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추절의 참뜻(출 23:14-17)
  • 조회 수: 173, 2013.01.22 21:26:07
  • 저는 지난 91년 6월에 성지 순례를 한 일이 있습니다. 건기철이고 날씨가 무척이나 더워서 한나절이면 1. 5리터짜리 패드병으로 하나 가득찬 물을 다 마실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안내하던 선교사가 버스로 돌아오자 마자 '누가 생명좀 주시오'라고 하였는데,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이내 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지에서의 물은 곧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그토록 필요하고 소중한 상황속에서 반쯤 남은 물병을 보고 어떤 사람은 '이제 절반밖에 남지 않았네' 하면서 몹시 아쉬워하는 표정이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사람은 그 똑같은 반쯤 남은 물병을 바라보면서 '아니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 있잖아' 하면서 즐거워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태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 번째 사람을 가리켜 비관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입니다. 날씨만 조금 더워도 '웬놈의 날씨가 이렇게 더워' 하면서 짜증을 내고 장마철에 며칠 비만 내려도 신경질을 내고 불평을 합니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탓을 하는가 하면, 아내 탓을 하고 세상을 탓하기도 합니다. 열 가지 감사한 일이 있어도 한 가지 못마땅한 일만 생각하여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감사한 마음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의 경우를 보십시오. 날씨가 무더워졌습니다. 그렇지만 한 겨울에 오들오들 떨며 고생하던 것을 기억하며, 그래도 없는 사람들 살기는 여름이 더 낫지 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밥상 앞에 앉습니다. 반찬이라야 순전히 그린필드입니다. 그래도 지난 날 그 어려웠던 보릿고개 시절 같은 때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그 밥을 달게 먹습니다. 위에 말한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사람다운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더 축복해 주시겠습니까?
    오늘은 맥추 감사절입니다. '저 밭에 농부 나가 씨뿌려 놓으니/주 크신 능력 내려 잘 길러 주셨네/씨 심을 때에 뿌려 잘 추수했으니/금년에 먹고 쓸것 풍족케 되었네/주 믿는 형제자매 참기뿐 예배로/주앞에 몸과 맘을 다 함께 드리세. 오늘은 이렇게 맥추를 감사하여 감사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은 직접적으로 농사하는 가정이 그렇게 많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면 맥추 감사는 시골에서 농사하는 사람들이나 지킬 일이고, 오늘 우리 도시 사람과는 전혀 무관한 일일까요? 사실 오늘은 맥추한 일 한 가지만 들어서 감사하는 날이라기 보다는, 금년도 어느덧 반년이 지나간 시점에서, 그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은혜에 대하여 특별히 감사를 표시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크게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일반 은혜
    이것은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주시는 은혜를 말함이니 예를 들면 햇빛, 공기, 비같은 것들을 가리켜 일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일반 은혜는 우리가 그것을 성의 있게 생각할 시간만 가진다면 얼마든지 정말 얼마든지 찾아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1)건강-그 많은 병원 병실마다 환자들로 가득차 있는데, 이 시간 우리가 건강한 몸으로 주님 전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건강에 대해서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종합병원의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한번 가 보십시오. 단말마의 고통과 신음 소리를 들어보면, 제아무리 목석같은 인간이라도 그 때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2)자유-일제 치하, 공산 치하, 군대 생활을 해본 사람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입니다. 지금도 신앙의 자유가 없는 나라들의 형편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3)가정-이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어 위안을 받고 살게 하심은 또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4)자녀-이 세상에 어떤 보화보다 소중한 자녀들을 주신 은총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5)양식-지금도 지구촌 도처에서 굶주리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주심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6)평안-갖가지 사고와 재난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를 지금까지 평안히 보호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7)우리에게 천지 만물을 주신 일 등등...............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다 헤아릴 수없이 많고 많습니다. 이렇게 헤아릴 수없고 측량할 수 없는 수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생각해 보다가, 사도 바울은 '말할 수 없는 그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작은 혜택이나 축복이라도 결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알아서,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2. 특별 은혜
    이 은혜는 모든 사람들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고, 특별히 우리 신자들에게만 주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따라서 일반 인류에게 주시는 보통 은혜보다, 훨씬 더 크고 귀중한 은혜인 것입니다. 특별 은혜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1)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일, 2)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은 일, 3)믿음을 주신 일-한 여학생이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나서, 예수에 대해서 읽고 듣는 것마다 스폰지에 물이 흡수되듯이, 아멘으로 받아들여지고 믿어졌습니다. 왜 진작 누가 내게 이런 엄청난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을까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며칠 후 가장 친했고 화제도 항상 잘 통했던 친구에게, 예수에 대해서 알고 믿고 있는 모든 것을 신나게 전했습니다. 두어 시간 동안 듣고 있던 친구가 '너 진짜 미쳤구나. 지금 한 말을 사실로 믿고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럼 너는 안 믿어지니? 어떻게 그것을 안 믿을 수 있을까?'라고 하자, 그 친구는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믿는 것이 불가능, 하나는 안 믿는 것이 불가능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외에도 4)성경을 주신 일, 5)성령을 주신 일, 6)교회를 주신 일, 7)천국을 주신 일, 8)영생을 주신 일 등등.....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같은 엄청난 은혜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없도다/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하고 찬송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찬송가 작시자는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고 노래했습니다.
    정말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각양 보통 은혜와 특별 은혜들을 헤아려 볼 때, 그저 말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에 한없이 감사 감격할 뿐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욕심이라는 악귀에 들리게 되면, 과거에 받은 바 은혜와 축복은 다 잊어버리고, 허기진 사람처럼 늘 부족하게만 느껴져서, 불평이 쉴 사이 없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의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라, 철면피한 사람이라, 짐승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한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에 사탄이 지구에 내려와 하필 노르웨이에다가 창고를 지웠다는 것입니다. 그 사탄의 창고에는 각종 씨앗들, 즉 미움, 슬픔, 눈물 등의 씨앗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씨앗들은 어느 누구의 마음속에서도 싹이 잘 나는데, 오직 한 동네에서만은 효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동네의 이름은 '감사'였는데, 어떤 슬픈 상황과 절망적인 처지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앗을 뿌릴 수 없다'라는 노르웨이 속담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과 감사의 표현은 사람다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는 대강 56069 가지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고맙다는 말은 966위, 감사하다는 말은 2697 순위라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인의 경우 사용 빈도가 가장 많은 단어가 바로 감사합니다 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감사한 마음이 참으로 무디거나, 감사에 몹시 인색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적'이라 하였고,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R. A. Torry는 '성령 충만은 감사 충만'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적이라 했고, 성령 충만은 감사 충만이라 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것입니까?
    1)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 마음에 없는 감사는 형식이요 거짓입니다.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이 믿음의 감사입니다. 2)몸으로 감사해야 한다. 몸으로 교회에 나오고, 행동으로 봉사하고, 우리의 몸 전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곧 몸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3)물질로 감사해야 한다. 맥추 감사절은 바로 물질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지난 반년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온갖 보통 은혜와 특별 은혜를 돌이켜보면서 감사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인색한 마음을 각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화: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그만 중한 병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약이란 약은 다 써 보고, 의사란 의사는 다 불렀으나 백약이 무효여서, 마침내 죽음을 각오하지 않을 수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웃집에 왕진을 온 의사가 있었는데, 그 부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기 병원으로 입원하면 틀림없이 고쳐 주겠다고 장담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고 반가운 말이었습니다. 즉시 부자는 그 의사의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입원 3일만에 놀랍게도 큰 차도가 있어서, 기사회생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에 결심하기를 '나는 글자 그대로 억만장자이다. 내가 병나서 죽고 만다면 백만 파운드가 다 무엇이냐? 그런데 이제 내가 기사회생하게 되었으니, 이 병원의 은혜는 정말 태산보다도 높고 창해보다 깊다. 그러니 내 재산 전부라도 아깝지는 않지만, 절반인 50만 파운드는 꼭 이 병원에 바쳐서 연구비, 실험비, 시료비로 쓰게 하리라'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다시 한 주일을 지나다 보니 몸이 가뿐해지고 병실에서는 일어나 걸어다닐 수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다시 작정하기를 '내가 며칠 전 50만 파운드를 이 병원에 기부하겠다고 했지, 50만 파운드 50만 파운드, 에구 끔찍해라. 50만 파운드는 못해도 그 절반인 25만 파운드는 정말로 기부해야지...'하였습니다. 입원한 지 한 달쯤 되어서 퇴원할 때가 가까워 오자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얼마 전에 25만 파운드를 이 병원에 바치겠다고 결심했겠다. 25만 파운드, 25만 파운드를 벌려고 해봐라. 25만 파운드는 못해도 10만 파운드는 꼭 바쳐야지'하고 생각을 고쳤습니다. 그러다가 그 부자는 벌떡 일어나면서 '에이 이 고얀 놈아, 다 죽게 되었던 몸이 이 병원에 와서 살았는데, 기부금 낸다는 것이 두번 세번 변하니 이게 무슨 꼴이냐, 아마 한 이틀 더 지나면 입원비와 약값을 내면서도 바들바들 떨 것이 아니냐?'고 자신을 책망하며, 은행수표를 꺼내어 일금 50만 파운드정이라고 써서 비서를 시켜 원장에게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그 병원은 연구도 깊이 하고, 실험에 성공하고 시료를 넓게 하여 훌륭한 병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모의 은혜든지, 사회의 은혜든지, 하나님의 은혜든지, 감사하다고 느낄 때에 즉시 보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물어물 지체하기 시작하다가는 영원히 못하고 마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농경 사회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년 삼차 곧 민족 해방절인 유월절과 가을의 추수를 감사하는 수장절을 꼭 지키면서 빈손으로 내게 나오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 생활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도시에 살면서 농사도 짓지 아니하는데 무슨 맥추 감사인가? 라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난 반년 동안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국가적으로는 기적같은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마쳐서 평화를 기약할 수 있게 된 것, 교회적으로는 50여명의 새로운 일꾼을 세우고 평안한 중에 부흥케 해주신 일, 그리고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받은 바 은혜가 참으로 많으리라 믿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있어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선하고 좋은 것이 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줄 알고 범사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사는 사람과, 또 하나는 잘되면 다 자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오만불손하다가, 역경을 당하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종류의 사람 가운데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혹은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하라니! 무엇을 감사하라는 말인가? 내 몸은 병들었고, 생활은 곤궁하고, 자식들은 속을 썩히는데, 내게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는 말인가?
    로빈손 크루소오라는 소설이 있는데, 주인공이 항해 도중 그만 배가 파선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고 자기만 혼자 살아서 어느 섬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며칠을 섬에서 외롭게 보내다가, 어느 날 바닷가에 나가서 혹시 지나가는 배가 없을까 하여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지나가는 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래서 매우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할일없이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다가, 왜 하필이면 배가 파선하게 되었을까 불평스런 생각이 나면 왼편에 돌을 던지고, 그래도 나는 살았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감사한 생각이 들면, 오른편에 돌을 던졌습니다. '왜 하필이면 무인도일까?' '아니야 그래도 무인도일망정 과일도 있고 물도 있어서 사람이 살만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렇게 하루 종일 불평스런 생각이 들면 왼편에 돌을 던지고, 감사한 생각이 들면 오른편에 돌을 던졌는데, 나중에 양쪽의 돌무더기를 보니까 감사한 쪽에 훨씬 더 많은 돌멩이가 쌓였더라 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음은 '감사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라는 미국 사회의 예화입니다. 주일 아침 K씨는 눈을 뜹니다. 편한 침대에 좀더 누워 있고 싶지만, 부엌으로 나갑니다. 집안이 다소 싸늘한 것 같아 온도 조절기를 조금 올립니다. 커피포트에 코드를 끼우고 우선 커피를 한 잔 마십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문밖에 나가 배달된 신문을 들고 식탁에 앉습니다. 커피를 잔에 따를 무렵 아내가 나와 라디오를 켭니다. 토스트, 베이컨에 계란 한 개, 아이들도 함께 하는 아침 식사입니다. 입버릇처럼 더운물을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아이들과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을 빼놓지 않습니다. 얼마 후 K씨 내외와 두 아이는 자동차에 몸을 싣습니다. 히터를 켜고 한산한 주일 거리를 천천히 달립니다. 부부는 잡담을, 아이들은 라디오의 음악에 귀를 기울입니다. 열시 그들은 교회에 도착합니다. 아이들은 주일학교에, 내외는 장년 성경 공부반에 들어갑니다. 열한 시가 되면 예배에 들어가 기도하고 찬송을 하고 설교를 듣습니다.
    이것이 주일 아침 평범한 미국인의 일과입니다. 당연한 것 같지만 이 평범한 아침에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입니다. 편안한 침대, 난방이 되는 집,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 수도꼭지만 틀면 커피포트에 물이 차는데, 도대체 맑고 깨끗한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인간이 지구에 몇 퍼센트나 될까? 검열없이 자유롭게 인쇄된 신문, 제한없이 방송되는 뉴스를 들을 수 있는 인구도 지구촌에 그다지 많지 않다.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마음대로 성경 공부와 예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나라도 많은데 얼마나 좋은 자유인가? 이렇게 감사할 일이 많은데 불평과 불만으로 세월을 보낸다면, 그것은 환경이나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낳은 불행이다 라는 예화입니다.
    단테의 신곡중 지옥 편에 '이 곳으로 들어가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글귀가 있는데, 그것을 보고 전율했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내게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용서하고, 용서받고, 회개하고, 사랑하고, 은혜 받고, 축복 받고, 건강하고,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무한한 희망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살아서 숨을 쉬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 복된 자리에서 생명의 말씀을 듣고 앉아 있다는 이 한가지 사실만도 눈물겹도록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맥추 감사 주일로 지키면서 지난 반년 동안 여러분이 받은 영육간의 은혜들을 헤아려 보면서,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하고 축복 받고, 축복 받고 감사하는, 복된 생활이 계속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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