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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로마서 7:24/ 곤고한 삶 [수요]
  • 조회 수: 1031, 2017.06.30 16:59:55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곤고한 삶에서 벗어나기’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되었는데 아직 이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죄의 유혹에서 우리가 늘 도전을 받게 되고 벗어날 수 없는 그러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언제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얻게 되느냐? 죄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느냐? 우리가 숨을 거두는 그날... 죄하고 완전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이 육신이 자꾸 우리를 옛사람을 끌고 갑니다.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옛사람으로 돌아갑니다. 마치 고무줄을 당기면 늘어나지만 그냥 힘을 빼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요. 죄 속에 태어나서, 죄 속에 살다가, 죄에 익숙해진 그 옛사람의 모습으로 우리를 끌어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로마서 7장에서 지적했어요. 19절, 20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같이 고민하는 내용을 사도 바울이 지적을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한때 자기중심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잘 섬긴다던 그가 예수님을 이단으로 생각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감옥에 넣는 것을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도 죽을 짓을 했으니 맞아죽어도 싸다는 식으로... 거기서 증인으로 서 있던 사람입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대제사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아가지고서는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으러 가다가 빛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났어요. 거기서 거꾸러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완전히 180도 뒤집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성령충만 받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도가 되어서 가는 곳마다 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내고 또 그가 기록한 서신마다 신약성경이 되고 아주 놀라운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역사를 이룬 그에게도 그 삶 가운데 그가 조금 기도를 소홀히 하고, 조금 육신적으로 평안함을 찾다 보면 죄의 유혹이 싹 올라와서 그를 이끌어 갑니다. “아, 내 육신 속에 아직 죄성이 남아 있구나. 내가 밖에서는 대 사도바울이라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데 이런 사람 밖에 안 되나?” 이렇게 실망스러워서 한탄하는 것입니다. 전 무엇 때문에 그가 이렇게 한탄했는지는 모르지만 저도 가끔씩 제 자신에 대하여 실망스러워 ‘내가 목사가 맞나’ 싶을 때가 있어요. 뭐... 이런 생각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죠. 참 곤고한 삶이죠.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철저하게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예수 믿는다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성인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는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응아 하고 태어나서 기기도 하고 걷다가 스스로 자기가 음식을 먹고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믿음이 자꾸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자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육신과의 싸움입니다. 로마서 7장 16절, 17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데 육신과 죄와 싸우는 과정은 늘 반복됩니다. 항상 싸워야 합니다. 늘 싸워야 돼요. 죄가 나를 이끌어가도록 그냥 끌려가면 안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난 다시 그러한 삶을 살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으로 외치고 싸우면서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말씀하기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 믿어 새롭게 된 사람은 그 영이 성령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서 살려고 하고, 그 반면에 그 육체는 죄의 속성이 있으니까 죄를 따라 살려고 하니... 내 영과 육이 늘 충돌하는 거예요. 엉거주춤해서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못하고..... 이런 상태가 되니까 우리 영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곤고’ 한 뜻은 ‘어렵고 고생스럽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게 저절로 다 될 줄 알았는데.... 예수 믿고 난 후에도 죄의 문제와 늘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곤고한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뭐.... 아무 죄의식도 없이 자연스럽게 행하던 것들이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다 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단하고, 거부하고, 싸워야 하는 문제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걸리는 문제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절하고, 물리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탄식하며 말한 것이 7장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죄와 싸워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에 하루에 열 번 화내던 사람이 예수 믿고 나서 아홉 번이 되고 몇 달 지나다보니까 여덟 번이 되고 일곱 번이 되고 시간이 오래 흘러서 화를 내지 않는 아주 온유한 성품으로 바뀌는 것 같이.... 이와 같이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 아빠가 교회 나가서 집사님까지 됐는데 또 화내시네? 어저께도 화내시고 오늘도 화내시고 내일도 화내실 건가?” 이렇게 변하지 않는 모습이 무엇이냐? 죄성에 젖은 육신에게 우리가 늘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과 싸워야 돼요.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내일보다 모레가 더 나은 그러한 삶을 위해 육신과 싸워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고백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붙들어 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 힘으로는 도저히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저의 철저한 무능력을 고백합니다.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께서 죄와 싸워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가 감사할 수 있어요. 로마서 7장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여러분, 여러분 이제 곤고한 자의 모습에서 예수님 안에 있는 자의 모습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지마는 과거에 ‘시인과 촌장’이라는 그 이름으로 가수활동을 했던 하덕규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지금은 음악목사님으로 귀하게 쓰임 받고 계신데요. 한때 가수로서 이름을 날렸는데 인기 정상에 올라가면 늘 인기를 유지하느라고 마음이 불안해서 많은 술을 마시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또 대마초에 손을 대게 되고 아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가는데 그의 누나가 그를 교회로 인도했어요. 교회 가서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될 때 그는 모든 결박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었어요. 그 은혜 너무 감사해서 감동을 받아가지고 그 즉시 그가 받은 은혜를 갖다가 곡을 써 나갔는데 10분 만에 곡을 써 나갔어요. 그 곡이 ‘가시나무’랍니다. ‘가시나무’ 잘 모르시죠? 그거 유명한 거예요. 그런데 이게 유행가인지 알고 사람들이 막 불렀는데 그게 사실은 유행가가 아니라 신앙고백이에요. 여기 당신이라는 표현은 우리 주님을 가리킵니다.


    가시나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러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나중에 노래 한 번 들어보세요. 참 감동적인 노래입니다.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욕심과 욕망이 가득한 나, 쉼을 얻지 못해 지치고 피곤한 나, 깨진 영혼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누구도 다가올 수 없게 하는 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어 돌아서게 하는 나, 어둠과 슬픔, 우울이 가득한 가시나무 숲에 한 가운데 있는 나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노래하던 외로운 영혼인 저를 만나 주셨고,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이제는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야 되요. 히브리서 12장 2절 위대한 선언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제 우리가 곤고한 자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삶이 변화된 다음 그 다음 생명의 성령의 법 위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앞에 놓여진 영광의 날을 바라봅니다.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지금 잠깐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아프고 슬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그 축복의 대로를 이제 당당히 걸어 나가기 원합니다.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셔서 그 길을 이탈하지 않고 당당히 믿음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와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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