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력있는 자녀와 책임을 다하는 자녀 (말1:2-5)
  • 조회 수: 224, 2013.05.09 21:25:28
  •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녀로서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는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부모에게 불효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녀는 복만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저주하십니다. 그리고 미워하시고 그런 자녀는 절대로 잘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주님은 이와같이 말씀했습니다.“나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시키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에 착한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도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착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고 악한 사람에게는 은혜 주셔서 회개하고 하나님자녀 되게 하시려고 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자 한 사람도 없다 했는데 오늘 유독이 말씀하시기를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신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시는가 하면 그것은 효도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불효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에서와 야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들입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손자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장남이고 야곱은 차남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굉장한 복이 있습니다. 장남의 권리가 있습니다. 재산 상속을 받을 때에도 두 배로 받고 아버지의 신분을 이어받아 가장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을 때에는 제사장의 역할도 감당합니다. 이처럼 장남에게는 유산도 배로 받고 가장이 되는 복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것을 통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 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남의 특권이고 복이며 권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창26:40“헷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자신의 아내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마치 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의 아내를 삼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고 후회하게 하여 결국은 노아의 홍수로 재앙을 망하게 했던 그 상황처럼 오늘 에서는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또 창두메산골에 할머니가 두 손녀를 키우고 살았습니다. 참 어려운 살림에 두 손녀를 키우려하니 할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두 손녀가 나이가 과년하여 시집갈 때가 되었습니다. 큰 손녀는 부잣집에 시집을 갔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너무 좋아했습니다. 이제 둘째 손녀가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손녀는 시집을 멀리 갔습니다. 멀리 가는 것도 속이 상한데 그 집은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얼마나 할머니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가는 작은 손녀도 마음이 아파서“할머니 저와 함께 가서 살아요”하며 권했지만 할머니는 그 뜻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큰 손녀도“할머니는 내가 모실테니 걱정 말아라 내가 너보다 경제적으로 더 낫지않니”하면서 동생을 위로하며 보냈습니다. 멀리 있는 작은손녀는 할머니가 그리워서 매일매일 걱정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손녀는 언니가 부잣집에서 할머니를 잘 모실 것으로 생각하며 그리움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러나 부잣집으로 큰 손녀는 얼마나 일이 많은지 쉴 틈이 없었습니다. 제사 드리는 것, 손님 치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할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끼니도 제대로 챙겨 드리지 못하게 되니 할머니는 누구 생각을 하겠습니까? 처음에는 부잣집에 며느리가 된 큰 손녀를 자랑스러워 하고 그 손녀가 자신을 모시게 되었다고 너무나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작은 손녀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손녀의 집을 찾아 먼 길을 가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두 손녀가 급히 와서 보니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기에 장사를 잘 치뤄드렸습니다. 이후에 성묘갈 때에 되어 할머니 묘소에 가보니 이름 모를 꽃이 가득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꽃은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는데 이 꽃만은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지 못하고 꼬부라져서 땅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꽃을 이름하여 할미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부자가 되고,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귀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 자체가 부모에게 기쁨을 주기는 하지만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때 그것은 부모에게나 자녀에게나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효도한다고 하는 것은 능력 있는 자녀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부모를 향한 자식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효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증거이기때문에 귀한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그것을 통해서 구원 받고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은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는 누구나 부모에게 효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십계명에도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 5-10계명은 사람의 도리에 대한 계명인데 이 사람의 도리에 관한 계명 중 첫 계명은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구원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딤후3:1-2“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말세에 악한 자의 모습은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롬 1: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죄 가운데 하나는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 밖에서 하는 일이요 하나님 없는 신앙생활이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은 인물이 출중하고 능력이 뛰어나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승리하여 그 자신이 기념비를 세울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을 따라 다닙니다. 사람들은 외칩니다.“앞으로 임금이 되실 분, 당신은 위대한 분입니다. 당신은 꼭 다음에 왕이 되셔야 합니다”그런데 나이 많은 아버지가 임금자리를 내어 놓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아들이 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내어 쫓습니다. 나이 많은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살던 궁전을 뒤로 하고 피난합니다. 압살롬 자신은 왕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압살롬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결국은 그의 목숨을 빼앗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은 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임금의 아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임금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능력이 뛰어났고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부모에게 불효하니 하나님이 그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불효하는 사람은 절대로 잘 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부모의 권위를 거역했다고 하는 것은 부모자식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부모를 누가 나에게 주었습니까? 누가 부모를 내게 세워주신 분이 누구신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신앙인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 형제와 형제와의 관계, 이웃과 이웃과의 관계를 그 자체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롤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보십시오. 애굽땅의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고 많은 어려움 끝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에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팔아버린 형제들, 자신을 모함한 사람들도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애굽으로 자신을 팔은 형제들과 만납니다. 형제들은 보복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때 그는 이러한 얘기를 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을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하나님 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의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여러분 형제와 나와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철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형제를 사랑할 수 있었고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엡6:1-3“자녀 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주 안에 순종하라는 말은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내가 만약에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가 되었다면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골3:20“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부모가 시키는 나쁜 일은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는 말이 합해진 검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나에게 뭐라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부모님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위해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자연적 이치이고, 잘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복받는 길이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주신 복을 누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까? 효도하는 것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1.공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하기 전 까지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결혼 후에 자식을 낳아 자신이 부모가 되면 그 다음에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과 공경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순종은 그대로 따라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귀하게 여기고 가치 있게 여기고 높이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15장에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들을 책망하시는데 말씀 중‘고르반’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내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바쳤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어떤 것을 달라고 말해도 고르반하였다고 하면 부모도 고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책망 받을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섬기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당연히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딤전 5:8“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 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요, 악 한자요, 배신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경한다는 말은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는 부모의 말씀대로 따라 했지만 이제는 부모의 삶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필요를 해 드리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필요없다고 말씀하시는 것까지라도 해드리는 것입니다. 연세 드시면 무엇이든지 필요없다고 말해도 그 말대로 믿으면 어리석은 자녀입니다. 필요 없다고 해도 알아서 해 드리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공경입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의 장인어른이 연세가 많으신데 집을 고치자고 하면 고치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추워도 고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몇 년 동안 설득을 했습니다. 또 눈이 어두워 지셔서 당신의 딸이 바로 옆을 지나쳐도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술하시라 권해도 괜찮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잘못되면 자녀들에게 짐이 될까 봐 생각되어 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병원에 예약을 하고 억지로 수술을 시켜 드리니 이제는 새 인생을 사시는 것처럼 좋으시다고 하십니다. 공경한다는 말은 알아서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아주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하듯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 그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복주실줄로 믿습니다.

    2.가정의 질서를 잡는 것입니다.

    나라가 선진국이다, 후진국이다라고 하는 것은 얼만큼 잘 먹고 잘 사느냐는 것 보다도 얼만큼 질서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문의 명문을 따지는 것은 질서와 규칙이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효도하는 것은 질서를 잡는 일입니다. 옛날에는 부모자식간의 질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가정의 기본, 수직간의 관계가 잘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통계를 보면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불평을 털어놓는 것과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불평을 털어놓는 것과 어떤 것이 더 많은가 보니 자식들이 부모에게 불평을 털어놓는 수치가 더 많다고 합니다. 무엇을 얘기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수직의 질서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질서가 잡히고 질서가 잡힘으로 인해서 그 가정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은혜를 주시는 그런 가정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어머니를 어떻게 불렀고, 어머니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로마의 황제 안토니우스가 에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만났을 때에 그를 불렀던 호칭은‘구나이’였다고 합니다. 그‘구나이’라는 말을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왕비여’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도 어머니를‘구나이’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적어도 육신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불렀습니다. 자신은 이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서는 왕비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가는 그 상황에서도 어머니가 염려되어 제자 요한을 불러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그의 어머니에게 하셨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잘 해야 나도 잘 하지...’그러나 벧전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우니라”아름다운 며느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런 일을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고 주님은 그 일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으면서도 권위와 질서 앞에 묵묵히 선한길을 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이런 사람이 성화되어 가는 사람입니다. 결혼하면 그 집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또한 남편의 고향이 내고향이 되는 것, 호적이 바뀌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본적은 바뀌어도 마음은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남들에게 소개할 때에 우리 시어머님, 우리 장모님 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런지 몰라도 그냥 부를 때에는 그저‘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면 얼마나 좋습니까? 룻은 말하기를‘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며 어머니의 고향이 내 고향입니다’라고 하면서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하나로 삼을 줄 알았습니다. 어떤 분은 제게 이렇게 얘기하십니다.“목사님 저는 제 사위에게 어머니라는 한마디만 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사위는 백년손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처럼 어머니 한 분이 또 한 분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가정에 질서가 여러분의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부모님과 의견이 맞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교회가지 말라고 얘기할 때에 아이는 부모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합니까?“어머니 제가 교회 간다고 공부 못한다고 걱정하시는군요 그러면 제게 3개월만 여유를 주세요 그러면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려놓겠습니다. 만약 그때 가서도 성적이 그대로라면 그때는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자녀가 지혜로운 자녀입니다. 여러분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왕의 진미를 먹으라고 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대응합니까?“왕의 진미를 주시는 것은 감사하나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왕의 음식을 먹고 이만큼 잘 되었다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 받고 이렇게 잘 되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싶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열흘만 주십시오. 우리가 야채만 먹고 열흘을 지냈을 때 우리의 얼굴이 좋지 않으면 그때 왕의 진미를 먹겠습니다”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어떤 요구에 된다, 안된다 하는 흑백 논리로 이렇게 판단하지말고‘어머니가 아직 모르셔서 그래’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평생 그렇게 사셨던 분의 생각이, 행동이,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겠습니까? 그러니 이해하고 협력하고 다니엘처럼 지혜롭게 판단하는 자녀가 바로 창조적인 자녀요, 이런 자녀를 통해서 그 가정이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저는 어버이날 성경을 볼 때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룻입니다. 이방여인입니다. 남편 죽고, 시동생도 죽고, 시아버지도 죽고, 가난하고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사랑했습니다. 그 자신을 생각하면 행복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행복은 어머니를 잘 모시는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행복보다 효를 앞세우고 삽니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주어진 행복이 먼저가 아니라 효를 먼저 따르니 그에게 복이 넘쳤습니다. 가난하지만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어 어머니를 대접하니 효부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라고 하는 부자를 만나 잘 살고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하는 일에 따라서 그 자신의 가치가 달라지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어떤 새를 좋아하느냐를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종달새, 꾀꼬리 하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이에 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까마귀가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시커멓고, 더러운 것을 먹고사는, 재수없다고 하는 새를 왜 좋아하느냐 되 물었을 때 이 학생이 대답했습니다.“제가 까마귀를 좋아하는 이유는 꾀꼬리든 종달새든 자기가 크면 부모를 잊어버리지만 까마귀는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 랍비가 꿈을 꾸었습니다.“너는 이다음에 천국에 오게되면 이 사람 옆에 있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유대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짐승 잡은 백정 아무개였습니다. 랍비는 기분이 나빠서 아니 내가 왜 이 사람과 같이 있게 될까 하면서 섭섭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보고싶어서 그 사람을 불렀습니다. 랍비만 해도 굉장이 인정 받고 높임 받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자신이 오라고 했을 때 오지 않으니 화가나서 찾아갔습니다. 가서 보니 그는 가난하여서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랍비는 생각했습니다.‘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내 옆에 있는단 말인가!’그리고는 물었습니다.“당신은 내가 불렀는대도 왜오지 않았습니까?”그랬더니 그는“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게는 나이 많은 어머니가 계신데 제가 한시라도 떠나 있으면 어머니는 언제 세상을 떠날런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어머니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부르셔도 제가 갈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랍비는 깨달 았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이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랍비, 자신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천하고 손가락질 당하고 어리석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부모를 모시는 그 하나만으로도 랍비와 같은 반열에 세우시는 분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미워하십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증거요 가정의 질서를 잡는 일이요, 가정이 잘 되고 사회가 잘되고 민족이 잘 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높이시고 귀하게 여기고 그런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반대로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저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몇 년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교회의 나이 많은 할머니 집사님이 그전부터 점심을 한끼 대접하겠노라 시며 냉면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옆에 인물도 좋고 훌륭한 분이 제게 와서는 인사를 꾸벅 하는 것이었습니다.‘저 사람이 누구인데 내게 인사를 하나’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제 앞에 계신 집사님께“고모님”하며 인사한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인사한 사람이 바로 이수성 국무총리였습니다. 그래도 나이 많은 할머님에게 많은 사람이 있는 음식점에서 꾸벅 인사를 한다는 것, 그 앞에서는 손을 모으고 예,예 하면서 섬기는 것을 보았을 때 기쁨이 존경이 저절로 넘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는 자녀가 진정한 자녀이고 참 신앙인 이고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는 다 복받는 가문을 이루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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