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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2. 사라의 죽음(창 23:1-4)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135, 2017.05.19 12:43:40

  • 오늘은 사라의 죽음과 관련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사라는 127세를 살고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은 것을 생각하면 비교적 일찍 죽은 편입니다. 사라는 아름다운 여자였고, 또 남편에 순종적인 여인이었기 때문에 사라가 일찍 그의 곁을 떠나 죽은 것에 대하여 아브라함의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는 한없이 슬퍼하다가 마침내 시신을 매장해야 하겠기에 헷족속으로부터 막벨라 밭에 있는 토굴을 사서 사라를 매장하였습니다. 이 땅에 사라의 시체를 매장하는 것에 대해서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는데 정리를 하자면


    1. 지금은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이 나그네, 혹은 거류민과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한 그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아내를 이 가나안 땅에 묻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산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사라의 매장지를 사야할 만큼 아주 작은 일부의 가나안 땅도 소유하지 못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것은 아직도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정착하지 못했음을 가르쳐줍니다. 흔히 가족을 매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땅에 하죠. 아무리 타처에서 살았다고할지라도 매장은 고향 땅에 하는 거죠.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 마무래 앞 막벨라 밭 토굴을 사서 거기에 사라를 매장하려고 했던 것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실 땅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2. 아브라함은 결코 사라의 무덤을 크고 화려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들의 제물과 권세를 따라 가족의 무덤을 크고 화려하게 하죠. 인도의 한 왕은 자신의 아내가 죽자 타지마할이라는 아주 화려한 궁전을 지어서 거기에 장사하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도 만약 그러려고 했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만한 권세와 제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단순히 토굴에다 시체를 두었을 뿐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세계관이 어떠했음을 우리에게 잘 알려주는 일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죽음은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 천국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썩을 시체에 그렇게 많은 정성과 재물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아브라함은 분명한 천국의 내세관을 가졌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아브라함은 지금으로부터 4천년 이상 앞서간 인물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오랜 시대에 살았던 분이 아내의 시체를 처리해나가는 과정을 볼 때 참으로 대단한 믿음을 가졌다...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죽은 뒤에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위해 제사를 지내줄까.... 이런 걱정, 아니면 나는 죽어도 땅에 매장되어야 하지 절대로 화장을 해서는 안돼... 이런 생각을 가진다던지.... 참 이런 생각들은 부질이 없어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죽은 육체는 썩어서 흙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삶과 죽음의 원리입니다. 이런 원리에 순응하는 것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누가 “아버지로 장사하고 주를 따르겠나이다” 이렇게 예수님에게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이미 죽은 사람인데 죽은 사람의 일에 너무 매달리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다루는 일에 쏟아붙는 비용과 에너지를 산 자를 위해 쓰는 일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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