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나은 본향을 찾는 삶(히브리서 11:13~16)
  • 조회 수: 38, 2013.10.01 06:37:55
  • 우리는 최근 추석 명절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고 있기에 명절은 고향 찾는 나그네들에게 기대요 희망이며 즐거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이번에도 약 2900만명이 이동한 것입니다. 고향에서 비록 짧은 3∼4일간의 시간이었지만 그리운 사람을 만나 삶의 애환을 나누었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나그네 삶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리운 고향으로 달려가 보지만 고향은 벌써 낯선 곳이 돼 있으며, 나 또한 이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본향을 찾고 있는 존재임을 인지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더 나은 본향을 찾는 그리움’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가 출생한 고향에서 살든, 아니면 외로움을 느끼는 타향에서 살든, 땅에 존재하고 있는 한 나그네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돌아가야 할 본향(本鄕)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출생한 곳이, 부모와 친척이 살고 계신 곳이 본향인줄 알지만 그곳은 타향일 뿐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그 본향은 약속된 곳이며, 나그네 된 이 세상에서 희망으로 간직하고, 고대하는 마음으로 사모해야 하는 곳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부모를 그리워하듯,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듯, 그러한 감정의 뿌리는 바로 생명의 주인 되신 창조주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석 명절 동안 그리운 고향을 찾는 이유는 종교적으로 원래의 주인인 하나님을 찾는 동경의 표현이며, 그리움의 표현인 셈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그리움과 동경을 반복하며 나그네의 아픔을 위로받으려고 몸부림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본향을 찾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나그네로서 그리움과 동경의 반복적인 행위를 넘어 실존적인 관계에서 본향인 실체(實體)를 만나야 합니다. 그것은 신에게서 약속된 것으로 과거의 의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현재의 의미는 영으로 함께하시는 생명의 주인을 믿음으로 경험하는 일이며, 미래 의미는 본향을 약속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기다리며 소망하는 일인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실존적 관계에서 더 나은 본향의 주인인 실체를 만나는 것을 ‘믿음’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더 나은 본향을 찾는 방법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간직하고 나그네의 삶을 사는 자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이며, 약속에 대한 신뢰는 외로운 나그네의 삶을 극복하게 하고 소망을 가진 적극적인 삶을 살도록 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삶은 패러독스적입니다.

    이 때문에 기독 신자의 삶은 나그네 된 세상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긴장하면서 약속의 미래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앙의 선조들이 그러한 믿음으로 살아왔듯 고향을 다녀온 우리도 선조들처럼 더 나은 본향을 찾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나그네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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