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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51. 용서의 사람 요셉(창 45:1-5)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203, 2017.07.18 18:31:16

  • 우리가 요셉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를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요셉을 용서의 사람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셉이 했던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용서,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다면 인생을 완성한 사람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완전한 성숙에 이른 사람입니다. 복음의 끝은 사랑입니다. 이것을 요셉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사랑은 어떤 종류의 사랑일까요? 요셉의 사랑은 우리가 하는 사랑과는 다른 특별한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랑합니다. 형제도, 부모도, 조국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갈등이 많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사랑합니다. 나한테 잘 해주면 나도 잘 해줍니다. 그러나 나한테 잘 못하면 나도 잘 하지 않습니다. 대개 부부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너무나 상대적입니다. 잘 해주면 나도 잘하고, 잘 못하면 나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에는 목이 마르고, 갈등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참는 사랑’입니다. 화가 나는데도 애써 참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참고 사니까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사랑하는데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사랑은 우리 것과는 다릅니다. 배다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부모님 밑에서 살 때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결혼하고 분가해서 살게 되면 경쟁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형제를 사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자기를 죽이려 했고,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린 배다른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런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는데 애쓰거나 고민하는 흔적이 없습니다.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사랑합니다.


    요셉의 사랑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나의 사랑은 가짜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참습니다. 사랑하려고 애를 씁니다. 어떤 때는 승리하지만 어떤 때는 승리하지 못합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다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요셉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요셉은 아버지 집에 있을 때부터 형들을 무조건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배다른 형들로부터 요셉은 자랄 때 많은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미움을 받았으면 우물 구덩이에 그를 집어넣었겠습니까? 얼마나 미움을 받았으면 애굽에 노예로 팔았겠습니까? 형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요셉은 형들에게 그런 감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팔려가서, 감옥에 들어가서도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형들에 대해 한을 품고 원망을 한 기록이 한 군데에도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들이었지만 요셉은 감정이 없었습니다. 잊은 것입니다. 오히려 20년 동안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헤어져 있어도 요셉의 마음 속에는 형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그 증거는 요셉이 형들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권위로 형들을 제압하기보다 단순히 ‘형’하며 달려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가슴이 너무 벅차서 대성통곡을 합니다. 이것은 마음 속 뿌리에서부터 형들을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잘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나를 화나게 하면 화를 내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나한테 잘해주거나 못해주거나, 화를 나게 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인생을 파멸로 끌고갔다 할지라도 그냥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이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부러워합니다. 우리 안에 이런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든지,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일지라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다 잊고 내가 천진난만하게 그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축복과 기름 부으심이 흘러넘치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이런 사랑, 이런 용서를 하기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붙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환경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이용하여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보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환경에서 상처 받고 마음에는 쓴 뿌리가 자리 잡습니다. 특별히 요셉과 같이 십대에 노예로 팔려가고, 누명을 쓰고, 깊은 감옥에서 몇 년을 억울하게 썩는다면 누구라도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얼굴과 그의 온 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켰습니다.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 그 인격은 더욱 더 빛나게 되었고 그 인격 가운데서 용서와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환경에 지배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쁜 환경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변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해야 할 소리가 아닙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좋은 천성, 마음과 생각까지 지키고, 성령의 부어주시는 바가 되어서 요셉과 같은 용서와 사랑이 흘러나오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을 더욱 붙들고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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