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종의 원리(엡5:21-25)
  • 조회 수: 20, 2013.07.19 21:34:53
  • 우리는 먼저 부부에 관한 이야기, 부모와 자녀에 관한 이야기 종과 상전 
    에 관한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이 있 
    음을 알아야겠습니다. 그것은 21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리스도를 경외하므 
    로 피차 복종하라" 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부부관계와 부모와 자식의 관 
    계, 상전과 종의 문제에서 나오지 그것이 기도할 때나 부흥회를 할 때 또 
    는 신자끼리 모여서 말싸움할 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더란 말입니다. 
    즉 신자가 갖는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이 되고 중요한 '그리스도에게 복종 
    하라'는 원리는 종교적인 형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신앙의 본질과는 따로 떨어진 남자와 여자의 문 
    제라든가, 상전과 종의 문제라든가, 부모와 자녀의 문제만으로 등장하는 것 
    이 아니라, 그것이 주님에 관한 자세의 실천적인 묘사이기 때문에 주님에 
    관한 이야기가 붙어 나오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 
    를 주께 하듯 하라. 엡 6 : 1로 가시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 
    종하라." 5절에 보시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종과 자녀와 여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순 
    종하는 것의 실제화된 모습인 것을 알게 됩니다. 
    왜 우리보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럼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 
    을 사랑하는 신앙심의 유일한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이웃을 사랑 
    하라는 것은 주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유일한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를 사랑할 만하냐, 아니 
    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묻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예가 무엇이었던 것이 기억나십니까? 예수님께서 율법사의 질문 
    을 받았습니다(눅 10 : 25-37).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내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내 이웃 
    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그러자 지금 질문한 사람이 
    잘난 척을 하려고 다시 "그럼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어디까지 내가 사랑해 
    야 됩니까? 내가 사랑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웃이면 어디까지가 이 
    웃입니까? 내가 사는 데서 몇 미터 안에 있는 사람입니까? 어디까지가 내 
    이웃입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잘 아시 
    는 대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가 강도를 만나서 거의 죽게 되었는데 000 목사도 그냥 지나가고 00장로께 
    서도 그냥 지나갔는데 평신도가 그를 구해 주었다는 비유입니다. 그리고 끝 
    에 이렇게 묻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 쪽에서 볼 때 누가 이웃이었겠느냐? 
    율법사의 질문은 "내가 내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어디까지가 사랑을 해 
    야 되는 범위입니까 ? 내 이웃의 한계를 정해 주십시오. 이었습니다. 그런 
    데 주님의 대답은 도움을 받은 쪽에서 보았을 때 누가 이웃이었겠느냐는 것 
    이었습니다. 
    내가 어디까지 해야 됩니까? 묻지 말고 내가 사랑할 만하고 사랑할 가치 
    가 있는 사람을 골라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른 말로 해서 내가 한 사 
    랑에 보답 받은 일, 생색내는 일, 가치 있는 일, 보람 있는 일인가를 따져 
    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요구된 유일한 명령은 사랑할 것, 복종할 것, 섬 
    길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 섬김이 어떤 효과가 있었느냐는 생각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 대한 우리 마음의 실제적 표현들이기 때문 
    에 그렇습니다. 교회가 구제사업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오류가 생깁니다. 
    우리가 아무한테나 구제를 할 것이 아니라 보람이 있을 사람을 고르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지 말고 도와줘서 몇 년이 지나면 자랑할 만한 사람, 스 
    스로 자신을 돕는 사람을 선별하자. 교회도 아무데나 도울 것이 아니라 3년 
    이고 5년이고 도와서 그 교회가 괜찮아진 다음에 저 교회는 우리가 도와줘 
    서 오늘날의 교회가 되었노라고 혹시 재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돕는 것은 
    도울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로 하느냐만 따 
    져야 됩니다. 저 사람이 지금 불쌍하느냐만 따져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 
    상전이 복종할 만한 상전이냐 아니면 그 남편이 복종할 만한 남편이냐를 떠 
    나서 내가 주께 늘 복종해야 되는 그 한 가지 원리를 현실로 드러내 보이 
    는 무대가 남편과 상전과 부모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당장 이런 질문이 생각나시겠죠. '우리 남편에게 내가 복 
    종하면 내가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못 나오게 될 텐데 ? ' 그러나 사도 바 
    울이 에베소서에서 이 글을 쓸 때의 상황은 지금 우리의 상황과는 도무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는 점을 안다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지금 보다 상황이 더 나빴습니다. 이방세계에 기독 
    교를 전했더니 부부 중에서 둘이 같이 믿는 경우보다는 한 사람이 먼저 믿 
    는 경우가 많더란 말입니다. 그럴 경우 대개 부인이 먼저 믿었습니다. 그 
    럴 때 남편이 예수 믿는 문제에 대해서 시비를 걸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 
    떤 문제가 생겼는가 하면 신앙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가정을 지킬 것이냐 
    하는 양자택일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문제가 심각했 
    습니다. 예수를 따르자니 남편과 헤어져야 하겠고 남편과 헤어지지 않으려 
    니 신앙을 포기해야 되는 그런 상황, 즉 어느 쪽을 선택해야 좋을지 모를 
    형편 속에서 사도 바울은 이 글을 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기독교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주께 복종하듯 
    이 남편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더 기고만장해지 
    더라. 
    그러나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여러분께서 하실 일은 거기 
    까지입니다. 그 다음 문제는 주님 손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인이 해야 
    될 분명한 일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 
    면 "그게 맞습니다." 그래야 됩니다. 메주가 좀 빨간색을 띠겠지요. 그래 
    도 하십시오. 남편이 그래야 된다면 그것은 옳으신 말씀입니다. 따르십시 
    오. 여러분이 하셔야 할 큰 신앙의 실천이 그것입니다. 신앙의 실천으로 복 
    종하십시오, 남편의 영혼과 그의 영혼의 살찜을 위하여 더욱 주께 가까워지 
    는 일을 위하여 울면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부인들이 하셔야 되는 일입니 
    다.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남편이 교회에 나오지 말라면 나오지 마십 
    시오. 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나가지 말라면 나가지 마십시오. 그러나 예 
    수를 믿지 말라고는 안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을 방해할 방법은 이 세 
    상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교회에 나오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 예수를 믿는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교 
    회에 나오는 것이 그의 신앙생활의 유익을 위해 몇 백 배 유리할 뿐입니 
    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 신자된 유일한 표는 아닙니다. 꼭 학교에 가야만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독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 
    학을 한다는 것은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몇 백 배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공부하는 분위기 속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늘 자기를 혼자서 긴 
    장시키고 채찍질해야 되기 때문에 훨씬 어렵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안간 사 
    람을 공부 못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듯이 교회에 안 나오는 것이 곧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여러분을 방해하는 것은 주일날 교회에 못나가게 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에서 예수를 쫓아 낼 수는 없습니 
    다. 술, 담배라든가 주일날 교회에 안가고 가고 하는 것과 제사 문제 같은 
    지엽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싸우느라, 실제 중심이 되는 신자의 삶은 경건 
    치 않게 방치한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것이 한국교인들의 신앙 수준이었습니 
    다.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을 놔두고서 늘 지엽적인 문제로 싸울 경우가 많습 
    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결국 그것밖에 더 있습니 
    까? 저 사람이 내가 인사를 했는데 안 받았다, 저 사람이 내가 인사를 했더 
    니 째려보았다. 저 사람은 내가 늘 앉던 자리에 먼저 와서 앉았다. 결국은 
    그 싸움 아닙니까 ? 목사가 우스개 소리를 하는데도 저 원수는 안 웃더라. 
    그것이 결국 우리를 빗나가게 하는 것이지 본질이 되는 것이 우리를 흔들 
    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결국 본질이 되는 문제들 즉 부 
    인들이 남편에게 주께 복종하듯이 복종했는가는 없어지고 순전히 딴 이야기 
    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정작 해야 되는 신앙의 훈련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번도 하지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는 사실 얼마나 가정이라는 이 놀라운 축복들을 놓치고 있는지 모릅니 
    다. 무슨 축복들입니까? 신자의 신앙 내용을 가정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펼 
    쳐내야 되는 특권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아내 된 자들이 남편에게 복종하 
    여 신자가 주께 복종하는 신앙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특권들을 놓치고 있 
    고, 또한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함으로써 주께서 어떻게 그의 자녀들을 사랑 
    하셔서 피 흘리고 또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까지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는가 
    하는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다 놓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해야 되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들이 있다면 이런 일에 중인이 되 
    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전도를 했으며, 얼마나 많은 교인이 모이 
    며, 얼마나 큰 교회를 세우고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그 교회에 오느냐가 교 
    회의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의 가정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 되는 이 영광스러운 것들을 스스로가 누리며 그 누림 
    이 흘러 넘쳐 이웃들에게 눈부신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교회의 자랑이요, 
    영광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정 가정에 부탁할 것은 이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아까 21절에 있었던 것과 같이 "그리스 
    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십시오." 이것은 아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아내의 복종은 정말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남편의 복종은 사랑이라는 
    것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그러니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라도 이런 말 
    만은 하지 마십시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헤어집시 
    다! 그리고 이것과 방불한 나쁜 말이 있습니다. "난 당신이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런 말은 절대 해서는 안됩니 
    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물론 화가 났다는 표 
    현을 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말이 씨가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결국 말 때 
    문에 싸움이 되지 않습니까? "당신, 아무리 화가 났어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해 ! "이것이 결국 싸움이 되지 처음에 싸우려는 주제가 끝까지 싸움이 되 
    는 예가 없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너 몇 살이야! "하고 싸우지 처음의 싸 
    움의 주제는 없어지고 맙니다. 모든 사람에게 대접하는 자세와 말을 꼭 조 
    심해서 사용하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말입니다. 이 부분을 놓치지 마십시 
    오, 이것을 놓치면 바로 그것이 주를 경외하는 것을 놓치는 것이라고 성경 
    이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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