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마 11:28-29)
  • 조회 수: 154, 2014.03.01 17:25:40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

    <등단 후 멘트>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과 인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할렐루야.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하겠습니다. 주님 영광 위해 살겠습니다. 우리가 그 믿음의 고백으로 함께 찬양합니다.

    (복음성가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께 사랑 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 소명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경배 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께 사랑 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 소명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경배 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

    오늘 우리의 찬양처럼 우리 삶이 그와 같은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 상처받고 낙심하고 원망과 불평의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남을 사랑하고 남을 돌보고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지 못하고 늘 내 중심으로 나를 위하고 나만을 섬겨달라는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우리 남은 삶 하나님의 영광 위해 드려지게 하여주옵소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에게 우리의 사랑을 전하게 하여주옵소서.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태복음 11장 28절, 29절 말씀가지고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크고 작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씨름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될 짐 중에 가장 큰 짐은 죄의 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죄의 짐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질병의 짐이 우리에게 지워집니다. 병원에 입원해 본 사람 아니고는 그 병자의 아픔을 모릅니다. 또 생활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부부간에 부모자녀 간에 관계가 잘못되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이 짐을 해결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희망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렐루야.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일하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시고 주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1.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심
     첫째로,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셔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어떤 짐을 지고 살아가든지 간에 짐을 내려놓으라. 죄와 사망의 짐, 질병과 고통의 짐, 가난과 저주의 짐 다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내가 너희 무거운 짐을 책임져 줄 것이라.”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예배드리는 동안에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그 모든 짐을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무거운 짐 진 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31절, 32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모든 죄와 절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특별히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배우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서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부르시사 주님의 일꾼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비난하던 세리 마태라고 하는 사람을 보실 때 그 마음에 무거운 양심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을 보시고 “내게로 오라” 부르셔서 그를 제자 삼으시고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했던 베드로를 부르사 그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주님의 수제자가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든지 다 내게로 오라. 절망의 짐을 지고 있든지, 문제의 짐을 지고 있든지, 고아처럼 외롭게 자라서 고독의 짐을 지고 있든지, 다 내게로 와서 내려놓아라.”시편 55편 22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주님만이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오래전에 그 시골길에 미군 트럭이 내려가고 있는데, 앞에 가는 길에 웬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짐을 지고 뒤뚱뒤뚱 가십니다. 그래서 트럭이 멈춰서 물어봤습니다.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네, 언덕 너머 저 마을까지 갑니다.” “가는 길이 같으니 트럭에 타십시오. 태워 드리겠습니다. 그 짐을 지고 가려면 한참 가셔야 하는데 타세요.” “아이고, 미군 양반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그러고 트럭을 타셨어요. 그러고 이제 시골길을 가는데 뭐가 이상해서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까 할머니가 그 무거운 짐을 이렇게 트럭에 지고 타서 이리 뒤뚱 이리 뒤뚱, 자꾸 흔들 때마다 뒤뚱뒤뚱 거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차를 세우고 내려서 “할머님, 할머님! 짐을 내려놓으셔야지. 왜 트럭에 타서 짐을 지고 계십니까.” “아이고, 미군 양반 태워준 것도 고마운데 내가 짐까지 내려놓으라고.” “아이, 내려놓으시라니까.” “아이,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내가 이거 꼭 지고 갈게요.” 우리가 다 웃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렇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다 내려놓기로 해놓고 갈 땐 도로 주섬주섬 다 싸고 도로 짊어지고 가는 거예요. 올 때 다 내려놓는데, ‘내 죄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부부싸움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질병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다 내려놓고 할렐루야! 갈 땐 주섬주섬 도로 다 쌓아가지고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여러분, 그 할머니가 어리석다고 우리가 웃었지만은 우리가 똑같은 삶을 살고 있잖아요. 예수님을 믿으면서 늘 걱정하잖아요. 늘 염려하잖아요. 염려한다고 무엇이 달라집니까.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집니까. 염려와 근심, 걱정이 우리의 문제를 절대 해결하지 못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할렐루야! 따라하세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할렐루야!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우리를 돌봐주세요. 자녀가 속 썩인다고요? 여러분, 자식 이기는 부모 없어요. 주님께 맡기세요. 기도하고 맡기세요. 그러면 결국 주님 뜻대로 그 자녀가 바로 서서 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남편이 속 썩인다고요? 절대 여러분이 스스로 못 고쳐요. 기도하고 성령께서 감동하셔야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맡겨요. 맡기세요. 맡기세요.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을 지은 엘리자베스 페이슨 프렌티스(Elizabeth Payson Prentiss)라는 분이 계신데, 이 분은 두 자녀를 먼저 천국 떠나보내고 나서 너무나 마음에 낙심이 되고 상처가 커가지고 불면증, 심한 두통으로 고통 가운데 지냈습니다. 삶의 희망이 없어졌어요. 아이들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으로 사는데, 아이들 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니까 희망도 없고 기쁨도 없고 의욕도 없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아마 본인도 자기의 목숨도 포기했을지 몰라요. 그런데 주님이 그 마음을 감동시켜 주셨어요. 어느 날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그 마음에 기쁨을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내가 슬픔을 극복하고 주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이런 고백을 했어요. “한때 이 세상의 즐거움을 좇으면서 평안과 안식을 구했습니다. 이제 나는 오직 주님만을 구합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옵소서. 나의 기도는 이것뿐입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슬픔은 자기의 길을 가게 하소서. 비탄과 고통을 보내소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계속 고백합니다.) 내 영혼은 언제나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갈구합니다. 깊은 숲 속에서나 침대에서나 운전할 때나 행복할 때나 바쁠 때나 슬플 때나 게으를 때나 더욱 사랑, 더욱 사랑, 더욱 사랑하라는 속삭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이 고백을 갖고 지은 찬송이 찬송가 314장이예요.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할지라도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주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슬픔과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죄의 짐을 짊어지고 나오셨습니까? 이사야 1장 18절에 성경은 말씀하십니다.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를 주님이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질병의 짐을 지고 나왔습니까? 이사야 53장 5절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나의 모든 무거운 질병의 짐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사오니 주님이여 우리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여 주옵시고 육신의 병을 치료하여 주옵시고 가정의 병을 치료하여 주옵시고 환경의 병을 치료하여 주시고 마음의 평안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할렐루야. 가난과 저주의 짐을 짊어지고 나오셨습니까?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께 나오면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데 가난과 저주가 물러가게 해주세요. 그런데 가난과 저주가 물러갈 때에 우리에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근면과 성실함으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주세요. 예수님은 죽음의 무거운 짐도 대신 짊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예수님이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할렐루야. 예수님이 우리의 짐을 날마다 대신 져주기 때문에 여러분 모든 짐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때 주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놀라운 은혜로 축복으로 넘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2. 참된 평안과 안식을 주심
     뿐만 아니라, 주님께로 나오면 둘째로 우리에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28절에,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을 바라보면 어디 편히 쉴 곳이 없어요. 들려오는 소식이 늘 우리를 염려하게 하는 소식입니다. 불안과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게 하는 소식만 들려옵니다. 어제는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알고 보니까 전국에서 데모하는 분들이 서울에 올라와가지고 길이 다 마비되었어요. 들려오는 소식은 늘 무언가 다투고, 대립하고, 갈등 있고,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는 소식들뿐입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우리 교회 저 여의도에 큰집도 자꾸 싸워가지고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되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투표하고 뽑아줬는데, 자꾸 싸우니 하나님 그분들이 우리 국민들을 걱정하고, 서로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하여 우리 대한민국에 참된 평화가 다가오고 축복이 다가오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주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절대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정치적인 문제도, 또 노사 간에 대립하고, 또 이념 간에 대립하고 다투는 것도 주님만이 그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남북통일도 주님의 은혜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의 평안이 임해야 되요. “주님 우리 마음 가운데 평안이 임하여서 다시는 다투며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미워하며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예수님 이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렐루야.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예수가 주는 평안’이라는 책에서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그리스도인이 지닌 평안은 세상의 왕들이나 용사들이 지닌 그 무엇과도 비할 수가 없다. 세상을 다 주어도 이 평안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왕의 자녀로서 복된 평안을 상속받을 수 있다. 이 평안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준비된 귀한 축복이다.”할렐루야.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 되시면 그때로부터 참된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이 임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으로 가득 뒤덮인 세상 속에 예수님의 은혜가 있으면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참된 평안을 얻으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예수님 없이는 의미가 없어요.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가도 예수님 없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불안만 점점 더 깊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우리가 믿음으로 거할 때만 이 세상 것들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염려도 근심도 걱정도 다 사라져 버리고 주님의 평안함이 임합니다. 사도 바울이요, 감옥 안에 있었지만 주님의 평안함에 있었기 때문에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 편지를 보낼 때 이렇게 말씀했어요.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니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이 감옥 안에 있는 사람한테 염려하지 말라고 그래야 되는데 거꾸로 감옥 안에 바울이 있으면서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염려하지 마라. 기도와 간구를 드리되 감사함으로 드려라.” 할렐루야.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염려할 시간에 기도하고 간구를 주님께 드리고 감사로 나아가라.” 할렐루야. 모든 염려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되 넘치는 감사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축복이 임합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료함을 받습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우리 일생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주여, 내 마음속에 예수님이 오셔서 참된 평화가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을 주여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찬송가 412)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할렐루야. “이 평화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평화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는 근심된 일이 너무 많잖아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 게시판으로 이메일로 글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하루에 한 30통 정도 답장을 합니다. 그런데 다들 무거운 짐이 있어요. 가정의 부부관계, 계속 살아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또 부모님과의 관계 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그 상담을 하는데 저는 그 모든 문제에 답을 드릴 수가 없어요. 우리 예수님이 답을 주십니다. 예수님만이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 의지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톨스토이가 55세 되던 해에 썼던 그의 책 ‘신앙론’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15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 왔습니다. 18세 되던 해에는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친구의 말에 설득되어 기독교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 55세, 이제 나는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과 같은 신앙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비로소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했습니다.”할렐루야. 예수님 자신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안이요, 안식이요, 문제의 해결자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얻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는 나에게서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3. 온유와 겸손을 가르치심
     셋째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온유와 겸손을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멍에는 뭐냐 하면요, 소를 밭 갈게 할 때 소 목에다 걸어서 뒤에 쟁기를 달고 끌게 하는 그 도구입니다. 멍에. 그런데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의 멍에가 뭡니까. 온유와 겸손입니다. 그 멍에 밑에 우리가 같이 멍에를 메고 주님을 따라 가기만 하면 주님이 우리 인생의 밭을 다 갈아 주시는데, 요한 것은 온유와 겸손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유는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제가 어느 책을 읽었더니 인생이 원래 네모로 태어난데요. 네모. 각이 있어가지고 늘 찌르고, 찌르고 또 찌르다가 성숙해지고 나면 오랜 세월에 다 닳아가지고 동그랗게 된데요. 그런데 평생 각을 세우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늘 혈기 부리고 소리치고 남을 무시하고 짓밟고 입만 열면 욕을 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마음에 상처가 많아서. “주여, 예수님이 그 마음 가운데 들어가셔서 그 마음을 변화시켜주시고 참된 예수님의 온유하심이 그 사람에게 머물러있게 하여 주옵소서.”여러분, 그렇게 화를 내고 다투고 그렇게 인생을 살면 짧은 인생길에 무슨 보람이 있습니까? 늘 웃으면서, 감사하면서, 사랑하면서,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요 우리를 책망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짓고 불의하고 타락해서 영원히 지옥 형벌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인데도 그러나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남을 용서하지 않고 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사는 우리들이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사랑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처럼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살게 하여주옵소서.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살게 하여주옵소서.”예수님 마음은 온유고요, 또 한편의 예수님 마음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뭐냐 하면 낮아지는 거예요. 따라하세요. “낮아짐”예수님이 낮아지셨어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 냄새나는 마구간에 말 먹이통에 누이셨어요. 화가들이 성탄카드를 아름답게 그려가지고 멋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2,000년 전에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는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고 그런 곳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요, 그렇게 태어나셔서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교훈이 뭔지 아세요? 섬김. 낮아져서 섬기는 그 모습을 교훈으로 그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보세요. 요한복음 13장 14절로 15절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당시 누가 발을 씻느냐하면요, 하인들이 주인이 밖에 나가서 일하다 돌아오면 발이 먼지가 묻고 더러우니까 무릎 꿇고 대야에다 물로 씻는 것이 하인들이 하는 일이예요.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면 나는 옆에 장관자리 하나 해야겠다.” 서로 자리다툼하고 있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그 고난에 그 길을 알지도 못하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맞이하니까 우쭐해가지고 “아! 예수님이 왕이 되려나보다. 옆에 한 자리해야지.” 그렇게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어요.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이요. 곧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인데. 그래서 허리띠를 동이고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으신 거예요. 발을 씻으셨어요. 마지막 가르침이 섬김입니다. 여러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지고 낮아지셨는데 가장 낮은 모습으로 발을 씻어주심으로 예수님의 그 교훈을 그들에게 전하여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때 일을 기억하면서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우리가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달라!” 이렇게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낮아져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로 내라 여기까지 왔사오니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신 그 본을 보인 것처럼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당하고 몸에 장애가 있고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는 심령으로 살기 원하오니 주님 함께하여 주옵소서. 섬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겸손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사닥다리인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것이, 은혜 위에 은혜가 바로 겸손인줄로 믿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1968년 6월4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에벤에셀 침례교회에서 그가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으뜸이 되려면 예수님처럼 살면 됩니다. 그분은 힘으로 으뜸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섬기는 종으로 오셨고 섬기며 살았고 죽으시면서 섬김을 완성하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으뜸이 됩니다. 종으로 살면 최고가 됩니다. 섬기는 데는 학위나 언변에 능함이 필요 없습니다. 종이 되는데 지위나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섬기면 누구나 으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섬김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그런데 사실 잘 안 돼요. 대접받는 것이 익숙해지면요, 늘 대접 받기만을 좋아하고요. 사람이 조금 지위가 점점 올라가면 그 지위 때문에 알게 모르게 교만해져서 대접받는 것을 당연히 여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또 많이 가진 사람들, 물질을 많이 가지면 본인이 잘나서 많이 가진 것이 아닌데도 우쭐해가지고 없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그런 경향이 있어요. 많이 배운 사람들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업신여길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어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이 주님의 삶입니다. 24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거리의 성자로 알려진 방애인 선생님. 황해도 황주의 한 재산가의 집안의 자녀로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다가 은혜를 입었어요. 그가 전주의 학교 교사로 이제 재직을 하게 되었는데 부흥회 때 성령체험을 하고나서 “아! 이제부터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그래서 가진 모든 걸 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특별히 길거리의 아무도 돌보지 않는 불쌍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고아원을 짓고 그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병든 사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찾아가서 가진 것 나눠주고 기도해주고 거리에서 싸움이 나면 가서 온유한 음성으로 싸움을 말리고 그리고 기도해 주고. 나아가서 나병환자들, 문둥병 환자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보면 피해 도망가던 그들에게 다가가서 고름을 닦아주고 눈물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 이 선생님은 온 전주 시민의 마음속에 사랑의 성자로 기억에 남게 되었는데 본인은 너무나 과로해서 24살에 장티푸스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가 하나님을 만나 성장하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옆에서 지켜보았던 배은희 모사님의 그 회고록입니다. “그녀는 세상을 비관하는 성자가 아니요 세상을 낙관하는 성자였다. 그는 스승이 되려는 교만한 성자가 아니요 형제의 발아래 엎드려 겸손히 섬기는 성자였다. 그는 죄인에 대한 책망의 성자가 아니요 죄인에 대한 눈물의 성자였다.”여러분, 우리가 상처 입은 심령들을 온유한 마음으로 품고 겸손으로 섬겨서 저들을 변화시키고 저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섬기러 오셨는데 우리는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고,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고 내가 가진 것을 더 움켜쥐고, 더 움켜쥐려고 하는 그러한 탐욕 속에 살아왔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면서 “사랑의 예수님, 이제부터 주님을 본받아서 낮아지기 원합니다. 온유한 마음 갖고 섬기기 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 다 주셨는데 우리도 우리의 가진 모든 것 주께 드려 주님 위해 헌신하는 주님의 일꾼 되게 하여 주옵소서.”이와 같은 삶을 사랑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 은혜 가운데 이렇게 택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는데 감사하지 못한 것 회개합니다. 사랑하지 못한 것 회개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것 회개합니다. 우리의 남은 여생 감사하고 사랑하며 섬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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