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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7. 아브람의 두번째 언약의 징표, 할레 (창17:10-14)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2559, 2017.06.06 19:21:14
  • 오늘 본문 말씀은 99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주께서 찾아오셔서 다시 한 번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받으라 하십니다. 100세가 다된 늙은 할아버지에게 포피를 베는 것이 건강상 해는 없는 것입니까? 왜 아브라함은 첫 번째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실패했을까요? 또한 몸의 할례와 하나님의 언약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많은 질문들이 우리의 생각을 스칩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과 첫 번째 언약을 맺습니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지나도 자식이 생기지 않자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 버리고 하갈을 첩으로 삼아 아들을 낳는데 그래서 난 자가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은 그 후로 침묵하십니다. 아브라함과 날마다 소통하시던 주님은 13년 동안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벽을 보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언약의 표징으로 남자는 8일 된 아이로부터 모든 장정, 노년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사온 이방 사람까지 모두 다 포피를 베라고 하십니다. 포피는 남성의 가장 중요한 신체 중 하나이며 생명이 이로부터 납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심은 기쁜 일이나 모든 남자의 포피를 베는 것은 굉장한 부담입니다.


    만약 모든 남자가 포피를 벤다면 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광야에서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요즘처럼 시설이 잘된 현대식 병원이 아닙니다. 바람은 불어서 늘 먼지투성이고 씻을 물조차 없어 청결의 미는 찾아 볼 수 없는 곳입니다. 또한 예리한 칼로 포피를 베는 것이 아니라 아마 돌칼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살점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뜯어내는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시술 후 염증으로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길은 때로는 이렇게 순종할 수 없는 것을 순종하면서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믿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할례를 행할 것을 결심합니다. 두 번 다시 언약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아브라함은 다시 한 번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붙드시고 돕습니다. 전쟁을 막아주십니다. 그 어떤 염증의 부작용도 없습니다. 감염되어 죽어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긍휼히 여기시며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2) 이 말씀은 “아브라함아, 네 나이 75세, 네가 믿을 수 없는 그때에 나의 언약을 믿고 네게서 자식이 나리라는 것을 내가 의로 여겼거든 그 언약을 어찌 파기 했느냐? 천지를 만들고 사람을 만든 내가 너에게 자식 하나 주지 못하겠느냐? 아브라함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이제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내 앞에서 내 언약을 믿고 지키라. 그래서 다시는 실패하는 자가 되지 말며 완전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약속합니다. 그를 열국의 아버지로, 사라를 열국의 어미로 세울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크게 번성하여 민족이 그에게서 나오며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 이제 할레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할레는 남자의 몸에서 주요부위의 껍질 일부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을 더럽게 하는 것을 잘라내는 것으로 오늘날로 치면 죄를 씻어내는 의미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몸을 더럽게 하는 것을 잘라냄으로 새 생명이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잘라내어야 하는 것, 베어야 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왜 사업에서 실패하십니까? 왜 몸의 건강이 나빠지십니까? 왜 이웃과 싸우고, 부부가 다투며, 자녀와 이견들이 생깁니까? 왜 앞길이 열리지 않습니까? 믿음은 잘라내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기도거리가 생기는 것은 잘라내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지 않으면 그 사이로 주님의 영이 지나갈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삶에서 잘라내어야 할 것을 과감히 잘라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예리한 칼과 같습니다. 칼은 무엇입니까? 자르는 것입니다. 썩은 부위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악의 가지를 자르는 것입니다. 잘라내지 않고는 치유되지 않습니다. 베지 않고는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은 실패했지만 다시 찾아와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장 귀중한 부위를 잘라냄으로 열국의 아버지가 되는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가 가장 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잘라 버리고 하나님께 나갈 때 우리를 형통케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몸과 마음의 포피를 베어냄으로 그것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징표가 되게 하고 싶지 않습니까? 예배에 방해되는 모든 것은 베어 내십시오. 기도를 막는 모든 요소를 잘라 내십시오. 찬양을 드리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제거 하십시오. 하나 됨을 깨고 흩어지게 하는 모든 것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십시오.


    말씀의 칼로 심령을 베고 마음의 할례를 행하는 성도들에게 아브라함의 복이 있을지어다. 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언약의 징표를 마음과 삶에 구체적으로 새기는 자들에게 모든 복이 임할지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몸의 자녀와 토지의 소산과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지어다.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지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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