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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1.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 4:1-5)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313, 2017.05.09 20:37:50
  •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벌을 받아 원래의 거처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그의 근원이 된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했습니다. 처음 아담의 직업이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그는 농부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땅을 경작하며 수고의 땀을 흘려야 먹고 산다고 했기 때문에 100% 농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첫째 아들인 가인이 그의 아버지를 이어 농사를 짓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 아벨은 농사를 지었는지 아님, 양을 전문적으로 키웠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뒤로 한 참 후 가인에서 에녹으로, 에녹에서 이랏, 이랏에서 므후야엘, 므후야엘에서 무드사엘, 무드사엘에서 라멕, 라멕에게서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낳아서 첫째는 육축치는 자의 시조, 각종 수금과 피리를 부는 음악의 시조, 각종 날카로운 기계를 만든 시조....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벨이 양을 치는 목자였다고 하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양을 전문적으로 치기 시작한 것은 그 보다 한참 후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가인이 땅에서 난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과 아벨이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드렸다는 데서 가인을 농부로, 아벨을 목동으로 그렇게 해석해서는 적절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똑같이 농사를 짓는 형제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왜 제물을 달리 썼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사의 제도는 사실 레위기에 들어와서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고 가인과 아벨은 아담으로부터 입으로 전수받은 제사의 방법과 형식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과 아벨의 시대와 레위기 시대의 제사방법이 달랐다고 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성문화한 제사법이 없어다는 것뿐이지, 아담의 때나 레위기 때나 거의 비슷했을 것으로 봅니다. 사실상 아담에게서부터 전수된 제사의 형식과 방법이 모세의 때까지 전수되어 이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문화된 것이다.... 이렇게까지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위기 제사의 중심성격은 짐승의 피 흘림의 희생제입니다. 이런 제사의 성격은 아담의 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이미 양을 잡아 그 가죽을 옷으로 해 입혔습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피의 희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정기적이고 규칙적인 피의 제사를 요구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벨은 하나님을 존중하여 올바른 제사법을 따라 양의 첫 새끼의 희생으로 제물을 올렸고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양의 첫 새끼를 구분한다는 것은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양이 첫 새끼인지, 두 번째 새끼인지....  자꾸 새벽에 새끼 새끼 하니까 이상한데요... 하여튼 그런 것을 구분하려면 상당한 주의가 들어가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 제사를 드리는 자세가 상당히 정성스럽고 준비가 철저한 것이죠. 특별히 농부가 그런 양의 첫 새끼를 구하려면 상당히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것도 첫 번째 소산인지, 어쩐지를 구분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 제물을 올리는데 상당히 건성건성 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정하지 않은 제사법입니다. 양을 태우든, 곡식을 태우든... 내가 가진 것으로 태워 성의를 보이면 되지.... 이런 심사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제가 결론을 내리는 바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제사를 했느냐, 아님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렸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하나님께서 받고, 안 받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도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고 했거든요.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고 해석하는 것이 바로 이런 측면을 두고 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올바른 제사를 드리지 못한 결과가 엄청나게 나타났습니다. 이 제사의 결과로 인류의 첫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남이 아닌 자기 골육, 자기 형제를 말입니다. 그 사람의 예배가 온전한 예배인지, 아닌지는 예배 후 그 사람의 삶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예배를 잘 드린 사람은 매사에 감사가 넘쳐요.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한 사람은 미움, 시기, 질투로 가득 찹니다. 심술이 그 삶에, 그 얼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예배의 결과가 삶에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려면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그 삶의 모습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예배에 실패하면 그 삶에 마귀의 형상으로 가득 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예배의 승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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