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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0. 아브라함 집안 배경(창 11:27-32)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601, 2017.05.25 20:39:35

  • 오늘 새벽에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직접적인 시조가 되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불러내신 장면을 생각해보기 전에 그의 집안 배경에 대해서 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가문 배경에 대해서 한 번도 꼼꼼히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냥 아브라함의 아버지 이름이 데라... 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유대인들의 직접적인 시조가 되는 한 인물의 배경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다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 집안의 배경에 대한 것이 창세기 11장 끝에 잠간 나오는데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데라였고 이 데라에게서 아브라함, 나홀, 하란... 이렇게 세 아들이 나왔습니다. 하란은 아들 롯과 딸 밀가를 두고 그의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습니다. 그의 딸 밀가는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이 장가들었고, 롯은 나중에 아브라함을 따라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데라가 아브라함의 가족과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하여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거의 간과합니다. 그러면서 왜 데라는 가나안으로 가고자 했던가? 그런데 왜 가지 않고 하란에 정착해서 거기서 일생을 마쳤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첫째 가능성은 둘째 아들 하란이 죽은 우르가 괴로웠기 때문에 가나안 땅으로 떠나고자 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그 중간에 살기 적합한 한 곳을 만나 그 곳 이름을 둘째 아들을 기념하는 뜻에서 하란이라고 하고 그 지역에서 둘째 아들을 기리며 살았을 것으로 짐작하게 됩니다. 둘째 가능성은 하나님이 먼저 아므라함의 아비 데라를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그가 우상을 섬기던 과거를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그만 중간에 하란에 정착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에 대해서 말씀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다, 저것이다 말하기가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구약 당시의 문화는 가부장적인 문화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전 그의 아버지 데라를 먼저 불러내신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는 너무나도 우상에 물들어있었고, 거기다가 둘째 아들의 죽음에 대해 크게 상심해 있으므로 중간에서 주저앉아버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다음에 왜 조카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는가... 이 부분도 좀 상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집안 간에 부딪힘과 갈등이 심하여 갈라지게 되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갔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 지역으로 가게 된 사실은 성경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 가게 되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11장에서 보면 아브라함의 둘째 동생인 하란이 일찍 죽어서 그의 아들 롯은 어려서부터 데라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이 장자이니까 결혼하여 성인이 되어 데라는 어른으로 물러나 앉고, 아브라함이 자연스럽게 그 집안 전체를 책임지게 되어 조카 롯도 아브라함이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늙도록 자녀가 없으니까 자연히 이 조카 롯이 아브라함의 아들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아브라함의 뒤를 잇는 그 집안 장자의 역할도 롯의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아들처럼 있었던 롯이 결혼을 한 후에도 아브라함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았고,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을 향해 그 여정을 시작했을 때 롯도 감히 아브라함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여 함께 떠나게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생각해 볼 때 그는 아브라함과 함께 위대한 믿음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선 사람이었지만 그는 이것을 경히 여기고 세속적인 것을 쫓아 아브라함을 떠난 결과 정말 패가망신의 부끄러움과 함께 그의 후손들도 늘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부랑아 같은 떠돌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의 도리, 신앙의 유산들을 경히 여기면 안되겠습니다. 저는 목사라서 그런지 교인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신앙을 함부로 하고 삶의 태도가 세속적인 사람을 볼 때 그렇게 천박해 보일 수 없습니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일군은 열심히 일을 할 때 멋이 있듯이 신앙인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때 멋이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축복해주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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