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망하는 사람들(출 16:1-7)
  • 조회 수: 150, 2013.01.21 17:21:16
  • 구약성경을 읽는 성도들마다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출애굽기나 민수기를 읽어보면 저들의 모습은 참으로 목이 곧은 백성임을 쉽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교만과 고집, 불신앙으로 똘똘 뭉쳐있는 저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들이 가진 또 하나의 모습은 조금만 어려워도 원망을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앞에는 홍해바다요, 뒤에는 애굽군대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차라리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고 원망했습니다(12절).
    홍해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서도 사흘이 지나 '마라'라는 곳에 이르러 마실 물이 없자 다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출15:22-27).
    애굽을 떠난 지 한 달이 되는 날에 '신' 광야에 도착했는데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이 다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게 되자 백성들은 다시 모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고기가마 곁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는 것입니다(출16:1-3).
    저들이 또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마실 물이 없자 다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출17:3).
    저들의 모습은 원망이 전부였습니다. 저들은 무슨 구실만 있으면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원망과 감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괴롭고 어려우면 원망을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질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운 때에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살전5:18)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삶은 감사의 연속이었는지, 아니면 원망과 불평으로 소비적인 삶을 살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원망하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이제는 원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입에서 감사만 넘치는 기쁨의 삶을 사시는 결단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원망의 장소

    본문 2절에 보면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원망할 수 있는 장소는 광야입니다. 광야는 모든 것이 부족한 곳입니다. 만족이 없는 곳입니다. 생활하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입니다.
    바로 이런 곳에서 원망의 소리가 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정에서 다투는 이유도 있을 때보다는 없을 때 근심이 생기고 다툴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원망을 하게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현실만 보기 때문입니다. 현실 문제만 크게 보기 때문에 그 직면한 현실을 극복할 가능성만 없어 보이면 불신앙적인 마음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민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쓴 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어 마셨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니 메추라기를 입에서 냄새가 나도록 먹이셨습니다. 농사도 짓지 못하는 저들에게 비상한 방법을 통해서 날마다 만나를 주셨습니다.
    물 때문에 원망하자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원망을 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치 못하고 살았던 증거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의 모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 불신앙적인 마음을 갖게 되면 사람은 미련하게 변해버립니다.
    잠언 19장 3절에 보면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자기가 잘못은 저질러 놓고 하나님만 원망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옛말에도 일이 잘되면 자기 탓이요, 일이 안되면 조상 탓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미련한 인생은 자기가 실수하고, 잘못을 해서 일을 망쳐놓고는 하나님만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원망도 습관입니다. 원망을 자꾸 하다보면 매사에 원망만 일삼게 됩니다.
    어느 교회에 불평을 잘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교회에서 건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교회를 너무 크게 짓는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큰 교회를 짓게되면 유지비도 만만치 않을텐데 교회가 이렇게 낭비해도 되느냐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런 사람의 불평 속에서도 건축은 진행되고 건물을 다 짓고 1년이 지나서 교회가 부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이 사람이 또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처음부터 교회를 작게 지었다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환경이 바뀌어도 불평을 그치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어려움만 있으면 물을 만난 고기처럼 이리저리 다니면서 신이 나서 원망을 일삼습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불평거리를 만들어 불평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과 같이 지낼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죽음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2. 원망을 들으시는 하나님

    본문 7절에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데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라고 했습니다.
    9절에도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고 했고, 12절에서도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소리를 철저히 들으십니다.
    저들의 원망의 소리를 시편 78편 17절에서 19절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하나님께 원망하는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들의 원망은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를 향한 원망은 곧 하나님께 하는 원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절).
    저들은 어려움만 닥치면 모세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도자에 대한 고충은 이해하려고 들지 않고 지도자의 무능으로 말미암아 이런 어려움이 오고, 지도력이 부족하여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는 돌로 쳐서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도자에게 대한 원망을 하는 저들에게 하나님은 그 원망이 바로 하나님께 하는 원망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불러내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주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책망대신, 진노 대신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만나를 주고, 고기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시103:8-9).
    우리의 행한 대로 벌을 주신다면 누가 주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먹는 타령을 하며 원망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먹을 것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공급하셨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께 원망의 소리를 내지 말고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3. 원망을 피할 수 있는 방법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있는 고질병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신앙생활하면서 수많은 원망을 일삼고 있습니다.
    원망은 우리의 신앙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원망을 계속함으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원망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우리는 원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말에도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똑같아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원망이 전체로 번졌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원망은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상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바울은 '나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빌4:11)고 말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도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 하나 배워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12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런 자족의 능력으로 모든 일에 만족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부족할 때, 만족이 없을 때,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원망보다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원망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불평과 원망보다는 오늘도 우리로 호흡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성도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입니다. 아니 우리의 신앙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독소입니다.
    지금 가는 인생길이 이해가 안되고, 사는 것이 괴롭고 답답해도 원망을 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곳이 가장 안전한 장소요, 최선의 길임을 믿고 광야 길에서도 감사만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0 admin 117 2013.01.22
9 admin 128 2013.01.22
admin 150 2013.01.21
7 admin 165 2013.01.08
6 admin 120 2013.01.07
5 admin 447 2012.12.29
4 admin 192 2012.12.29
3 admin 298 2012.12.29
2 admin 219 2012.12.29
1 admin 343 2012.12.27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