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시46:1-11, 고후 4: 7-15)
  • 조회 수: 177, 2013.07.11 07:34:46
  •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에서 우리의 삶을 질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은 깨어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애가 얼마나 많은 좌절과 실망을 겪을 것인가를 말해 주는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질그릇 같은 우리의 육체가 당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시련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당황하는 일을 만나고, 박해를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고난을 당하게 될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 고난에 절망하기 쉽습니다.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질그릇 같은 삶 속에 보물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보물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엄청난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어떤 고난이 닥쳐도,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며, 결코 넘어지거나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고난이 닥쳐올수록 오히려 예수의 생명이 자기에게서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질그릇을 깨트리지만,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 속에 담긴 보물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예수의 생명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슷한 이야기를 자기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이런 진리를 고린도교회에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의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세 번이나 이것을 떠나가게 해 달라고 간구를 하였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는 응답을 듣고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후 12:10

    고난으로 인하여 약하여 질 때 오히려 하나님의 큰 능력이 그에게 나타나 그를 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고난이 몰려올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그를 향하여 열심히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그는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끈기를,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새로운 희망에 도달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에서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에 도달하게 하는 힘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 속에 허락하신 새로운 생명은 다시는 죽음을 맛보지 않는 강한 것입니다. 그 생명은 고난을 통해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쉽게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그 고난을 통해 더 강해지고, 더욱 그 생명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배가 없는 질그릇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 간직한 놀라운 보물 때문에 그의 육체의 질그릇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죽음처럼 죽음과 맞선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그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음과 맞설 때 진정한 부활의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됨을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그릇 속에 이 보배를 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질그릇이 깨어질까 보아 늘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질그릇 같은 삶을 지키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고난과 죽음이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깨어지는 날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이 깨어지지 않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다가오는 고난과 문제 때문에 그 질그릇은 계속 깨어질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오직 소망이 있다면 건강하게 살면서 자식들 잘 키우고 행복하게 일생을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원은 우리 나라처럼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는 대단히 이루기 힘든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전쟁으로 상처받고 깨어지며, 독재자의 발길 밑에서 신음하기도 하며, 그 총칼 앞에서 목숨을 수없이 잃어야 했고, 이제 좀 살만한가 했더니 느닷없이 닥쳐온 경제적 위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말할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타격 앞에서 당황하고 크게 낙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 안정을 통한 행복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던 사람들에게 이 흔들림은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였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폭동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폭동 대신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하여 재기를 다짐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뒤덮고 있는 이 절망의 구름은 좀처럼 걷히기 어렵게 보입니다. 우리의 질그릇 같은 삶을 위협하는 이런 위기가 진정 두려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질그릇이 깨어지면 거기에 담긴 놀라운 보배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맞설 때 거기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질그릇보다 더 중요한 가치

    그러므로 이 좌절의 때야말로 새롭게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아무리 건강하게 행복하게 우리의 삶을 지키려 해도 깨어지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늘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의 약함을 알 때 비로소 겸손을 배우게 되며, 그 약함을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을 자랑하고, 재물을 의지하며, 권력에 집착하여 자기의 삶을 세우려 할 때는 오히려 더욱 깨어지기 쉬운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은 아무리 오늘 과학이 발달하고 아무리 경제가 발전한다 할지라도 결국은 깨어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모든 소망을 걸고 그것만을 위하여 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당한 경제적 위기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강하게 지탱시켜 주는 것들을 다시 찾아야 하겠습니다.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내요, 끈기며, 절약과 검소함이며,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신뢰의 구축이며, 어려울 때 서로 나누며 붙들어 주는 사랑입니다. 이런 것들은 내적인 것이며, 정신적인 것이며, 영적인 것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들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 속에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들입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강한 것들이며, 어떤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시켜 주는 참된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이런 정신적이고 영적 인 가치들을 소홀히 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경제 발전에만 몰두한 나머지 이런 내적인 가치들을 소홀히 하여 왔던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이런 영적인 덕목들을 이 사회에 공급하여 주는 원천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였다는 데 우리의 잘못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이 시대의 기술 문명에 편승하여 그것을 축복해 주고, 그 열매를 함께 즐겨온데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의 본래적인 목표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전하는 대신 우리는 열심히 기술 문명의 발전을 위해 기도하였고, 경제 성장을 위해 간구하였으며,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 부활을 전하는 대신에 이 땅의 번영과 안정만을 위해 교회 성장을 서둘러 온 것입니다.

    이제 교회도 질그릇이 깨어지는 아픔을 통하여 우리 속에 간직하고 있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가치는 질그릇 같은 이 땅의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으며,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있음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우리 속에 간직된 이 생명의 힘과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얼마나 크고 능력 있는 것인가를 나타내 보일 때가 되었습니다.

    좌절을 통하여 새로운 길로

    사도 바울은 이런 진리를 자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그는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곳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3차에 걸친 여행 중에 그는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여러 차례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이 그의 꿈을 좌절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고통을 당할수록 더욱 뜨거운 복음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던 것입니다. 그는 로마와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꿈은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고발로 죄수의 몸이 되어 옥에 갇혔기 때문에 더 이상 전도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압송되어 갔습니다. 스페인을 향한 전도 여행 대신 로마에 있는 춥고 지저분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소원하던 로마에 오기는 하였지만, 그가 마음 먹은 대로 그 로마를 누비면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몇 년동안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모든 좌절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였지만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지금 거꾸러뜨림을 당하였지만 결코 거기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좌절을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받아 드렸던 것입니다.

    그는 옥중에 있으면서도 기회가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가이사랴 옥중에 있는 동안 처음에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전도하였고, 그 후임자로 온 베스도 총독에게, 그리고 그를 방문한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앞에서 자기가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지를 길게 설명하면서 전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기회는 바울이 죄수가 되지 않았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갇힌 것으로 해서 복음 전파에 진전을 가져왔다고 하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당하는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된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곧 내가 감옥에 갇힌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므로,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내가 갇혀 있음으로 말미암아 더 확신을 얻어 말씀을 겁없이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빌 1:12-14

    옥에 갇힌 것을 좌절과 실패로 보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바울의 이런 긍정적인 사고는 바로 그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울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에게 허락된 이 조용한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여 여러 교회에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이 편지들은 짧지만 주옥같은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스페인에 갔었다면 아마도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옥중에서 쓴 편지가 그보다 더 놀라운 영향을 후세에 끼쳤다고 볼 때, 그 네편의 편지는 스페인 전도보다 더 값진 것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이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다른 방향으로 이루는 기회로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나의 문이 닫힐 때,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는 끝까지 인내와 끈기와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안정보다 더 중요한 하늘의 생명을 간직할 때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환난과 고통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극복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문이 닫힐 때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올 때 그 고난은 좌절이 아닌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뜻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낙심하지 아니하고 긍정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결단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의 삶을 너무 외골수로만 생각하던 데서 벗어나 더 넓게 그리고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믿음의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시련이 와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46편 말씀도 바로 이런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며 구원자가 되실 때 어떤 재난이 온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재난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그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한 이 땅의 어떤 고난도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없다는 확신이 이 시편에서 노래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려워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 있는 보배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힘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두려워하거나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있다면 결코 오늘 우리가 만난 이 위기가 우리에게 두려움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제 우리의 믿음의 보배가 빛을 발할 때이며, 느슨하였던 우리의 신앙을 더욱 분명하게 하여야 할 때입니다. 골리앗처럼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위기라 할지라도 소년 다윗처럼 믿음으로 무장하고 나가면 능히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하여 더 큰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께서 이룩하시는 새로운 구원의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비록 지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 어디에도 탈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조용히 들어앉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 안에 주신 엄청난 능력을 간직하고 있는 보배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면 골리앗이 문제가 아니며, IMF 위기가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의 길이 막히면 또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리며, 사방이 막히면 위로 날아오를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간직된 그 엄청난 믿음의 능력을 이제 활용하십시오. 그러면 능히 헤쳐 나가지 못할 문제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산을 옮겨 바다에 던지고 그 앞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나갈 힘이 여러분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처지에 놓였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새로운 길을 향하여 도전해 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 속에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간직한 보배를 꺼내어 빛을 내시고 그 능력을 힘입어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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