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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_부활증인(마가복음 16:1-8) [절기]
  • 조회 수: 633, 2017.04.15 22:36:37

  • 할렐루야! 부활의 아침입니다. 죽음으로 가득 찬 어두운 장막이 걷히고 눈부신 생명의 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부활의 은총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죽음이란, 단순히 우리의 생명을 끊는 가위 같은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 생동적인 삶과 함께 잘 짜여진 실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얼굴은 그의 생명에 죽음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죽음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용기,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체념의 자국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죽음의 세력 아래서 태어나서 평생 죽음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인간은 죄 때문에 죽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죽음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태어났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죽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태어났다가 자연스럽게 죽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주께서 호흡을 거두어들이시면 인생은 죽어서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나니...(시 104:29)." "산 사람이 어느 누가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시89:48)" 이런 구절들은 인간이 죽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죽을 존재임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우리는 원래 죽지 않는 것인데 아담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아담은 우리의 조상입니다. 이 조상이 하나님에게 불순종하여 죽게 되고 그 이후로 죽음이 모든 인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두 번째 아담으로 별명을 붙이셨어요. 왜 두 번째 아담으로 별명을 붙이셨냐 하면 첫 번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음으로 인류에게 죽음을 끌여들인 것인데 우리 주님도 인류의 대표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형벌을 받으시고,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인류에게 대물림 해오던 저주의 죽음, 형벌의 죽음을 끊고..... 그 다음에는 첫 아담이 인류에게 죽음을 선물한 것과는 달리 인류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영생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죽지만 예수님처럼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입니다. 


    오늘 아무리 악이 성하여도, 또 죽음이 우리를 위협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미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패배하였기에 그 이빨은 빠졌고, 그 세력은 꺾였습니다. 죽음을 부르는 죄가 이미 소멸되었고, 죽음의 권세를 휘두르던 사탄이 그리스도 앞에 굴복하였기에 죽음의 계절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 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의 계절만이 이 세계를 생명으로 이끌며, 생명문화를 꽃피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이들은 다 좋은 여인들입니다. 이들은 주님께 충성스러운 여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죽으심에도 함께 했고, 이들은 예수님이 무덤에 갇힌 뒤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른 새벽에 주님이 묻히신 무덤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마지막 정을 쏟아붓기 위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정리와 의리로 맺어진 것일지언정 참된 믿음은 아닙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하면 죽은 예수만 믿는 것입니다. 그저 위대한 영웅, 위대한 사상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그저 교양 정도의 신앙일 뿐입니다. 부활이 있을 때, 부활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사는 것이 무의미해 집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모두 다 회의에 꽉 들어차서 삽니다. 자기의 부모나 형제, 가까운 친지가 죽을 때마다 인간은 인생의 덧없음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이  많다 하더라도 죽어 버리고 난  다음에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안개같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 인간입니다. 생자필명이요 회자정리라는 말처럼 살아 있는 사람은 다 죽고, 만나는 사람은 다 뿔뿔이 헤어지고 맙니다.


     도대체 인간이  사는 의미가 무엇이며 가치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다함께 모여서 웃고, 울고, 손을 잡고 가는 것 가지만 실제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지극히 고독한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 혼자 울면서 태어나고, 죽을 때 혼자 맥없이 두 손을  풀고 죽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혼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알게 되었고 천국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옥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산다는 확실한 의미와 가치와 목표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목표가 없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알게 되고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삶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부활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에는 그 교주의 무덤이 있습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교주의 무덤이 없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만이 죽음을 격파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부활을 통해 죄를 청산하시고 삶의 의미를 확립하시고 영생에 대한 소망으로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절망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소망밖에 없습니다. 죄와 무의미가 사라졌습니다. 죽음도 사라졌습니다. 천국과 영생이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기쁨과 소망, 또 소망 가운데서 매일매일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이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아침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쏟아지는 생명의 빛을 향하여 얼굴을 듭시다. 훈훈하게 불어오는 부활의 기운을 호흡합시다. 그래서 우리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죽음의 잔재들을 말끔히 씻어 냅시다. 우리 속에 있는 죽음의 독소인 불안과 걱정과 근심들을 모두 쫓아냅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제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믿음, 이 소망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시며 더욱 열심을 내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가는 평화의 역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  도]   우리의 부활 생명이 되신 주님! 우리를 사랑하사 이 세상에 오시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사망권세 다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인하여 주님께서 찔리시고 상하심으로, 우리에게 참 평안과 구원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이 되도록 강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부활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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