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익은 열매로 공경하라 (잠 3:9~10)
  • 조회 수: 146, 2013.03.10 21:31:58
  •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그곳으로 인도하기에 앞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교육시키고 훈련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는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저절로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 짓는 땅이 아무리 좋아도 내버려두면 곧 잡초로 무성해져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밭이 되고 맙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내버려두면 잡초 같은 인생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도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높은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신자로써의 교육과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올바른 신자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육시키고 훈련시키십니다.
     
    우리나라는 국토도 비좁고 농사짓기도 매우 힘이 듭니다. 결코 수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의 수고로 얻어지는 쌀이나 농작물이 보통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 넓고 비옥한 땅을 물려받은 남미를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소도 넓은 목초지에 풀어놓고 방목을 하기 때문에 연하고 질이 좋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도 먹고 싶을 때 호수가에 낚시 대를 드리우기만 하면 곧 한 바구니 가득 잡힙니다. 그러나 이처럼 좋은 환경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남미에 있는 나라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살지만 우리보다 잘 살지 못합니다. 현재 그들의 생활 수준을 우리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60년대와 비슷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납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의 사람들보다 교육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육과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10~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황무지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고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시키기 위해 그 보금자리를 흔들어 자기 새끼가 떨어지면 어미가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 올리듯이 하나님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그들을 도와 준 다른 신이 결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의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일년에 세번 이상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는 것으로 [유월절]과 [맥추절]과 [장막절]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얻은 곡식의 첫열매로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명절입니다. 이 날은 유월절 7주 후에 오는 날이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출 34:22). 또 모세가 애굽에서 나온 지 50일째 되는 날에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쓰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한 날로 [오순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장막절]은 특별히 [수장절], [초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조상이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생활했던 것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였는데 이 절기는 가을 추수가 끝난 뒤에 지켰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날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잊고 살기가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적어도 일년에 세번 이상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물을 드리면서 감사하라고 이러한 절기들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특별한 목적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또 우리 하나님께서 돈이 필요해서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또 우리가 복을 받고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지키는 맥추절은 이렇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2.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절기입니다(신 16:11).
    3. 불쌍한 이웃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신 16:11).
    4. 하나님 나라에 복을 쌓는 절기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각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6:16~17).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무슨 돈이 필요하며 무슨 물질이 필요하겠습니까? 무엇이 아쉬워서 내놓으라고 하시겠습니까? 다만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전에 나아와 첫 열매를 제사장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이고,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과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 생활에는 크게 세 단계가 있습니다.

    1. 첫째 단계의 감사입니다.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되고 만사형통하여 드리는 감사입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감사입니다. 이럴 때 감사할 줄 모른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감사조차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개 이런 사람은 신앙과 인격이 매우 연약하여 신자 구실을 못하는 어린 사람이거나 오래 믿었어도 비뚤어진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받을만 해서 받았다고 생각하고 또 자신이 힘써 잘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만사형통할 때에는 때때로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도 있지만 자신이 곤경에 처하여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결코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2. 둘째 단계의 감사입니다.

    밝은 면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일이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잘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또 슬픈 일도 있지만 기쁜 일도 있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비록 자신은 건강을 잃었지만 다른 가족들은 건강하니 감사하고, 비록 돈은 없지만 가정이 화목하니 감사하고,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두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손 목사님은 장례식 때에 10가지 감사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가 나오게 해주시니 감사하고, 
    육 남매중 가장 귀한 장남과 차남을 순교의 제물로 드리게 되어 감사하고,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을 순교하게 하셨으니 더욱 더 감사하고,
    미국으로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감사하고, 라고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슬퍼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3. 세째 단계의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심히 곤고해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줄 믿고 역경 중에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입니다(롬 8:28).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단계의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까? 모두가 세 번째 단계의 감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1년에 죽는 사람의 수가 약 3천 만명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8만 2천명, 한 시간에 3천 4백명, 1분에 57명으로 1초에 한 명꼴로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다 잠자는 중에 편안히 눈을 감는 것도 아닙니다. 병으로 고생하다가 혹은 불의의 사고로 죽습니다. 또 일평생 장애자로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의 [노만 필]이라고 하는 목사님은 적극적인 사고로 유명한 분입니다.
    한 번은 불만 투성이의 남자가 노만 필 목사님을 찾아와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때 목사님은 종이와 펜을 주면서 종이의 중앙에 선을 쭉 긋고 왼편에는 불평할 것을 오른 편에는 감사할 것을 써 보라고 했습니다. 종이를 받아 든 이 남자는 감사할 것이 없는 표시로 오른 쪽에 곱표부터 쳤습니다. 그리고 왼편에 불평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남자는 감사할 것이 조금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드디어 왼편에 불평 불만을 다 적은 남자에게 노만 필 목사님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아내는 죽었습니까?
    죽기는요. 두 눈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요.
    아 그래요! 그러면 감사할 것이 있네요.
    집은 불탔습니까?
    아니 누가 불지른 것도 아닌데 왜 집이 불탑니까?
    아 그래요! 그렇다면 집도 감사해야겠네요.
    당신의 심장은 뛰고 있습니까?
    아니 누구를 놀리십니까? 심장이 뛰고 있으니 지금 살아 있는 것 아닙니까?
    아 그래요! 또 감사를 해야겠네요.
    이렇게 적어나가다 보니 어느덧 그 남자와 감사의 조건을 많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
    두 눈이 있습니까?
    두 손과 두 발이 있습니까?  
    두 귀가 잘 들립니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0세기 들어 가장 훌륭한 여성 두 사람을 들라고 하면 [크로스비]와 [헨렌켈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둘 다 장애자라는 사실입니다. 
    크로스비는 출생한지 6주 때에 안질을 심하게 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의사의 실수로 실명되었습니다. 주위에서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고 불행하게 태어난 아이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비록 육안은 잃었어도 영안은 밝았습니다. 그녀는 항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6천여 편의 은혜로운 시를 썼습니다.
    그렇게 쓰여진 주옥같은 시가 우리 찬송가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434장의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또 144장의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를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그리고 219장의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등 많은 찬송시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헬렌켈러는 성홍열로 귀도 멀고 눈도 먼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녀의 책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것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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