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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다니엘 06:05-10/ 신앙인의 감사 [수요]
  • 조회 수: 290, 2013.11.19 19:26:31
  •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갈 때 억울하게 붙잡혀 가게 된 포로 청년입니다. 말하자면 노예로 팔려간 겁니다. 그 노예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비참한 노예 생활 가운데서도 신실하고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아서, 마침내 그는 왕에 의해 기용되고 높이 등용되어 메대 파사 나라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다리오 왕은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방백 120명을 두었는데 우리가 알기로는 도지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들을 다스리는 총리 3명을 두고 자기는 그 위에 앉아서 정치를 하는 그런 구조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 중에 다니엘이 더 출중하고 지혜롭기 때문에 다시 더 올려서 다니엘로 하여금 온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른 귀족들을 질투하게 했습니다. 틀림없이 질투하게끔 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종으로 끌려온 청년이.... 거기다가 나이도 젊어요. 다른 신하들은 나이가 지극한데 다니엘은 젊었을 때 황제의 마음에 들어 등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똑똑해요. 아마 정치하는 방식도 틀렸을 것입니다. 음모가 가득한 궁중권력을 얻고, 유지해나가는 스타일에 있어서 다니엘은 통하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신하들이 보기에 다니엘은 럭비공처럼 어떻게 튈지.... 말하자면 정치세계에서 권모술수가 통하지 않는 그런 스타일이었을 것입니다. 그저 대충이라는 게 없고, 정직하고.... 거기다가 원체 결백하고 온전한 인격의 사람이기 때문에 무흠해서 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시기 질투하는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얄미울 정도입니다. 

    이런 다니엘을 질투하는 자들이 마침내 그를 권력의 자리에서 쓰러뜨리도록 계책을 꾸밉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어서 이 신앙적인 것을 이용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다리오 왕에게 충성을 가장한 조서를 올렸습니다. 그 조서 내용은 이렇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누구를 막론하고 왕 이외에 다른 신에게나 혹은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는 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잡아다가 사자굴 속에 집어넣어서 죽이도록 합시다." 가히 충성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다리오 왕은 일단 조서에 어인을 찍어버렸습니다. 권력자라는 게 이렇습니다. 그냥 자기를 치켜세워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기가 믿고 신뢰하는 젊은 총리를 죽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하라고 도장을 찍어버립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현명하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 때문이고, 누구 때문이며,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자기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전과 같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을 걸고 오늘 본문대로 말한다면 "감사하였더라" 했습니다. 죽을 줄 알고도 그는 감사했습니다. 자기 운명이 얼마나 비참해지고 억울하게 사자굴 속에 들어가서 사자의 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의 이런 기도는 절대적 감사입니다. 이건 조건 반사,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요, 성공한다, 실패한다는 문제도 아닙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을 넘어선, 아주 초연한 절대적 감사를 드렸습니다. 상대적 감사를 드리는 자는 언젠가는 원망하게 됩니다. 사람을 보고 감사를 하는 사람은 다시 사람을 보고 원망하게 됩니다. 좀 잘 되면 감사하고, 안 되면 원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입니다. 있다고 감사했으면 없다고 원망할 것입니다. 병 나았다고 감사했으면 다시 아프면 원망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적 감사, 절대적 은혜, 절대적 신앙에 도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참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무조건적인 감사를 하게 된 것은

    첫째, 다니엘이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신자들이 보기에도 아주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잠간 사설이지만 우리 신자들은 언제나 불신자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마산에서 목회 할 때... 어떤 자매가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왔지만 새가족 공부도 하고... 하면서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이 분 남편도 전도해 볼려고 자주 남편이 하는 가게에도 들락거렸습니다. 이 남편이 LG사원으로 근무를 하다가 IMF때 명예퇴직을 하고 중탕집을 개업했습니다. 붕어니, 용봉탕이니... 이런 것 고으는 그런 장사입니다. 그런데 그 가게 위층이 교회였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는데 이 남편 분이 저보고 그 개척교회 하는 목사님을 나무래요. 뭐라고 나무래느냐 하면 우리 같은 장사꾼들도 규칙적으로 문을 여는데... 이 2층 교회 목사님은 문을 규칙적으로 안 연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새벽기도를 하다가, 안하다가.... 자기가 볼 때에는 목사가 열심히 없다는 겁니다. 목사는 당연히 일찍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하는 것인데, 이 목사는 하다가, 안하다가... 이러더라는 겁니다. 자기는 부인이 멀리 교회를 가는 것보다 자기 가게 2층 교회를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는 걸 보니 그 교회 나가서는 안되겠더라....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정신이 바짝 났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자기 아래층 가게의 불신자 사장님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불신자들이 우리를 지켜봐요. 예수쟁이라 하면서도 지켜보고 있다가 예수쟁이처럼 안 하면 정말 욕합니다. 우리는 예수쟁이라 욕 얻어먹는 것이 칭찬인 줄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불신자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한결 같아요. 그래서 그들이 저 다니엘을 잡으려면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저것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면 틀림없다... 왜...? 그는 이런 조서가 떨어져도 기도할 테니까.... 다니엘을 시기하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다니엘을 존경했겠습니까? 그는 불신자도 인정하는 그런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비나 오나, 눈이 오나, 피곤하나, 건강하나.... 언제나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직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 다른 사람이야 어쨌든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원망하든지 나는 하나님 앞에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고로 데살로니가전서 5:16 이하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기쁨이 있고, 기도하는 기쁨에서 얻은 그 기쁨이 곧 감사입니다. 기쁨이 없는 감사가 어디 있으며, 기도 없는 기쁨이 무슨 기쁨입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얻는 그 진실한 감사, 이것이 참된 감사를 유발합니다.

    둘째, 다니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고 믿었습니다. 죽이면 죽이는대로, 살리면 살리는 대로.... 여러분... 암으로 돌아가신 옥한음 목사님은 암이 발견되었을 때... 암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70이 조금 넘으셨고.... 한창 하실 일이 있으신 분이셨죠. 그런데 데려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놔 두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지난 모든 세월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고... 지금까지 나같이 축복 가운데 목회한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나 말고 또 누가 있겠느냐..... 그러니 족하다고 하시면서 감사하는 가운데 죽음을 받아드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과 아내 보고 그랬습니다. 나도 60대 후반이 넘어서 암이 들거든 수술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암과 같이 살다가 그렇게 행복하게 가고 싶다.... 여러분... 이런 때에는 죽어도 좋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살아도 좋은 겁니다. 안 그래요? 이대로 내 생애가 여기서 끝이 난다 해도 지난날에 받은 은혜는 역시 은혜가 아닙니까? 어찌 오늘 어려운 일이 있고 고통이 있다 해서 과거에 받은 은혜를 전부 그대로 부정해 버립니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좀 아쉽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난날에 받은 은혜는 역시 은혜요, 사랑은 사랑이요, 은총은 은총이 아니겠습니까? 나야 이대로 쓰러져 간다 해도 하나님의 주신 은혜는 여전히 은혜요, 또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러한 신앙으로만이 절대적 감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셋째, 다니엘의 신앙은 깊은 신앙입니다. 다니엘은 의로운 고통을 영광으로 선택했습니다. 죄와 타협하며 더러운 이득을 취하며 비굴하게 오래 살아가기보다 차라리 깨끗하게 이대로 사자굴 속에 죽어 가는 것을 그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소유보다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고, 더러운 이득보다는 영광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런 질적인 가치 평가 기준의 인생이 아니고는 감사치 못합니다. 참 감사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출세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바르게 살았습니다. 이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번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실했습니다. 나는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고귀한 믿음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더 크게 여길 때 비로소 진실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 사람들의 폭격에 의해서 영국의 어느 마을이 아주 초토가 되었는데, 아주 좋은 저택 하나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폐허가 된 땅에 서 있는 내외분에게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위로하느라고 이런 말로 저런 말로 얘기를 합니다. "아주 다 잃어 버렸군요." "아주 다 없어지고 말았군요." 그 때에 남편은 아내를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다 잃어 버렸다고 말하지 맙시다. 당신이 있고, 내가 있고, 건강이 있고, 그리고 이 땅이 있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은 지혜가 있고, 믿음이 있고... 이 폐허에 다시 집을 지을 때는 옛날보다 더 새 집을 지을 수 있고..." 그러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것을 가졌소." 그렇습니다. 다 잃어버린 것 가운데서도 얻은 것이 있는 줄로 아는 사람, 더 크게 여기는 사람, 이 사람에게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면 "전에 행한 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에 행한 대로, 지금까지 늘 행해 오던 규례대로 그는 오늘 이러한 위기에도 또 한 번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감사가 버릇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원망하게 되면 자꾸 원망하게 됩니다. 불평하게 되면 자꾸 불평하게 됩니다. 감사도 역시 생활화되어야 하고 이것은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조그만 일에도 감사합니다. 또 항상 감사합니다. 언제든지 감사한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그런 생활 자세를 가지면 마침내 엄청난 사건을 만나도 "또 한 번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감사를 생활화해야겠습니다. 감사의 성품으로 다시 한 번 중생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할 때에 어떤 역경과 그리고 앞에 죽음이 온다 해도 무한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리고 무조건 감사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사자의 입을 막게 되었고 사자굴 속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그런 기적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깨닫고 그리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는 감사로 승리했습니다. 이 같은 승리의 감사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아버지 하나님, 어리석고 우둔한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적은 소득이 있을 때 감사하고 좀 무엇을 잃었다고 해서 원망하는 이런 낮고 천한 미련한 신앙의 사람들을 이제 한 번 더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얻든 잃든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진정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감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감사하게 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여 그 감사로써 승리하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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