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잠23:22-26)
  • 조회 수: 281, 2013.03.22 22:11:03
  • 옛날 시골에는 닷 새 만에 장이 서고는 했습니다. 장날이 되면 아들은 그 동안에 해서 모은 나무 단을 지게에 잔뜩 싣고서 아침 일찍 장에 나가서 그것을 팝니다. 저녁이 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밥상을 준비해 놓고 이제나저제나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립니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는 데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가만히 집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동구밖까지 나가서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립니다.
    드디어 한 사람씩 두 사람씩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서 마을로 되돌아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애틋한 심정이 되어서 좀 더 멀리,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서 동구밖에 서있는 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그 모습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자로 묘사를 했습니다. 어버이 친자가 어떻게 씁니까? 설 립(立)자 밑에 나무 목(木)자, 그리고 오른쪽에 볼 견(見)자를 씁니다. 나무 위에 올라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바라보는 그 어머니의 애틋한 심정이 바로 어버이 친(親)자입니다.
    한편 아들은 준비해 간 나무를 시장에서 모두 팔고서 그 돈을 가지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도 사고 또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고 동구밖까지 나와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어머님! 왜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다리도 불편하실 텐데, 집에 가만히 계시지 않고요!”
    그러면서 아들은 등에 지고 있는 지게를 내려 놓습니다.
    “어머님! 어서 이 위에 올라 앉으세요. 제가 어머님을 업어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한자에서는 효도 효(孝)자로 표시를 했습니다. 효도 효자는 어떻게 씁니까? 늙을 노(老)자 밑에 아들 자(子)자가 있습니다. 아들이 연로하신 어머님을 등에 업고 가는 모습이 효도 효(孝)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와 같은 친(親)이 있고, 효(孝)가 있는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이 기록한 잠언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부모님께 어떻게 효도를 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길을 걸어 가다가 시원한 냉수 한 그릇만 얻어 먹어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일평생 동안 우리를 위해서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부모님의 은혜를 우리가 모른다면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마땅한 도리를 저버린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바로 효도의 첫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어떻게 우리가 효도한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그 어떤 부모라도 자기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7:9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부모는 비록 배우지 못해도 자기 자녀 만큼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부모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부모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지 아니한다면, 이 세상에 누구의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어린 시절에 부모님에게서 “이 닦고 자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닦기 싫지요? 그냥 드러눕고 싶습니다. 그래도 이를 닦아야 이가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또 “공부해라!”는 말씀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기 싫어도 열심히 공부해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 “집에 일찍 돌아와라!”는 말씀도 많이 하십니다. 이것도 역시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여자 분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분이 직장에서 퇴근한 뒤, 동료들과 어울려 놀다가 그만 아주 밤 깊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가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딸에게 대문을 열어주면서 어머니는 역정을 내며 묻습니다.
    “왜 이제야 오는 거니?”
    아무런 대꾸도 없는 딸을 보면서 어머니는 속이 상해 푸념석인 탄식을 했습니다.
    “저 원수 같은 것! 어떻게 저런 것이 내 속에서 나와 이 어미의 속을 썩이나.”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런 소리를 들어도 가만히 있습니다. 아이들은 영악하니까요. 아직도 더 얻어 먹어야 되고, 옷도 더 얻어 입어야 되지 않습니까? 괜히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 매만 맞으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조금 장성하면 대꾸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낳아 달라고 했어요?”
    그러다 더 장성해서 자기 힘으로 벌어 먹을 만 하면, 아예 문닫고 나가 버립니다. 이 딸도 그러했습니다. 어머니가 나무라니까 소리지르며 나가 버렸습니다. 친구 집에서 몇 일 지내다가 방 하나를 얻어서 자취 생활을 했습니다. 집 나간 사람이 제대로 살겠습니까? 그저 아무 남자나 만나서 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딸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딸을 낳아서 키워 보니까 어머니의 심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딸에게 옛날 자기 어머니가 자기에게 했던 그대로 반복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얘야, 일찍 돌아와야 된다.”
    이 딸도 자기가 옛날에 자기 어머니에게 했던 그대로 대꾸를 합니다.
    “어머니, 또 잔소리하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좀 간섭하지 마세요.”
    “아니야, 너는 몰라. 일찍 돌아와야 한다.”
    딸자식을 키워 보니까 비로소 어머니의 심정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그제야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집 나간 딸자식을 그리워하다 화병에 속이 상해서 이미 돌아가 버리시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미련한 인생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부모님 속을 잘도 썩였습니다.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자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죄책감 때문에 몸부림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미련한 우리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여라.” 옛 성현의 가르침처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까? 부모님께서 늘 살아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에게는 하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소원을 잊지 아니하고, 아버지 대신에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영광스럽게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 늘 하시던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잊지 않고 이루어 드릴 때, 천국에 가신 부모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우리로 인해서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효도의 첫 걸음은 부모님 말씀에 청종하는 것입니다.
    22절 하반부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우리가 외적으로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존경하고, 부모님을 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괄시하면서 어떻게 우리가 부모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겠습니까?
    하루는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가 솔로몬 왕을 찾아 왔습니다. 무엇인가 부탁할 일이 있어서 입니다. 밧세바는 그 때 나이가 많았습니다. 밧세바는 솔로몬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내 얼굴을 괄시치 마소서.”
    그 때 솔로몬 왕이 그 어머니 밧세바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어머니, 간구하시옵소서! 내가 결단코 어머니의 얼굴을 괄시치 아니하겠나이다.”
    자기가 아무리 왕이 되었고, 아울러 어머니가 늙어서 볼품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할지라도 자신은 결코 어머니를 괄시치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부모님이 못 배우셨습니까? 늙으셨습니까? 누구를 위해서 우리 부모님이 고생하셨습니까?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우리 부모님이 누구를 위해서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습니까? 우리를 키우기 위해서 고생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볼품 없다고 해서 어떻게 우리가 부모님을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는 야곱이 요셉을 불렀습니다.
    “요셉아! 형들이 세겜에서 양들을 치고 있는데 소식이 없어 궁금하구나. 네가 한 번 가서 안부를 물어 보고 오너라.”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미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결국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애굽 땅에 종으로 팔려 버렸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아버지 야곱과 형들의 가족들을 모두 애굽으로 초청했습니다. 제일 좋은 땅, 기름진 땅인 고센에 정착해서 머물러 살게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 야곱의 나이가 130세입니다. 형편 없이 늙었습니다. 쭈글쭈글하고 볼품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 왕 바로에게 자기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기쁘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게 애굽 왕 바로를 위해서 축복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여러분, 축복 기도가 무엇입니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 축복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요셉은 자기가 모시고 있는 애굽 왕 바로보다도 일백 삼십 세나 되어서 형편 없이 늙은 아버지를 더 귀하고 중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요셉을 하나님께서 어찌 복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 부모님을 존경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부모님들은 자녀된 우리들이 바른 진리 위에 굳게 서서 바르게 살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진리 위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요즘 말로 표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얘야,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이런 뜻일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보십시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식된 우리가 어찌하든지 훌륭하게 잘 되는 것이 바로 부모님의 소원일 것입니다. 다윗이 임종할 때, 그의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아들을 불러서 유언합니다. 그 때 다윗이 솔로몬에게 무엇이라고 유언을 합니까?
    “솔로몬아! 너는 이제 왕이 되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출세해야 된다. 돈 많이 벌어야 한다. 싸움 잘 해서 영토를 많이 넓혀라!”
    이런 유언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이런 유언을 했습니다. 왕상2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아! 너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백성들을 통치해라. 그리하면 너의 앞날은 형통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 생활을 잘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유언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를 복주셨습니다. 그가 형통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그 땅에는 어려움이 왔습니다.
    부모님은 그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충성스럽게 잘 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일 성수를 잘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집사님 되시고 또 권사님 되시고, 장로님 되셔서 정말 존경받고 인정받는 충성된 제직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비록 우리 부모님은 천국에 계시지만,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이 바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그렇습니다. 자녀된 우리는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장성할 때까지 우리를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연히 부모님이 연로해서 경제력이 없을 때 부모님의 생활을 책임져 줄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로 봉양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물질로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대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제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막내 아이에게서 좋은 어버이날 선물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것을 받고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야!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해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버이날이라고 학교에서 카드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었습니다. 앞면에는 만화처럼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썼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래. 오늘은 부모님의 날. 어버이날.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지.”
    그리고 그 배경으로 하늘, 구름, 그리고 새를 그렸습니다. 땅에는 민들레 꽃과 나무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드의 뒷면에는 이런 사연을 적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오늘은 어버이날인데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러나 이제부터 학교에서 떠들지도 않고, 아버지처럼 공부를 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찬일 올림.”
    제가 집에서는 늘 책이나 보고, 설교 준비나 하니까 아이들 눈에는 제가 아주 공부를 잘 하는 아버지로 인상이 심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카드 속에는 쿠폰이 여섯 장이나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조금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방청소 하기 쿠폰입니다. 뒤에는 이런 단서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이 카드는 일회용입니다. 청소를 하다가 더 어지럽힌다든지 또 무엇이 없어져도 보상은 안해줍니다.”
    자기 빠질 구멍은 미리 다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둘째, 뽀뽀해 드리기 쿠폰입니다.
    “이 카드는 일천회용입니다. 뽀뽀하다가 침이 들어가도 아무 보상도 안해드립니다.”
    제가 지겹도록 뽀뽀하게 생겼습니다. 이미 어제 이 쿠폰을 네 번 써먹었습니다.
    셋째, 안마해 드리기 쿠폰입니다.
    “이 카드는 십회용이고 돈은 받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제가 십 분을 안마하면 천원을 주거든요.
    넷째, 설거지 쿠폰입니다.
    “이 카드는 일회용입니다. 설거지 하다가 그릇이 깨져도 보상은 안합니다.”
    다섯째, 책상 정리 쿠폰입니다.
    “이 카드는 오회용이고 역시 보상은 없습니다.”
    여섯째, 손빨래 쿠폰입니다.
    “이 카드는 일회용입니다. 역시 아무런 보상도 없습니다.”
    제가 이것을 받고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야! 그래도 네가 나보다 낫다.” 어제가 어버이날인데도 저는 부모님을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부흥회가 끝나고 나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또 주일을 준비해야 된다는 핑계로 찾아 뵙지 못하고 그저 억지로 전화 한 통화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 대신에 무엇을 좀 싸들고 부모님 댁에 다녀오라고 저희 아내를 보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했다기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양심이 괴로워서 오늘 설교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이 연로하실 때 물질로 봉양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더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본문 26절 말씀을 보십시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물질도 소중하지만, 부모님의 존경과 사랑을 어찌 물질로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용돈 좀 드리고 나서 어떻게 우리가 효도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6절 하반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 할지어다.”

    우리 눈으로 우리 부모님께서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을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부모를 잘못 만나서 지금까지 이 고생하고 있어!” 만에 하나라도 부모님이 이런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습니까? 부모님이 누구 때문에 고생하셨습니까? 누구 때문에 손발이 다 트도록 고생하셨습니까? 우리 때문에 그렇게 하셨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너무나도 마음이 괴롭습니다. 저희 아버님도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목사가 되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고생하는 것이 저희 아버님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버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목사 자식이, 목사 자식이”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습니다. 친구들과 똑같이 장난을 쳤는데도, “네 아버지가 목사인데 네가 그래서야 되겠느냐?”라는 소리를 따로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가 아닌 장로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는 욕심으로 상과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드니까 어느 정도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서먹서먹합니다. 그래서 가족들끼리 같이 만나면, 마음으로는 좀 더 잘해 드려야지 하면서도 서먹서먹해서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이지요.
    지금부터 약 백년 전에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한 가난한 과부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과부는 낮에는 양계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들도 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졸업식을 앞두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졸업식에 입고 갈 만한 변변한 옷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누추한 모습 때문에 아들이 얼마나 민망해 할 지 그것을 생각하니까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너의 졸업식에 가기는 가야겠지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가지 못하겠구나! 네가 이해하렴.”
    그러자 아들이 울면서 매달립니다.
    “아니, 어머님! 어머님 없는 졸업식이 제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만사를 다 제쳐놓고서라도 어머님이 졸업식에 꼭 참석을 하셔야만 됩니다.”
    울며 매달리는 아들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어머니는 가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드디어 졸업식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전 학생들을 대표해서 멋있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습니다. 많은 박수를 받으며 그는 단상에서 내려 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됩니다. 그는 한쪽 구석에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기를 바라는 듯이 앉아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 앞에 서서는 자기 목에 걸려 있는 금메달을 벗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의 어머니의 목에 걸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님이 아니셨으면 제가 어떻게 오늘의 이 영광을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서 모든 공을 어머니에게 돌렸습니다. 이 아들은 그 뒤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의 제 28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바로 윌슨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재임하던 1914년, 그는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리해서 5월 둘째 주일을 거국적으로 어머니날로 제정했습니다. 전 국가적으로 어머니의 날을 기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도 전 세계의 교회가 5월 둘째 주일은 어머니 주일로, 또는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님은 우리를 위해서 고생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서 부모님의 과거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지금부터 몇 년 전에 제가 새벽 기도회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새벽 4시쯤 일어나서 그 날 전할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번개가 번쩍번쩍 하더니 천둥이 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번개가 치는 지 전기가 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촛불을 밝혀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둥이 크게 치니까 막내 아이 찬일이가 잠에서 깨어 났습니다. 무서우니까 제가 자고 있는 방으로 뛰어들어 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 왔습니다. 막내 아이는 제가 가만히 성경을 읽으면서 묵상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아빠! 아빠는 이렇게 천둥이 치는데 안 무서워요?”
    “그럼, 뭐가 무섭니? 안 무섭지.”
    “정말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뭐가 무서워.”
    그랬더니 막내 아이가 저를 얼마나 존경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지 지금도 제가 그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제일인 줄 압니다. 그런데 이제 몇 년 지나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한달 전쯤에 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찬일아! 너 앞으로 결혼하지 않고 아빠, 엄마하고 같이 살 거지?”
    아이들이 어릴 때 이와 같은 말을 많이 물어보지요? 그러자 제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니에요. 저 결혼할 거예요.”
    그래도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 결혼하더라도 아빠, 엄마 모시고 같이 살 거지?”
    그랬더니 막내 아이가 한다는 말이 이렇습니다.
    “글쎄요. 색시에게 물어 봐야겠어요.”
    자기 색시에게 물어보아야 된다고 합니다. 속에서 부화가 막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 물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네 색시가 아빠, 엄마 모시기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니?”
    “그러면 뭐 따로 살아야지요.”
    제가 참지 못하고 막내 아이의 머리에 꿀밤 한 대를 쥐어 박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를 지금까지 먹여 주고, 키워 주고, 고생 실컷 했는데 모두 헛고생했구나! 이놈 나가!”
    그랬더니 막내 아이가 찔찔 울면서 그래도 입은 있어서 말을 하더군요.
    “아빠!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 안 모시면서 왜 나더러는 아빠, 엄마 모시라고 해요?”
    제가 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래 맞다. 내가 내 부모님에게 불효하면서 어찌 너희들에게 효 받기를 기대하겠느냐. 내가 내 부모님 모시지 못하면서 어떻게 너희들이 나를 모시는 것을 기대하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며 제가 많이 뉘우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효자에게서 효자가 나오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다음 번 어버이 주일을 맞이할 때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어버이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우리를 위하시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마십시다. 나이가 드시면 하신 말씀을 또 하시고 또 하시고 자주 반복하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 말을 귀찮게 여기지 말고, 들어 드리십시다. 부모님을 존중히 여기고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여러분, 지금까지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 오셨습니까? 믿음으로 바르게 사셨습니까?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물질을 드리는 것도 소중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귀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즐겁게 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 할지어다.”

    부모님의 과거를 소중히 여기고, 우리를 위해서 고생하신 부모님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의 남은 생애는 더욱 더 부모님께 효도함으로서 약속된 계명처럼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되는 복을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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