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손과 주님의 손(막 10:13-16)
  • 조회 수: 229, 2013.02.06 18:25:18
  • 어린이 주일에 주시는 말씀의 제목은 {나의 손과 주님의 손}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요단강 건너편에 가셨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가셨을 때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축복기도를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꾸짖었습니다. 안그래도 사람들이 많아 복잡한데 아이들까지 오면 더욱 번잡해질 것 같아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 모습을 보시고 분히 여기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하시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손은 축복의 손이셨습니다. 그럼 우리의 손은 어떻습니까? 축복의 손입니까? 뒷소리 하는 손입니까? 수근수근 하는 손입니까? 우리의 손도 깨끗하고, 정직하고, 표리부동하지 않고 축복하는 손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축복은 사람이 합니다. 그러면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 원리가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어지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책임은 모두 주의 종 목사들에게 있습니다. 목사들조차도 그 의미를 혼동하여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전에는 축복과 복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회의 어떤 분들도 공중기도할 때 보면 혼동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축복과 복을 구별하자면 축복은 복을 비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축복주시옵소서'라고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복을 주시옵소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삼을 때(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내가 심은 대로 거둡니다. 내가 축복하면 나도 복을 받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도 보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나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내가 먼저 복을 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시편 109편 17편에 보면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 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분대로,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저주도 입으로 합니다. 축복도 입으로 합니다. 중요한 것은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지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복을 받습니다. 내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내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성경을 보면 축복을 하는 다섯 부류의 경우가 있습니다.

    ①아버지가 아들들을 축복하는 경우입니다.(창 28:1절 이하)
    이삭은 나이 많아 늙어지자 큰아들 에서에게 별미를 만들어오도록 시켰습니다. 큰아들 에서를 축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엿들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둘째 아들인 야곱에게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드리게 하여 축복기도를 가로채도록 하였습니다. 도덕적으로 보았을 때 아비를 속이고 형이 받을 것을 동생이 가로챈 것 같아도 형 에서는 벌써 팥죽 한 그릇에 그가 받을 장자의 직분을 경홀히 여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장자직분이 야곱에게 넘어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를 보아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식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절대로 저주스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②할아버지가 손자를 축복하는 경우입니다.(창 48:13)
    야곱이 애굽에 갔더니 그의 열 한번째 아들 요셉이 손자 둘을 낳고 있었습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었습니다. 요셉은 축복기도의 위대함을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 야곱에게 청원해서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기도를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야곱은 허락하고 두 손자를 데리고 오도록 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오른손을 둘째 손자 에브라임 머리 위에 얹고 왼손을 므낫세 위에 얹고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오른손이 에브라임 머리 위에 얹어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므낫세가 큰 아들입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 야곱은 손을 바꾸지 않고 "므낫세도 한 족속이 될 것이다"라며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우가 더 큰 자가 되고 여러 민족을 거느리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민수기 1장 33절과 35절을 보면 므낫세 지파의 군대 계수함을 입은 자는 그 수가 32,200명이었고 에브라임 지파의 군대의 계수함을 입은 자는 40,500명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여러분! 손자들을 많이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핏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게 양육되도록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③친구가 친구를 축복하는 경우입니다.(수 14:13)
    여호수아는 평생 믿음의 동지인 갈렙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친구들을 축복하십시오. 불신 친구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도하십시오. 최고의 복을 받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야 친구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고임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믿을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④주의 종 목사가 성도들을 축복하는 경우입니다.
    목사는 제사장으로서, 선지자로서, 왕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합니다. 제사장은 축복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왕은 교회를 다스려 나갑니다.
    민수기 6장 22절 이하를 보면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즉 주의 종이 축복을 하면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한나가 결혼 후 자식이 없자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다른 사람이 볼 때 술취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한나를 엘리 제사장이 보게 되었습니다. 엘리는 한나에게 술을 먹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에 한나는 "이 계집종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하나님게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엘리는 한나에게 축복하기를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축복한 그대로 한나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유명한 사무엘입니다.
    중요한 것은 축복기도를 받을 때 "아멘"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 생애에 이루어주십니다. 엘리 제사장의 축복기도를 받은 한나는 "아멘"으로 받았고 다시는 그 얼굴에 슬픈 빛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 믿음 그대로 하나님은 주셨습니다.

    ⑤민족의 대표가 백성들을 축복하는 경우입니다. 모세는 죽기 전에 열 두 지파와 그 민족을 축복했습니다.(신 33:1절 이하)
    이 축복은 창세기 49장의 야곱이 죽기 전에 그의 아들 열 두 형제에게 장래를 말한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 두 아들은 야곱의 친아들들이기에 자기의 감정이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 자손이 복 받은 것은 같습니다. 요셉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찾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땅의 기름진 복도 주셨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복은 범사가 잘되는 것입니다. 강건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또한 축복은 축복자의 마음이었습니다. 왜 야곱이 꼭 큰아들에게 별미를 얻어먹고 축복기도 하려고 했겠습니까?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축복자의 마음에 감동 주시는 대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축복자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복 받기를 원하는 자는 축복자의 마음에 합당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 같으면 부모님 마음에 합당해야 합니다. 부모님 말씀에 잘 순종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신앙생활에 충성해야 합니다.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의 종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늘의 복을 합당하게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원리를 알고 있는 어머니들이 자기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이들도 예수 믿어야 구원을 얻습니다. 많은 믿음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학교교육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교회교육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예전에 시무하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자기 아이가 유아세례 받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자기가 스스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때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여도 옳지 않은 생각입니다. 그 말은 자녀를 양육할 때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유아세례 베풀 때의 문답이 이렇습니다.

    1)여러분은 이 자녀를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는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을 믿습니까?
    2)여러분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전력하는 것과 같이 이 어린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 구원 얻을 줄 믿습니까?
    3)여러분은 지금 완전히 이 자녀를 하나님께 바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친히 경건한 본을 보이기를 힘쓰며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양육하기로 서약합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아기들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기들의 신앙성장을 위하여 부모님이 믿음생활의 본을 보이며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는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아기를 믿음으로 양육하겠다는 결단을 부모님이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예수 믿기가 쉽습니다. 아기들은 그 마음이 깨끗한 백지와 같아서 어린아이 때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이끌어주면 평생을 우상숭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때에 믿음을 갖도록 부모님이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자녀들을 양육할 때 특히 믿음생활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입으로만 잘하라고 시킬 것이 아니라 부모가 먼저 믿음생활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딸만 낳다가 늦게야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아들을 귀하게 기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느 눈오는 겨울날에 아버지가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하러 가는데 아들이 따라왔습니다. 돌아보면서 아들에게 "어디가니?"하고 물었더니 아들은 눈 위의 발자국을 가리키며 "아버지 발자국을 따라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자기를 따라와서 술 먹고 노름하는 것을 보고 배우면 자기 아들도 자기와 같은 술주정뱅이에 노름쟁이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발걸음을 예배당으로 돌이켰습니다. 예배당에 간 그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후에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 때부터 십일조 헌금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성장해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알고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립니다. 그러면 영육간 강건의 복을 받습니다.
    록펠러가 6세때 아버지가 20센트 용돈을 주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2센트는 십일조인 것을 가르쳤습니다. 록펠러는 92세를 일기로 죽기까지 한번도 십일조 드리는 일을 어긴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셔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머리가 커지면 예수 믿기 힘듭니다. 자기 주장이 생깁니다. 자기 지식이 있습니다. 자기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문을 열고 예수 믿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 때 예수님을 그들의 마음속에 심도록 해야 합니다.

    언더우드가 주일학교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주일학교 헌금시간에 언더우드는 모든 아이들이 다 헌금을 하고 있는데 헌금은 하지 않고 가슴에 손을 얹고 머리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주일학교를 마치고 나서 선생님이 언더우드에게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언더우드의 말이 자기는 가난해서 헌금은 하지 못하지만 그 대신 내 몸과 마음과 정성과 생명을 주님께 바치겠다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마음의 충격을 받고 언더우드에게 30불을 주며 그 돈으로 다음주부터 헌금을 하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감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겨우 한 주일 지나고 그 다음주일 헌금시간에 언더우드는 또 헌금은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상히 여기며 아이를 불러다가 한 주에 일 불씩을 바쳐도 30주일을 바칠 수 있는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언더우드는 울며 고백하기를, 30불을 잔돈으로 바꾸고 보니 빵도 사먹고 싶고 학용품도 사고 싶고 해서, 언제 바쳐도 바칠 것이니 지난주일 한꺼번에 다 바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은 그 아이의 행동이 너무 귀하여 담임목사님께 보고했고 목사님은 장학금으로 그 아이가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었습니다. 그 언더우드가 후에 목사가 되고 신학박사가 되어 한국에 복음을 들고 선교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세운 대학이 연세대학교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모님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 여러분! 자손에게 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은 믿음생활입니다.
    모세가 위대한 민족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근본은 그의 어머니 요게벳 때문입니다. 모세가 비록 우상숭배를 하는 이방나라인 애굽의 궁중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었지만 그 어머니 덕택에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거짓 없는 믿음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청결한 믿음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그의 믿음은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외할머니의 믿음이 딸의 믿음이 되고 딸의 믿음이 그 딸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안고 축복하셨습니다. 간질병 걸린 아이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손은 이렇게 축복을 비는 손이셨습니다.
    어린이는 향기로운 꽃과 같습니다. 어린이는 백지와 같이 깨끗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들은 어린 자녀들을 잘 교육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힘을 써야 합니다. 실족치 않게 늘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로 인도하여 같이 예배드려야 합니다. 같이 찬송해야 합니다.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한다고 T.V앞에 앉혀놓고 부모님들만 예배당에 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아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주일 하루 뿐 아니라, 항상 주의 자녀로 믿음교육에 힘쓰는 우리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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