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후대하신 여호와(시 116편)
  • 조회 수: 176, 2013.03.12 20:17:43
  •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성도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먹고, 숨쉬고, 잠을 자고, 직장을 다니며, 사업을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저자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지만 우리는 누가 이 시편을 기록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심각한 위기 상황 속에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과 기도의 응답에 대한 감격적인 고백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그네 인생 길을 가는 성도에게도 환난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환난과 고통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는 축복들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후대(   :까말)하시는 분이십니다.
    '후대'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두터운 대접'이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두터운 대접, 성도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후대하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성도에게 좋은 혜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후대하신 사실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2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
    이러한 감사의 노래가 여러분의 찬양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함께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나를 후대하신 여호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이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확인하고 감사드리는 기쁨의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나를 후대하신 여호와!

    1. 기도를 들으시는 여호와이십니다.

    본문 1절과 2절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들으시고'는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듣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 소리에 예민하신 분이십니다.
    이 사실은 2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상세히 들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는 확신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최상의 경배 행위로서 인간적인 오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무서운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외면해 버리는 인간이 가진 거만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우리에게는 숱한 문제들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저자에게도 참으로 어려운 환난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겪은 환난을 3절에서는 '사망의 줄', '음부의 고통'으로 표현하고 있고, 6절에서는 '낮아짐'으로, 10절에서는 '큰 곤란'으로 자기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가 당하는 어려움이 죽음의 고통에 처하는 상태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저자가 당한 사망의 환난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는데 이는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3절)라는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 '두르다'라는 말은 고통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도를 괴롭히는 사망의 줄이 시시각각으로 죄어 오면서 극도의 위기에 처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고통이 나를 짓누른다고 할지라도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자입니다.
    내가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에도, 내가 눈물의 골짜기를 외롭게 걸어갈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고 나의 소망이 좌절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로서 여러분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를 후대하신 여호와!

    2. 평안을 주시는 여호와이십니다.

    본문 7절에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평안'(      :에이레네)은 평화의 뜻인데 히브리어로는 샬롬(    )으로 '평화', '번영', '안녕'을 의미합니다.
    평안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결과로 나타난 충만한 평안의 상태를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저들이 우상을 섬기고, 주변의 강대국을 의지할 때는 오히려 저들이 추구했던 평안은 사라지고 혼란과 전쟁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을 받을지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편에 섰을 때에는 나라가 평안해진 사실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게만 있는 평안을 다른 피조물에게서 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이 우리의 안식처입니다. 그에게만 편안히 거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8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평안을 주시는 분을 8절에서 "주께서"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참된 평안은 오직 주의 은혜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함께 신학 공부를 한 여전도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많은 재능을 가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뒤늦게 결혼도 하게 되었고 자식까지 낳았습니다.
    그런데 몸이 이상하리만큼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진단해 보니 폐암으로 이미 골수까지 암이 파고들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기에 병문안을 갔는데 그 분의 하는 말에 오히려 은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처음에 폐암으로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 얼마나 자신이 억울하고, 분한지 몹시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침상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기도하고 찬송을 하는 도중에 여지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고, 이제는 마음이 아주 평안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폐암이 낫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죽음의 문턱에서 마음이 평안한 것이 오히려 더 큰 기적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죽음 앞에서의 평안!
    이러한 힘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세상 어느 누가 감히 이런 평안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외부의 환경과 조건에 의해 제약을 받는 평안이 아니라, 환경에 지배되지 않는 평안,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평안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평안이 있습니까?
    이러한 평안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왜 우리는 불안해하고, 근심하고, 염려하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가지고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당당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후대하신 여호와!

    3. 신앙으로 살게 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후대하심을 받은 자의 반응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만 사랑하게 됩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심으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예수님도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후대함을 받은 자의 신앙의 모습이요,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여러분의 전인격을 동원해서 하나님만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게 합니다.
    본문 2절에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평생에'는 '나의 날들 동안에' 즉 내가 살아 있는 그 날까지 기도를 쉬지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기도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살전5:17-18).
    기도는 하나님 절대 의존 신앙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기도하다 쉬는 것도 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삼상12:23).
    성도만이 가지는 최대의 무기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합니다.
    본문 9절에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말씀대로 사는 생활입니다. 신구약 66권이 내 삶의 지표요, 나의 삶의 법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산다는 것은 곧 진실한 삶을 말해 주고 있고, 헌신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은혜 충만한 성도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의 입에서 감사의 소리가 끊이지 않으면 그 성도는 분명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이 쉬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멸했든지, 아니면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헤아릴 수 있는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관심과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후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 살펴보았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후대하심!
    불안과 근심으로 가득찬 세상에서도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의 후대하심!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신앙으로만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 모든 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후대하심입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오늘도 우리의 흐트러진 신앙을 추스르고 하나님 앞에서 감사제를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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