
    고 자기 생각이 앞서면 어린아이의 성품은 아닙니다. 본문에 나타난 <어린아이>
    란 고집을 부리는 어린이가 아닌 순진한 어린이를 의미합니다. 어린이는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백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백지 같은 마음에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린이는 
    누구의 말도 다 들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호랑이하고도 말하고, 토끼하고도 얘
    기하고, 새들과 꽃들과도 대화 나눕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누구와도 친해집니
    다.

    어른들은 그것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서로의 불신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원수라는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겸손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겸손이란 단어를 아는 사람은 벌써 겸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어린이들은 겸손이란 말
    의 의미도 모르면서 겸손하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참으로 겸손한 자들은 겸손의 의미도 모르고 살아가는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겸손이란 의미를 알기에 겸손해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벌써 겸손을 의식하게 되었기에 그것은 참된 겸손만이 못된다는 의
    미입니다. 그런 것은 꾸며진 것 뿐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마태복음 18:3
    절에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
    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한 배경을 보면, 제자들 사이에서 이 후에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일
    까?' 하는 것으로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본 주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
    러 저희 가운데 세우고'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
    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결단코'라는 말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천국에는 교만한 자들은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돌이켜>라는 말은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어른들
    이 되었습니다. 교만한 마음들을 뉘우치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겸손은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의 생각을 접어놓고 주님의 말
    씀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린이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혈(血)과 육(肉)으로 들어갈 수 없
    다고 하였습니다. 즉 교만한 마음, 고집스러운 생각을 버리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겸손의 가장 큰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본체였지만, 스스로 낮추어 사람의 몸으로 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구속 사역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왜 겸손해지지 못한다고 보십니까?
    모두 자기(自己)라는 것을 죽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아직도 주님께 명도(名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믿는 자들이라고 하면서도 자기의 주장과 생각과 자존심을 더 의
    지하면서 살아갑니다. 누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불쾌해집니다. 자존심이란 
    본래대로 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유일한 존재임을 존중히 여기는 의
    미에서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과 주님을 대항하는 의미에서 자존심이란 
    천국 백성의 성품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3. 끝으로 어린이를 통하여 참된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어린이는 걱정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근심이 없습니다. 어린이는 고민이 없습니
    다. 그래서 어린이입니다. 단지 부모가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어린이는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살아갑니다. 엄마 품에만 안기면, 아빠와 함께 하면, 모
    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약속을 그대로 믿습니다. 의심 없이 믿기에 부모들은 
    자녀와의 약속을 지킵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약속을 해 놓고도 서로가 믿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계약을 하고도 그 약속을 못 믿어 공증(公證)을 합니다.
    그리고도 각서(覺書)를 쓰라고 합니다. 그러고도 약속을 파기합니다. 
    결혼식 서약을 할 때 뭐하고 합니까? "병들거나,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어떠
    한 경우에서도 이 남자(여자)를 사랑하고 도와주며 위로하면서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굳게 지킬 것을 엄숙히 서약하십니까?" "예!" 라고 대답은 쉽게 
    잘합니다.
    그렇게 서약을 하고도, 얼마 못 가서 쉽게 갈라서는 것이 어른들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약속대로 믿습니다. 아빠가 무엇을 사주기로 약속을 했으면 
    그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 믿음이 너무나 진지하기에 부모들은 자녀들과의 약
    속을 꼭 지키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어린이들
    처럼 믿는 자들에게는 왜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자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
    습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나그네 길을 걸어갔습니다. 정처 없이 하나님
    의 약속 하나만을 믿고 걸어갔습니다. 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신앙입니까? 우리
    는 그런 면에서 너무나 불신의 어른들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하나님과 겨루어보
    려는 어른들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의 세계는 불신의 세계요, 염려와 근
    심과 고민에 쌓여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동심의 세계는 무지개 같이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근심이 없습니다. 
    어린이들 중에 근심하며 자라는 어린이가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그 날 그 날
    을 있는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빈 손으로 태어나게 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른들
    은 무엇을 입고 살까?, 무엇을 먹고살까?, 어떤 집에서 살까? 그런 것에 걱정 
    근심으로 뜬 눈으로 새웁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
    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
    다. 그래서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만 걱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와, 그의 의를 구하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이 땅은 이렇게 불안하고 걱정이 끊이
    지 않는 줄 압니다.

    하나님의 의(義)를 구하면서 사는 나라라면 부(富)의 편중이 가져온 불행들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도 보면, 부가 너무나 편중되어 있기에 데모를 하고, 성토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당시 불의한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를 통하여 이렇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합니다. 어린이의 믿음
    은 무엇인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원수도 없습니다. 

    루마니아의 살아있는 순교자란 말을 듣는 리처드 범브랜드 목사가 투옥되었을 
    때 일입니다. 약 30명의 크리스천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들을 체포하고 취조하던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무슨 죄를 짓고 들어왔는지 알아보았더니, 어느 날 어린 소년이 자기를 찾아와 꽃다발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대위님! 오늘은 우리 엄마 생일예요. 나는 엄마의 생일이면 꼭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였는데, 금년에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엄마에게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엄마는 크리스천이
    기 때문에 나에게 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고,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하였
    어요. 나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기 때문에 대위님의 부인에게 이 꽃을 전
    달해 주실 수 있겠어요?" 
    대위는 그 꽃다발을 받은 후 양심에 가책을 느껴 눈물로 회개하고 그 후에 예
    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감옥에 들어오
    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믿음입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은 것은 때묻지 아니한 어린이의 마음이었기 때문
    입니다.

    어른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
    도, 그것은 입으로 말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어른들입니다.
    이런 면에서 어린이는 어른들의 신앙의 거울입니다. 어린이들을 통하여 우리의 
    일그러진 신앙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순수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지.... 깊이 오늘 어린이들을 보면서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돌이켜 이 어린아
    이들과 같이 되지않으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린이 날이라고 무엇 선물이나 사주는 날로 알아서는 안되겠습니
    다. 사실 어린이날은 어른들의 반성의 날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다시 이제부터라도 어린이들을 보면서 ① 거짓 없
    는 정직과 ② 누구와도 교제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③ 참된 믿음의 
    생활을 하다가 주 앞에 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어린이 주
    일을 맞는 진정한 의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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