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요20:19-22)
  • 조회 수: 196, 2013.06.22 21:25:17
  • 1. 평강이 있으라 하셨습니다(19-20) 

    평강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는 ???이라고 하고, 헬라 말로는 ?????라고 합니다. 이 말이 우리 성경에는 평안이라고 번역되기도 했고(요14:27, 16:33), 평화라고 번역되기도 했고(눅2:14, 19:38,42), 또 화평이라고 번역되기도 했습니다(마5:9 롬5:1).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참 평강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고(롬5:10),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엡2:3).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골1:21에 보면 '원수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화평이 없이는 평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14:27에 보면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하셨습니다. 여기 평안이라는 말도 ????? 평강이라는 말입니다. '?????를 너희에게 준다. 곧 나의 ?????를 너희에게 준다'고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졌을 때는 평안이 있지만 없을 때는 평안이 없습니다. 성공했을 때는 평안이 있지만 실패했을 때는 평안이 없습니다. 함께 있을 때는 평안이 있지만 떠나가면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그렇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요16:33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고 하시면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주신 평강은 환난이 없는 평강이 아닙니다. 환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리는 평강입니다. 
    제자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다가 갖가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가질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평강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숫한 매를 맞고 갇혔던 빌립보의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또 로마 황제에게 마지막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외치며 살았습니다. 
    늘 평강 주시기를 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셨습니다. 
    이 평강, 평안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선물을 받아들이고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예, 주님, 주님께서 주신 평강을 감사히 받겠습니다'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것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도 그것을 받았고 crosby도 그 평강을 받아서 그 어려운 중에도 평생을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노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절대로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으며, '너희에게 나의 평안을 주노라' 하셨고, 부활하셔서도 다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해서는 안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두 손을 앞으로 쭉 펴고 한번 기도 드리겠습니다. 따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평강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주시는 평강을 제가 받습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어떤 환경에서 살든지 주님의 평강을 누리며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너희를 보낸다 하셨습니다(21-) 

    성도는 주님께로부터 평강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큰 은혜요 특권입니다. 더럽고 추하고, 나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었던 모든 죄를 해결 받았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힘과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죽음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전혀 차원이 다른 사람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이 세상의 것은 그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데 필요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또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이 산 것이 아니요 오직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하면서 이제 자기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의 부활을 통하여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도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오셨던 것처럼 우리도 가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가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하셨습니다. 
    막16:20에 보면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하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주님께서 함께 역사하셨다고 했습니다. 役事하셨다는 말은 한문인데 영어로는 worked, 우리말로는 일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 '전파할새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했습니다. 나가서 전할 때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일하셔서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하게 해 주셨습니다.

    요14:21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당신을 나타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해서 나가서 전하고, 말씀에 순종해서 봉사하고, 말씀에 순종해 살 때 주님께서 함께 역사하셔서 일을 이루실 뿐 아니라 그 말씀을 확실히 체험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게되고 체험하게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추측을 해서 드리는 말씀도 아니고 통계적으로 말씀드리는 것도 아니고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여러 곳에서 성령운동이라는 모임이 있는 것을 봅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는 것은 없이 성령만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호기심으로나 또 성령님을 자신의 능력으로 이용하려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구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렇게 구해도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절대로 유익은 되지 않습니다. 시106:15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하는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파리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충만을 받는 길은 말씀에 순종하면서 성령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전도특공대가 모이고 있는데 저는 몇 명을 전도하느냐하는 것 보다는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나가서 힘껏 전하면 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전도특공대가 전도를 나갔다가 돌아와서 보고하는데 '되는 것 같습니다' '계속 꾸준히 하니까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하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또 그것을 통해 말씀을 확실히 체험케 해 주십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과 그 능력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셔서 큰 은혜와 능력을 꼭 체험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22-) 

    요7:37 이하의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또 부활하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요12:33).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직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요14:16이하에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오시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육신의 몸으로 오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으로 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요14:25,26에서는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16:7이하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하늘나라로 가시면 대신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돌아 가시기 훨씬 전부터 거듭 거듭해서 돌아가시면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거듭 말씀하셨던 예수님께서 부활셨을 때 다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가지 이 성에 유하라' 하셨고(눅24:49),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론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하셨습니다(행1:4). 
    이 성령님이 오순절날 제자들에게 임하셨고 제자들은 놀라운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성령을 받으라' 하신 말씀은 여러번 하셨던 말씀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신 것입니다.  

    복음서의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돌아가시면 성령님을 대신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이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셨을 때는 예수님이 가까이 계셨는데도 제자들이 능력을 행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약속하셨던 성령을 받았을 때 그들은 완전히 달라진 능력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첫 번째로는 방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말씀을 깨닫는 눈이 열렸습니다. 그전에도 알고 있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닫혀져 있던 말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깨달아졌습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말씀들이 쫙 꿰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의미가 깨달아졌고 구약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보이기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행2:16-36까지 나와 있습니다. 따로 특별하게 배워서 알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았을 때 말씀을 보는 영안이 열려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3장부터 보면 제자들의 기도와 명령을 통해 병자들이 고쳐지고, 귀신들이 물러가는 役事들이 나타나기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는 없었던 능력들이 예수님 승천하시고 약속하셨던 성령충만을 받았을 때 일어났습니다. 

    물론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서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던 것처럼 숫한 고난들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원망하지도 않았고 낙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주님을 위하여 능욕받을 만큼 가치있는 사람들로 여김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우리 성도의 길은 승리와 복이 보장된 길이면서도 고난도 받아야 하는 길입니다(롬8:17). 진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길은 제자들이 당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고난도 당해야 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는 힘든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거듭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주님의 능력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 한번 더 두 손을 앞으로 펴시고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 받으면 새벽기도에도 매일 나와야 하고, 봉사도 많이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혹 계십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평생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원치 않는 일에 끌려다니고, 실패와 좌절과 한숨 속에서 살고,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러움 당할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겠습니까? 
    저도 한 때는 정말 그랬을 때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삶이 힘들어 보였기에 성령충만 받는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은 그만 두시고 그저 체험만 몇가지 하고 싶습니다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을 따르는 그 길이 정말 아무리 힘이 들고 고통스러운 길이라고 하더라도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분명히 정하시고 저를 따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 이 시간 제 속에 오시옵소서.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던 것 같이 우리 교회를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채워 주옵소서. 불같이 바람같이 오시옵소서. 성령님, 이 시간 나를 온전히 사로잡아 주옵소서.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리옵니다. 아멘'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67 admin 431 2013.06.22
66 admin 343 2013.06.22
65 admin 193 2013.06.22
64 admin 198 2013.06.22
63 admin 352 2013.06.22
admin 196 2013.06.22
61 admin 275 2013.06.22
60 admin 230 2013.06.22
59 admin 246 2013.06.22
58 admin 229 2013.06.22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