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받은 아내(벧전 3:1-6)
  • 조회 수: 73, 2013.08.18 17:30:12
  •   미국에 라이프라고 하는 잡지가 있습니다. 그 잡지의 사진 기자인 '로고스'라는 분이 영국을 가 가지고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지하철 간이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나이 많으신 노부부가 서로 부축하면서 종종 걸음으로 식당으로 들어옵니다. 마침 자기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비스켓 한 접시하고 따뜻한 차 한잔을 주세요." 이렇게 주문을 해놓고 노부부는 옆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손을 붙잡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니다. 비스켓이 나왔습니다. 먼저 할아버지께서 비스켓 하나를 먹고 할머니께서는 따뜻한 차 한잔을 천천히 마시면서 비스켓을 맛있게 먹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으면서 그렇게 행복한 눈빛을 남편에게 보내는 겁니다. 이 남편이 비스켓 하나를 먹고 이에서 틀이를 꺼내서 물 컵에다 그것을 깨끗이 씻는 다음에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아내가 그 틀이를 입에 넣어 끼고 나서 그 다음에 비스켓을 먹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남편은 또 아내가 먹다가 남겨둔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역시 동일하게 행복한 모습으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봅니다. 이것을 유심하게 지켜본 이 기자가 목이 메이는 겁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지 그래서 이 분이 밥을 먹다가 가까이 가서 "제가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그래서 지하철 간이식당에서 노부부가 앉아서 비스켓과 차 한잔을 마시는 그 장면을 사진에 담아 가지고 라이프라는 잡지의 표지에 실렸습니다. 제목은 '참으로 행복한 참 사랑'이란 타이틀로 기재했다는 그 기사를 읽었습니다. 로고스라는 기자가 사진을 기재하면서 이런 글을 썼다고 합니다. "사랑은 어디에서든 피어난다. 사랑은 폭력을 완화해주고 불쾌한 것들을 멀리 함으로서 불행과 고통을 덜어준다. 이런 자세는 참다운 삶을 살게 하고 고통스런 환경을 원활히 극복하게 한다." 저희들이 결혼을 하고 이런 모습으로 한 평생을 살다가 함께 주님의 나라를 갈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서 가정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해야 될 의무가 있어요. 1절 서두에 나온 말씀처럼 "아내 된 자들아" 오늘은 아내 된 여성들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 마시고 다음 주에는 7절에 "남편 된 자들아" 그랬으니까 기대를 가지고 함께 나누셨으면 합니다.

     여러분, 한 남편의 아내 역할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닐 것입니다. 거기에다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부모 노릇을 하기가 또 얼마나 버겁습니까? 거기에다 나이 드신 노부모까지 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경제의 살림을 다 엮어 나가는 얼마나 힘듭니까? 좀 아쉬운 것은 5월의 가정의 달이 올 때마다 일찍이 남편이 세상을 뜨시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버겁게 가장 노릇까지 해 가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여성들에게 "이렇게 하십시오." 라는 말들도 좋지만 서로 격려하고 축복하고 싶습니다. 먼저 아내 된 자들에게 성경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절에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22-25절"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21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나니" 소명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한 가정에 주부 됨이, 한 남편을 섬기는 아내 됨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만 인류의 구원을 이루심도 소명이듯이, 비록 우리는 소수의 한 가정과 한 남자를 섬기는 일이지만 이것도 주님의 사역과 대비를 시키면서 주님의 사역에 못지 않도록 우리에게 본을 보였나니 너희도 사명으로 알라 그런 말씀입니다. 다시 3:1절의 끝 부분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함이니" 만일에 예수 믿지 않는 가정 가족이 있다면 너의 선한 행실, 하나님을 믿는 그 깨끗한 모습으로 네 남편을 구원하게 되리니, 그러면 선교사인 것입니다. 선교사가 멀리 있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 들어가서 그 가정을 구원시켰다면 너는 선교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때 선교사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언어와 민족과 모든 문화가 다른 타국으로 갑니다.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자기 나라의 모국어를 포기하고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를 시작합니다. 가장 편하고 익숙한 자기 나라의 언어를 포기할 때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쌀밥, 김치, 다 포기해야 되어요. 선교사까지 가 가지고 김치를 비행기로 수송해서 먹는다, 고추장 된장이 아니면 밥을 안 먹는다. 그러면 선교사가 될 자격이 없쟎아요. 그렇게 좋아하는 것 다 포기하고 심지어는 가족까지 포기하고 선교사로 갔던 그 나라의 그 민족가운데 가장 섬기는 낮은 천한 자로 내려가서 그들과 같이 고생하고, 먹고, 자고, 고난을 같이 겪고, 그들의 위로자가 되고, 희망을 주고, 친구가 되었을 때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죽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 '인카 내슈인'이라고 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의인을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못난 사람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입술에 욕이 없으시고 욕을 받으셔도 대신 욕을 하지를 아니하시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권세 있지만 힘 가지고 위협함을 당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범을 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사로 알고 가정을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헌신하는 저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랬을 때 마음의 평안이 올 것이고 기쁨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영국의 유명한 '대처' 수상이 있습니다. 여 수상인데 철의 수상이라는 별명을 들었습니다. 이분이 존경스러운 것은 타국으로 출장을 가지를 않는한 정확한 시간에 퇴근을 하고 시장 바구니를 들고 손수 시장을 봐다가 남편의 음식을 손수 요리를 다 하고 남편의 식사 상을 차렸습니다. 그 일을 남에게 맡기지를 않았습니다. 집안의 모든 청소도 손수 자기가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는 대처 수상의 리더십은 수상의 집무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가정 생활로부터 국민들의 마음은 리더십이 생기는 거예요. 지도력, 존경심 신뢰하는 마음이 생긴 거라고 여겨집니다. 우리의 힘은 가정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믿습니다. 볼펜 끝에 있지 않아요. 사무실에 있지 않아요. 우리의 권위와 능력은 가정으로부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을 소명으로 알고 친정에서는 호강하고 사랑 받고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처녀시절에 좋은 직장에 다니다가 결혼하면서 남편이 그만 두라고 하니까 그만 두고 평범한 주부로서 아이들을 키우고 그러면서도 즐거워하는 그 모습을 보면 남편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 아내가 얼마나 고맙겠어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으로 나는 이것으로 행복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남편이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겠습니까? 바로 이것은 한 주부도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소명의식이요. 한 가정을 축복되게 하는 선교사 못지 않도록 너무너무 귀중한 것이다. 우리 교회를 보면 이런 주부들이 많이 있습니다. 생전 일도 안 해본 집사님이 들에 나가서 복음 때문에 일을 다하고, 부모다 모시고, 최선을 다하고, 그래서 그 완고한 부모님 집안의 모든 형제들 다 복음화시키고 남편 아직도 젊은데 기름부어서 안수 집사 된 것은 잘한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렇게 살았을 때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부모로부터 신뢰받고, 자녀들에게 존경받은 훌륭한 어머니, 훌륭한 아내, 이런 가정들이 우리 월광 안에서 든든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주시는 교훈이 그렇습니다.

     또 하나 "네 남편에게 순복하라" 사명으로 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네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순복이라는 개념이 우리 기독교에서는 순복을 마스터를 하지를 못하면 좋은 크리스천이 될 수가 없어요. 모든 부분에서 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신앙을 가장 먼저 적용할 것이 어디이겠습니까?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임상 실험을 해서 훈련이 안되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좋은 크리스천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네 남편에게 순복으로서 너를 단장하고 무장시키라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니라 4절에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라" 2:13절에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우리는 순복하되 주를 위해선 하라는 것입니다. 2:17절에 "뭇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이 세 가지를 같은 레벨로 취급을 했어요. 바로 이 점에 대해서 누가 모델이 되셨습니까? 21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자체를 따라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순종에 대한 모범, 그래서 우리들에게 주님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로 받으시기를 주님이 비굴한 순종이 아니잖아요. 굴복 당한 순종이 아니지를 않습니까? 모자라서 순종한 것이 아니잖아요. 열등하기 때문에 순종한 것이 아니지를 않습니까?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지만,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지만, 아버지께서 너 세상에 가서 불쌍한 인생들을 위해서 네가 대신 죽어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말 한마디에 즉시 예수님은 하늘의 모든 보좌를 포기하시고 세상에 오셔서 "주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너무너무 힘들 때 주님은 의인을 위해서 오시지를 않았어요. 착한 사람을 위해서 오시지를 않았어요. 고약하고 못된 사람들을 위해서 주님이 오셨는데 그것을 감당하기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마지막에 "주여 할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의 쓴  잔을 거두어주옵소서 내 뜻대로 아버지의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절대적인 순종인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을 섬기고 가정을 섬기고 자녀들을 섬기다가 너무너무 힘드세요? 마음에 안 들고 그런 생각이 드세요? 그때는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하시고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우리를 살게 하신 우리의 모든 약함을 나은바 입게 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권위 앞에는 주를 위하는 마음으로 순복하십시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놓고 가정의 권위를 분명히 세웠어요. 모든 문제를 하나님은 아담하고 해요. 가장의 권위를 세운 것입니다. 아담아 네 아내의 이름을 네가 지어라. 너에게 오는 모든 짐승의 이름을 네가 지어라. 생육하고 번창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도 아담에게 주었지 이브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권위의 질서가 하나님은 분명하십니다. 아담이 똑똑해서가 아니고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온 아내이지만 돕는 배필로 주셨고 해결은 아담이 해요.

     그런데 사단이 와서 아담을 건드리지를 않고 이브를 건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단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의 권위에 도전한 것입니다. 그 권위를 도전하고 깨뜨리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 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권위에 도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너도 인간이지를 않느냐, 너도 잘 났지를 않느냐, 네가 모자란 게 뭐가 있느냐, 비록 네가 남자 여자라는 성의 차별일 뿐이지 네가 모자란 게 뭐가 있느냐 언제까지나 남편의 지배를 받고 순종해야 되고 살림만 해야 되고 모자라게 살아야 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너도 얼마든지 하나님과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너는 남자와 똑같아질 수 있지를 않느냐, 충동질을 하는 거예요. 이게 사단의 역사인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 부분에 넘어집니다. 속없는 사람들의 도전 속에서 너는 그렇게 똑똑한 여자가 집안에 있을 수만 있느냐, 어찌하여 너는 한 남자 밑에서 노예처럼 인생을 마칠 수 있겠느냐 하고 충동질을 하는 것입니다. 이거는 사단의 음성인줄 알고 대적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는 가장입니다. 한 몸에 머리가 두 개 달렸다면 괴물입니다. 집안에서는 평등이 아닙니다. 어떻게 자식이 아버지 앞에 가서 만인간은 평등이오니 평등의 원칙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은 대통령이 여자도 하고 장관도 하지만 그러나 가정에서는 안되잖아요.

     여러분, 질서는 하나님이 세우셨어요. 사회를 안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렇게 하심을 믿습니다. 그런고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우신 질서이기 때문에 순복하라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순복할까요?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2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먼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라 예배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편을 잘 섬기도록 믿음과 사랑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라. 하늘을 보아야 이해가 되지요. 우리의 가정을 천국같이 이루리라 천국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천국과 비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남편을 정말 사랑하고 싶습니까?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먼저 체험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남편을 신뢰하고 싶습니까? 참으로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어느 만큼 체험하신 분이 남편을 믿게 될 것입니다. 용서가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나 같은 죄인을 예수님이 용서해준 것을 체험하는 사람만이 남편의 모든 실수를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에게 인내하고 기다리고 싶습니까? 인간의 노력으로 불변해요.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나를 향하여 인내하고 기다리시는지 그것을 체득하면 남편을 기다려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 안에서, 이것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성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십시오. 그 마음으로 남편에게 순복하십시오. 그럴 때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천국을 보았습니다. 천국을 보았기 때문에 나를 치는 원수라도 용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같이 빛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나지도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지도 못하고 천국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노력하다가 포기하고 노력하다가 좌절하고 마찬가지예요.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남편을 존경하고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정결하라" 이것은 행동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다. 두 말을 하면 잔소리로 안다. 그런데 대개 여성은 말로 하려고 합니다. 남자는 귀로 듣는 것은 둔하고 눈으로 보는 시각적인 것에는 민감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어요. 여성은 눈에 보이는데는 둔하고 듣는 데에는 기가 막히게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의 소문을 들으면 잘 듣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부간에 길을 지나가다가 예쁜 여자가 지나갈 때 남편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면 속없는 아내는 "여보, 주책없이 그게 무슨 짓이야 "그런데 남자는 고개가 돌아가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거예요. 시각적이기 때문에 보는데는 자기도 모르게 시각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

     이 말은 남편을 감동시키고 싶습니까? 말로 하지를 말고 행동으로 본을 보여주라는 겁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말로 교육하지만 아버지는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점에서 남성들과 여성들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여성들은 남성들을 말로 감동시키려하지 말고 눈으로 보여주세요. 외모가 아름답고, 옷을 잘 입고, 가정을 잘 꾸민 것도 좋지만 남편을 감동시키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같이 남편을 마음에 품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어줄 수 있는 깨끗한 순수한 마음, 아무런 조건 없이 남편을 위해서 희생하고 다 양보해주는 기다려줄 줄을 아는 그 순수한 깨끗한 마음 하나이면 얼마든지 남편을 붙잡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외형적인 것을 남편을 감동시키려 하니까 문제가 많지요.

     

     그런고로 우리 여성들의 마음이 정말 순수하고 깨끗하고 아무런 조건 없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해보십시오. 이해해보십시오. 그 마음으로 온 마음으로 단장을 하고 정결함으로 단장을 하십시오. 얼굴은 예쁘지 않아도, 가문이 그렇게 별로 좋지를 않아도, 학벌이 변변치 않아도,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면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아내가 너무 똑똑한 것을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그 외에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남편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남편을 행복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때로는 연인처럼 때로는 어머니같이 행동하십시오. 밀월의 속삭임은 천국 갈 때까지 잊지 마십시오. 남편의 단점을 말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먼저 말하십시오. 사랑하는 남편에게 종종 편지를 쓰십시오. 건조한 생활 속에 남편의 오아시스가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남편 그 자체를 사랑하십시오. 외출할 때 행선지를 분명히 말해주십시오. 남편을 성공하는 아내가 되십시오. 남편이 성공하면 아내의 면류관입니다. 남편의 장점을 인정해주십시오. 남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삼가지 마십시오. 과거에 대해 푸념하지 마십시오. 남편을 왕같이 모십시오.

     

     한지를 물어보겠습니까? 공주병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어떤 친구가 이렇게 설명을 했는데 제가 그대로 옮길 테니까 원색적인 표현이지만 이해하십시오. "공상에 빠진 여인이 주둥아리만 놀린 것이 공주병이라고요." 그런데 이 병을 치료하는 약이 있는데 남편을 하인같이 부려먹으려고 하지를 마시고 남편을 왕으로 여기십시오. 그러면 자동적으로 공주가 되지를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대비마마가 될 것이고, 아버지는 대왕마마가 될 것이고, 자기 남편은 주상이 될 것이고, 아들은 왕자가 될 것이고, 딸은 공주가 될 것입니다. 남편을 왕같이 섬기라. 굉장히 불쾌하세요? 옛날 시대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 요즈음에 그런 말이 되느냐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성 운동주의자들 참 조심해야 됩니다. 남녀평등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하시는 가정의 원리 권위의 질서를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주의 축복이 있음을 믿습니다. 여성에게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생명을 출산하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런고로 살림을 남자에 맡긴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맡겼습니다. 남자는 돈만 벌어다 주면 되고 살림은 주부가 해야됩니다. 여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생산력이 있습니다. 창조력이 있습니다. 가난한 가정을 부유하게 하시고, 병든 가문을 건강하게 하시고, 불목한 가정을 화목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도 모르는 가정을 믿도록 생산적인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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