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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독일의 신학자인 본회퍼는 당시 독일 교회의 연약해진 원인과 독일 교회의 능력과 사회를 향한 영향력의 상실 원인을 말하면서 이는 교회가 값싼 은혜에 집착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본회퍼는 '값싼 은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회개 없는 용서, 삶을 바꾸지 않고 용서만 가르치는 것, 고백이 없는 세례, 참된 신앙의 고백이 없이 의식에만 참여하려는 것, 십자가 없는 은혜, 희생이 없는 제자도, 그리스도를 따라가기를 원하고 축복 받기를 원하지만 희생과 수고의 땀을 거부하고 있는 성도들, 생활이 없는 그리스도인, 삶이 없는 그리스도인... 이것이 바로 값싼 은혜라고 그는 비판했습니다.
“그 날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이것은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신앙의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20절에 보면 열매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스운 말인 것 같지만 은혜가 넘치는 자리에 가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푸념하는 사람들의 말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왜 은혜의 자리에 갔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까?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2절에 나타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은혜가 크다고 하는 자리일수록 이런 자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22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여기서 그 날은 주님의 심판을 받을 때입니다. 어떤 일단의 무리가 심판의 날에 주님이 심판하시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말합니다. “주님 심판 좀 똑바로 하세요. 우리가 왜 버림받아야 합니까? 우리야말로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는데 우리를 몰라주다니요... 그러면 그 때의 주님은 과연 누구였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항의해도 주님의 대답은 오직 이 한 마디 뿐입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옛날에 정말 유명했던 현신애 권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신애 권사는 대구에서 신유은사로 유명한 분이었죠. 매일 만 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안수기도를 받고 병고침을 받고 그 일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숨을 거두고 영혼이 천국에 가서보니 자신은 수많은 환자들을 고쳐주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다가 갔으므로 당연히 자신의 집이 크게 지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개집이었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기를 모르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예수님은 모른다고 하셨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신실하게 잘 섬기고 병 고치는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을 고쳐주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왜 예수님께서 저를 모르십니까 하고 물어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능력을 가지고 돈벌기 위해 장사를 했지, 언제 나에게 영광을 돌리고 나의 일을 하였느냐고 반문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에 너무나 놀라서 한번만 회개할 기회를 달라고 사정사정을 하여 허락을 받아 되살아나게 되었답니다. 마침 시신은 뉘워 둔 채로 미국에 살던 아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입관을 미루고 있었는데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는 그동안 모아둔 수십억이 있었는데 그것을 전액 모 선교단체에 기부하였고, 얼마 후에 다시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분에게는 천국에 개집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만.... 오늘 본문 23절에서처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요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값없는 구원,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조건 없는 사랑... 이 말에 취해서 자기의 행실과 삶을 돌아보지는 않고 예수님 이름 팔고, 성령님 이름 팔아 자기 배나 불리는 이런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은 물론 그런 자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로서 매일매일 설교의 자리에 서서, 기도의 자리에 서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이름으로.... 이 말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 몰라요. 혹시라도 이런 일이 예수님, 성령님 이름 팔아 밥벌이나 하다가 왔는데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 예수님이 저에게 이러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순간순간 돌아보며 겸손해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순간순간 자신을 돌아보아 “나의 생활 속에 신앙의 행함이 있는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지, 그리고 스스로가 자신의 신앙에 취하지 말고 나를 잘 아는 주변의 사람들이 정말 나를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아주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할 줄 압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마귀가 우리를 취하게 합니다. 자기만족에 취하게 하여 우리를 교만하게 합니다. 불신앙도 문제지만 교만으로 나가는 것도 패망의 선봉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셔서 언제나 주님만 높이고, 자신은 낮추고, 감추는 겸손한 신앙을 가꾸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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