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까(요20:19-25)
  • 조회 수: 193, 2013.06.22 21:27:42
  • 우리는 지난주 고난주간을 조용하게 지났습니다. 제가 임의로 요란하게 하지 않았습니다.필리핀에서 고난주간에 한 남자가 예수의 고난을 체험하기 위하여 실제로 십자가에 못을 박히어 몇분간 매달려 있다가 땅으로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이는 무익하며 무식한 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은 우리도 십자가 못 박히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어 구원을 받으며 이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것이 주님의 죽으신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올해 고난주간은 조용히, 그러면서 열심히 일하며 복음을 전하며 지났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절도 오늘 예배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믿고 감사하며 그 의미를 새기고 그 축복을 내 것으로 만들어 누려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왜 의미가 있습니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고전15:23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 열매인 부활이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 붙은 자인 우리가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입니다.


    여러분 부활이 무엇입니까?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다시 사는 것이 부활이라는 이 표현은 부족한 표현입니다. 그냥 다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참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왜요? 죽을 몸으로, 병든 몸으로, 늙은 몸으로, 죄를 이기지 못하는 몸으로 다시 살면 뭣합니까?  나사로가 다시 살고 과부의 독자가 다시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사로 죽고 과부의 아들도 죽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런 부활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죽으면 썩어질 우리의 땅 위의 몸도 다시 살아날 때에는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고전 15:42)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은 병이 들거나 죽기 때문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게 하지만 다시 살아날 때에는 영광에 가득찬 몸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몸이지만 우리가 다시 살아날 때에는 굳센 몸이 될 것입니다.”(고전 15:43)
    “지금은 죽음을 앞에 둔 인간의 몸이지만 다시 살아난 뒤에는 영적인 몸이 될 것입니다. 자연적인 인간의 몸이 있는 것처럼 초자연적인 영적인 몸도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5:44)

    그렇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 중에 나타나실 때 몸도 있으셨지만 또한 제한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몸은 몸인데 달랐습니다. 신령한 몸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어떻게 나타나녔습니까? 다메석으로 가다가 하나님이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빛가운데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앞에 거꾸러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앞에 엎드려지고 이후 사도가 된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다 이와같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죄의 몸,약한몸, 병든 몸. 아픈몸을 벗어버릴 것입니다.

    오늘 부활에 주시는 교훈을 새겨봅니다.
    1.부활은 회복입니다. 
    새힘이입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없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죽으실 때 도망갔고 흩어졌고 부름받기 전의 본업으로 다 돌아갔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리아와 주님을 따르던 여성들도 좌절로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부활로 인하여 그들의 좌절은 새 힘과 큰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주님이 부활하시니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은 회복이며 새로운 시작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니 만큼 절망은 없습니다. 실패는 없습니다. 옛날로 돌아가는 일은 없습니다. 인생은 수없이 많이 좌절하고 낙심하고 용기를 잃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힘을 줍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번 일어납니다. 자신의 실패하고 넘어진 약한 모습을 보지 말고 일으켜 세우는 주님을 보십시오. 열번 백번이라도 용서하고 다시 세워주시고 다시 은혜를 주십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주님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실패하고 약한 자기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어도 주님앞으로....쫓아내어도 내가 주께로 가리라...그런 신앙을 갖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숱한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재기입니다. 마침내 복을 받아 가는 과정입니다. 다시 수정하는 도약입니다. 새힘을 얻는 부활의 아침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모이고 은혜를 받게 합니다.
    십자가로 흩어진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님은 친히 다시 모아주셨습니다. 엠마오의 길의 제자들을 찾아가시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 은혜의 자리로 모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예루살렘으로  모이라고 하십니다. 왜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에 가서 내려주실 은혜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까?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교회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구역예배로 모여야 합니다.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부흥회때에도 모여야 합니다. 모아주시고 모인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모이지 않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때문에 모아 주십니다. 모여야 합니다. 모여야 은혜받습니다.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부흥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되면 우리 개인들이 힘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교회부흥은 알고보면 간단합니다. 열심히 모이다 보면 다 됩니다. 열심히 모이다 보면 병도 치료됩니다. 마음에 문제나 상처도 해결됩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 받다보면 축복의 문도 열립니다. 점점 크게 열립니다. 지금도 주님이 부활하시어 일하신다면 흩어진 교우들을 모으시는 일을 하실 겁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까? 열심히 모이시기 바랍니다.


    3.전도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헛되게 맙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부활의 복음을 전하라고 파송하십니다. 우리교회는 전도에 능한 교회가 될겁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다 능력있
    는 전도자가 될 겁니다.

    주님은 전도자와 함께 하십니다. 사람은 다 죽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인생의 중요한 것은 구원밖에 없습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박사학위나 수십억의 재산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믿고 전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와서 생명을 바치며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축복이 있게된 것입니다. 우리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복음의 빚진 자들입니다.

    저는 홈페이지를 다니나 장숙임선교사의 페이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페이지였지만 저는 읽고 큰 감동과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장선교사는 아직 꽃다운 25세 처녀였습니다. 장선교사는 중학교때 친구로 인해 교회가고 고교때 주님을 영접했다 했습니다. 시골에서 선교사를 듣지도 보지 못했는데 선교사를 헌신하고 그 꿈을 키워왔다고 합니다.ccc단기선교를 통해 지금의 선교지 키르기스로 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선교를 떠나면서 어느 금식기도원에서 남겼다는 사망확인서가 퍽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형제들은 구원받지 못했고, 내가 떠나게 되면 아마도 형제들보다 그 민족을 위해 더 기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 매주 한끼를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용사들게 맡기고, 나는 '사망 확인서'를 남기고 가진돈 모두 털어서 떠난다. 교단의 파송이 아니라도, 좋고 후원하는 단체 없어도, 나는 '와서 도우라'는 음성에 순종하기로 했다. 』

    『눈 덮힌 얼어붙은 땅에 두무릎 쳐박고 눈물로 그 땅을 녹이러 간다』


     사망 확인서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주의 강권함을 받아 사는 것이며,죽은자에게는 돈이 필요없듯이 나를 위한 돈은 필여 없고 죽은자에게는 명예가 필요 없듯이 내게도 나를 위한 명예는 필요치 않고 죽은자에게는 학문이 필요없듯이 나를 위한 학문은 필요치 않다. 이밤 평생을 주님의 삶을 쫒아 살 것을 재확인하며 언제 어디서나 설사 나의 삶속에 무수한 고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오직 한길 오직 한뜻 주님의 지상명령 성취를 위해 나의 단 하나뿐인 생명과 젊음을 바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나의 삶은 전적으로 이미 죽어버린자의 삶임을 다시 한번 선언하며, 입술의 고백과 다른 삶을 살때는 내 대신에 사시는 주님께서 오히려 나의 뼈를 꺾으시길 원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여러분 주님의 부활하신 이 날에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고자 하는 뜨거움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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