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찢어지지 않는 그물(요 21 : 2-17)
  • 조회 수: 145, 2013.06.23 17:21:02
  • 새 천년이 시작하는 좋은 해에 첫 번째로 맞이하는 설입니다. 뭔가 좀 새로워지자고 서로 다짐을 하셨을 것이고, 나누었던 서로의 덕담이 금년 한해에 주의 축복으로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11절 말씀을 보면"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특별히 축복하는 것은 금년 한 해를 사시면서 우리의 삶이 찢어지지 않는 그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한마디의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서 요한복음 21장이 덤으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그물과 가장 긴밀하게 관계되어 있는 베드로를 오늘의 말씀의 주인공으로 등장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어떤 분인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왜 그가 어려움 가운데 빠졌는지? 바로 그 순간에 주님이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 어떻게 하셨는지? 그리고 베드로에게 어떤 소명을 주셨는지? 마지막에 보면 베드로께서 어떻게 죽을 것까지도 예수님께서 미리 예언하신 내용이 21장 전체의 말씀입니다.

     먼저 베드로가 어떤 사람인지?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시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베드로의 직업이 어부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열 두 제자 가운데 일곱 명이나 어부출신이었습니다. 절대 다수입니다. 예수님이 어부를 참 좋아하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분이 말하기를 어부의 기질이란 게 있습니다. 용기, 결단력, 집중력, 인내, 투지, 순종, 기회포착, 근면, 협동심, 투박하고, 순수함, 이런 것들이 어부들이 갖고 있는 특성입니다.

     그런데 어부는 이러한 특성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어부중의 어부가 베드로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어부의 기질인 이런 마음들을 우리가 소유한다면 인간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성품을 가졌다면 남보다 앞서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성품을 가졌던 베드로는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마치 고기를 잡는 그 마음으로 삼 년 동안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베드로를 불러서 자신의 제자로 삼습니다. 그 내용은 누가복음 5:1-11절에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날 따라 한 마리도 고기를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예가 없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했는데 고기를 잡지를 못하고 빈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의 허망한 마음을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 오셨습니다. "베드로씨, 그물을 다시 한번 깊은 곳에 던져보아라 그때 베드로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도 얻은 것이 없지만 선생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우리가 다시 그물을 던져보리다."

     이게 베드로의 성품입니다. 이유를 묻지 않고 따지지를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니까 한번 더 해보겠다고 그리고 순수하게 그물을 던졌는데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누가복음 5:6절에 보면 그물이 찢어졌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한 배에다 실을 수가 없어서 옆에 있는 동료의 배를 불러서 고기를 실었는데 그 배가 물에 잠기게 되어버렸습니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아보지 못한 경험도 처음이요, 한번 투망질해서 그 엄청난 고기를 잡아 본 것도 처음이요, 베드로는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옆에 서있는 신처럼 느껴지는 절대자 주님 앞에 베드로는 무릎을 끓습니다. "선생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감히 내가 선생님 앞에 내가 설 수 없사오니 저를 떠나시옵소서"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베드로야, 너는 지금까지 고기를 낚는 어부였지만 고기를 잡아 배에다 실어놓으면 그 고기는 죽습니다. 사람이 먹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 고기를 낚아도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원히 살아있는 진짜 고기를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너는 나를 따르라 이래서 베드로가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봉독한 이 부분에 있어서 바로 요한복음 21:11절에 강조된 부분이 여기서는 고기를 더 많이 잡았습니다. 배에다 실을 수가 없어서 그물채 끌고 갔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다는 것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엄청난 축복을 받고도 우리의 인생이 찢어지지 아니하고 그 축복을 놓치지 아니하고 내 인생의 배에다 실었지만 내 배가 침몰하지 않고 그대로 든든하게 유지할 수 있는 축복의 삶을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번에 만났을 때는 그물이 찢어졌어요.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놀라운 기적을 체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열심히 투망을 해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우리가 수 십 년 자식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직장을 위하고, 열심히 살았어요. 열심히 뒤도 돌아보지를 않고 열심히 투망질을 했습니다. 정직하게 했습니다. 성실하게 했습니다. 남도 도와주고 베풀어주었습니다.

     마지막에 보니까 내 인생의 그물이 다 찢어지고 소중했던 모든 것들이 다 흩어져나가 버렸다고 한번 여러분 상상을 해보세요. 내 인생의 배에다 열심히 주어 담고 만선의 깃발을 달고 승리를 불렀는데 결정의 순간에 그 배가 침몰해 버렸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더욱이나 지난번에 I M F를 통해서 그런 마음을 느낀 분이 참 많을 겁니다.

     한평생을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난번에 우리 이야기를 들었지 않았습니까, 온누리 교회의 최 장로님께서 사업이 잘되었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왔지만 부도가 나니까 자기를 다 배신하고 떠나더라는 겁니다. 파리처럼 떠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분한지 그 마을 삭힐 수가 없어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신 것이 알콜 중독자가 되어 패인이 될 만큼 되었습니다.

     이런 때는 가족도 옆에 있지만 먼 사람과 같이 느껴지고, 가슴은 뻥 뚤린 구멍과 같이 느끼게 되고, 온통 세상에 홀로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고, 살 의욕이 없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불면증까지 걸려 잠이 안 옵니다. 그것이 더 깊어지게 되면 자살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멀리멀리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런 마음이 든다고 그래요.

     베드로는 지금 상황이 그런 마음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삼 년 동안 예수님을 열심히 따랐는데 또 한번 베드로는 깨어지고 찢어집니다. 그게 바로 마가복음 14:72절에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미안하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울었다고 그랬습니다. 삼 년 동안 주님을 열심히 따랐어요. 기적도 보았어요. 다른 사람은 다 버릴지라도 나만은 주님을 사랑하고 버리지를 않겠습니다 다짐했던 베드로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수제자까지 되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선생을 자기가 배신했어요. 그 소중한 사랑을 자기가 깨뜨렸어요. 인간 관계를 자기가 깨뜨리고 스승도 저버린 것도 자기가 완전히 모든 것을 깨뜨렸습니다. 아마 베드로가 이때처럼 처절한 감을 느껴본 적이 없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울음을 잘 모르는 사나이, 투박하지만 담대한 사나이, 용감했던 사나이가 얼마나 자기 마음이 깨졌으면 통곡하고 울었겠습니까, 성경은 베드로가 울었다고 그랬어요.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이 베드로를 거기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오늘 저희들에게 주는 복음이요 메시지입니다.

    1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주님이 오신 게 아니라 거기에 계셨는데 나타내 보여 주셨다는 겁니다. 4절에 보면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인줄 알지 못하는지라"

     여러분, 주님은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어디든지 계신 것을 믿습니다. 바다 끝에 가도 기기 계시고, 하늘 끝에 가도 거기 계시고, 심지어는 음부에까지 내려가도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더라는 겁니다. 몰랐을 뿐입니다. 감추어져있을 뿐 이예요. 제자들이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는 것 주님이 다 보고 계셨어요. 주고받는 대화까지 예수님은 다 듣고 계셨어요. 바닷가에 서서 제자들의 모습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든지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신 것을 믿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혼자 모르게 극장에 가셨어요? 주님은 같이 따라 들어가신 줄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속상하게 혼자 대포 집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나오셨습니까? 그 옆에 주님이 같이 앉아 계신 것을 아십시오. 주님은 어디든지 택한 백성과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거기에 계셨어요. 우리가 몰라볼 뿐이죠.

     마지막에 베드로가 눈을 뜨고 보니까 주님이 계신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운지 그냥 허겁지겁 뛰어가서 예수님을 만나는 아름다운 장면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물을 오른 편에 던져보라고 다시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짓 왜 했느냐? 하지 말라는 짓 왜 했느냐? 말씀하지 않고 그렇게 하고싶어 하는 것 한번 더 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일도 소중하십니다. 하다가 실패했습니까? 포기하지 마시고 한번 더 시도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물을 던졌는데 고기를 많이 잡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세 가지의 기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밤새도록 전문가들이 고기가 많은 호수에서 그물을 던졌는데도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누가 믿어주지를 많아요. 고기가 많은 호수에다 그리고 가장 적기에 그물을 던졌는데도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것도 일곱 사람이나 그물질을 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두 번째, 이제는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새벽녘에 그물을 한번 던졌는데 일백 쉰 세 마리아 잡았다. 이것도 기적입니다. 그리고 더 큰 기적은 그 많은 고기를 잡았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데 기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합니다. 금년 한 해 동안에 이런 기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은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9절에 보면 제자들이 육지에 와서 보니까 벌써 예수님이 숯불을 피워놓고, 떡을 구워놓고, 생선을 구워놓으셨습니다.

     고기는 바다에만 있는 줄을 아십니까? 그물질을 해야만 고기를 얻은 줄을 아십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바다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그물을 던지지도 않았지만 주님 손안에는 이미 고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농사를 하지를 않았지만, 주님의 손안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떡이 쥐어져 있었고 숯불이 피워져있었고 고기가 구워져있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바다에서만 고기를 얻습니다. 열심히 투망질을 해서 성공을 합니다. 그렇다고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의 방법대로 살아가지를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성공했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지를 않으면 바다의 가운데에도 고기가 안 와요. 바다에 있는 고기를 누가 키운다는 것입니까? 주님이 주관하신다는 겁니다. 남이 성공하니까 거기에 고기를 던져보십시오. 똑같은 방법으로 던져보십시오. 성공할 것 같습니까?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도와주지를 아니하시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시면 육지에서라도 고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사십 년 동안 먹이고도 남는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성공은 간단해요. 오른쪽과 왼쪽의 차이밖에 없어요. 믿습니까? 그물을 똑같이 던졌는데 오른 쪽에 던졌느냐, 왼쪽에 던졌느냐, 우영 우, 자영 좌는 얼마든지 같은 자리에서 할 수가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배의 넓이 폭밖에 되지를 않아요. 중요한 것은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던지리이다.   예수 믿는 사람의 성공한 길은 오직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머릿속에 뭐가 얼마나 들어 있느냐? 지식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 그것을 계산하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내 가슴의 넓이를 계산한다고 그랬습니다. 내 가슴이 깊이를 재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머리에 무엇이 차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공하고 실패는 내 가슴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말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믿음의 마음을 가지라고요.

     테레사 수녀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이 분이 열 여덟 살 때 수녀가 되기로 서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을 떠날 때 어머니께서 일러준 말씀이 있었습니다. "애야, 내가 너에게 꼭 한가지를 부탁한다. 어디를 가든지 주님의 손을 꽉 붙잡아라. 너는 주님의 손을 놓으면 안돼. 내가 너에게 이 말 한마디를 부탁하는데 잊지 말라" 테레사 수녀는 일생을 살면서 어머니가 일러준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답니다. 힘들 때 어머니의 분부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손으로 이 답답한 가슴을 만져주세요." 그러면 주님이 만져주신대요. 주님의 사랑의 손으로 자기 가슴을 만져주면 더러운 것이 없어지고, 문둥이든지, 거지든지, 그 악취가 나는 집이라도 더러운 게 없고, 주님의 사랑의 손으로 나의 가슴을 만져주면 원수가 없고, 미운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을 평생동안 사랑하면서 일생을 살수가 있었습니다.

     삼 년이 아니라 삼십 년 동안 주님을 따랐다 할지라도, 기적을 맛보았다 할지라도, 제자 훈련을 받았다 할지라도, 한 순간도 주님이 나를 붙들어주지 아니하면 우리는 다 깨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인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부족합니다. 좌절하고, 깨지고, 부서지고, 건강도 망하고 그게 우리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다. 사단이 떨어뜨리려고 기질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위해서 기도하겠다.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겠다. 그래서 베드로가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옆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우리를 붙들어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우리가 살아남을 도리가 없습니다.

     왜 베드로가 이렇게 실패한 줄 아십니까? 답은 하나입니다. 처자식까지, 전토까지, 배까지, 그물까지, 다 버렸습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한가지 버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변화산상까지 따라갔던 자아, 불끈불끈 나오는 못난 자아가 변화산상까지도 베드로의 마음속에 같이 따라가요. 여기에다 집을 세 채를 짓겠다고 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겟세마네 동산까지도 베드로의 마음속에 그 못난 자아가 따라갑니다. 주님은 재판을 받고 모욕을 당하는데 거기까지 베드로의 마음속에 못난 자아는 함께 동행했습니다. 내 자아가 죽기 싫었기 때문에 주님을 버린 것입니다. 사랑을 배신했던 것입니다. 의를 배신했던 것입니다. 신의를 저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못난 나라고 하는 자아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베드로의 자아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여! 내가 죽습니다. 내가 죽을 대신에 주님이 죽습니다. 내 못난 자아를 주님 십자가에 함께 못박습니다." 그렇게 고백을 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자아 때문에 그렇지 못하고 도망가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아가 살아있는 한은 주님의 이름으로 내 몸을 불사르고, 내 모든 재산을 다 드린다고 할지라도, 자아가 살아있는 한은 언젠가는 내 인생은 찢어지고, 깨어지는 처절한 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 해를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내 인생의 그물이 찢어지지 않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못난 자아를 주님의 십자가에 다 못박고 죽고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공의 비결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재미있는 것은 고기의 숫자를 헤아려놓았어요. 일백 쉰 세 마리,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썼습니다. 사도 요한은 숫자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고 상징적으로 잘 쓰신 분이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얼마나 숫자가 많이 나옵니까? 그 요한이 여기에 일백 쉰 세 마리라고 요한은 놓치지 않고 여기에 썼습니다. 아무도 이 숫자를 밝힌 제자가 없습니다. 일곱 명이 증인인데도 아무도 없어요.

     요한은 그 숫자를 보면서 이렇게 마음에 간직했으리라고 봅니다. "그래 그물을 투망하는  것은 전도하는 것이고, 배에다 실은 것은 배는 교회이겠지," 베드로의 이름은 '반'석 너의 이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천국 열쇠를 너에게 주리라 그리고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 있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장차 베드로를 통해서 양들이 모여서 양육되는 교회를 상상하고 주님은 이 말씀을 주셨을 것이다. 사도 요한이 그렇게 이해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수를 끝에서부터 헤아리면 삼이라는 숫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오십이라는 숫자는 노아의 방주 폭을 말합니다. 교회의 폭을 말하고 우리의 가슴의 넓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양을 품을 수 있는 우리 가슴의 넓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백이라는 숫자는 주님이 찾을 백 마리의 양, 누가복음 15장에 비유하는 백 마리의 양 그리고 한 마리를 잊어버렸어요. 찾아야 되어요. 베드로야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땅 끝까지 가서 그 양을 찾고, 먹이고, 치고, 양육하라고 하는 사명을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많은 교회들이 울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에 관심이 많아요. 미안한 이야기로 울안에 든 양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더 중요하지요.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울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시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향하여 찾아가시고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여러분, 울안에 있는 양은 그래서 괜찮아요. 남한에 있는 사람은 그래도 괜찮아요. 북한에 있은 동포는 더 불쌍해요. 중국 땅, 삼 세계의 가난은 우리보다 훨씬 불쌍한 영혼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하나님은 그 불쌍한 영혼들을 보시고 가슴을 찢으면서 통곡하실 겁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우리는 가슴의 폭을 넓이시기를 바랍니다. 지식을 머리에 쌓아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가슴에 품고, 먹이고, 양육하는 넓은 가슴을 가지라는 겁니다. 우리 가슴의 폭 만큼 양을 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오셔서 수고하시는 것 다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양을 위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십시다. 우리들의 모든 전 재산을 거기에다 다 투자해도 아까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비 여러분의 가정 재산을 다 털고 복음을 전한다면 김 목사도 봉급을 받지 않고 다 드릴 수 있습니다. 내 것은 감춰두고 교회 것만 가지고 헌신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적당히 헌신하고 다른 사람들은 많이 헌신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향하는 양육하는 모든 교회의 기관과 모든 부서는 한가지의 목표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며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일에 우리가 한 목표를 가지 않으면 월광은 찢어집니다. 월광의 배는 침몰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너의 그물은 찢어지지 않을 것이다." 18절 보면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붙잡혀 복음을 위하다 죽을 것을 미리 예고하시고 오직 복음전하는 것 양육하는데 헌신을 다하기 때문에 주님이 보증하셨어요. 앞으로 너의 인생과 모든 사역과 찢어지지 않는 그물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에 폭을 조금 넓힌다면 우리는 서로 양육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사시기를 바랍니다. 돕는 배필이 됩시다. 양육은 맨토가 되는 것입니다. 돕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도 당신이 하나를 깨뜨렸으니까 나는 둘을 깨뜨릴 것이라고 하지 마시고, 당신이 하나를 깨뜨렸으면 나는 둘을 세울 것이다. 당신은 벽돌을 두 장을 무너뜨렸으면 나는 열 장을 세울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의 그물이 찢어지지를 않습니다. 형제와 형제의 관계도 그렇고 선후배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세움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자아를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못 박기를 원합니다. 머리로 살려고 하지 마시고 우리의 가슴의 폭과 깊이와 넓이를 우리는 주님 앞에 보여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주님은 너의 인생의 그물을 찢어지지 않게 하리라. 그 많은 고기를 배에 실을지라도 너의 인생의 배가 침몰하지 않게 해 주시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이렇게 주님이 약속하심을 믿습니다. 이 마음을 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침몰합니다. 우리는 다 찢어져서 양들은 다 나가고 말 것입니다. 그물은 한 코가 중요합니다. 이 말은 우리 성도 한 분 한 분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는 찢어지는 그물이 되기보다는 서로 하나를 이루어 든든한 그물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풍성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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