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아이들을 용납하라(막 10: 13-16)
  • 조회 수: 188, 2013.02.06 18:30:32
  • 예수님 주변에는 어쩐지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들끓은 듯 합니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유대나라는 아이들을 그렇게 대단하게 사회가 인정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성과 어린아이들은 항상 남자들 세계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을 터인데도 예수님 주변에는 어쩐지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복음서 이후에 현저히 세계가 달라지는 것이 두 가지인데, 아이들과 여성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집니다. 기독교가 들어가는 사회마다 이 두 가지가 확실히 변합니다. 여성들의 지위가 변하고 아이들의 대우가 변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그 아이들, 여성들에게 주는 크다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렇게 몰려오는 것을 어른들은 아주 싫어했어요. 여기 아주 노골적으로 제자들이 꾸짖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꾸짖는 제자들을 향하여 도로 꾸짖으면서 일러주신 말씀이 오늘 여기 본문 말씀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라. 어른들이 왜 아이들을 꾸짖습니까. 왜 아이들을 싫어합니까. 이유가 있지요. 충분히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도 아이들을 용납하지 않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용납하라 기독교가 말하는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가 이 속에 있기 때문에 오늘 어린이 주일에 이 말씀을 드리려합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 말을 상당히, 아주 묘하게 설명하는데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말해요. 아이들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부모들이 다 안고 오니까 예수님 일일이 다 안수하시고 복을 빌어 주셨다. 제자들은 그것을 반대했어요.
     그런데 마가복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다고 했어요. 애들 오는 것을 막으니까 예수님께서 막 분을 냈어요. 예수님 화나는 것 없거든요. 예수님도 어린아이 때문에 화를 내실 정도라고 하셨어요.
     누가복음 기자는 또 다른 기사를 썼어요. 제자들이 몰려오는 아이들을 막고 야단을 치니까 예수님은 도리어 아이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이더라 했어요. 하나씩 불러들여서 모아요.
     여기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특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왜 그 아이들을 용납하지 못하는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요즈음은 굉장히 관대한 것 같으면서 전혀 아니예요. 전혀 그렇지를 않아요. 어른들이 요구하는 수준에서만 이해를 하려고 하지 그 외에는 절대로 안됩니다. 이것이 부모와 아이들의 심각한 갈등이고 전쟁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왜 부모들에게 그렇게 경계를 당하고 어른들이 용납하지 않는가 그 이유를 제가 한 2주일 동안 적어 보았더니 한 20가지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한 20가지 정도를 어떻게 설교를 할까 궁리 하다가 전하기 좋은 10가지만 택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어른들이 아이들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게 아닐까 10가지를 죽 간략하게 얘기를 하고 마지막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로 아이들이 예수께로 오는 것을 막았다. 이쪽에선 오는 것이고 저쪽에선 가는 것입니다.
    1. 가는 것을 용납하라.
     애들은 어디를 그렇게 가고 싶어해요. 태어나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방구석 위 아랫목을 기어다니고, 걸음을 배우면 어디든 갈려고 합니다. 미아가 왜 생깁니까 제 발로 걸어간 미아가 90%랍니다. 그것도 멀리가 잊어버린 아이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집 앞에서 잃어버린 애들이랍니다. 미아 사고는 아이들이 가는 성질 때문이라고 합니다. 끝없이 가고싶어 해요. 막 가야해 그냥 있지를 못해 아이들은 소풍, 여행등 가면 좋아합니다. 저는 6.25동란 때 피난 가는 것이 좋아 보여 엄마보고 우리도 피난 가자고 조르다가 혼난 기억이 있습니다. 애들은 어딘가를 가고싶어합니다. 가는 것을 용납해야 아이들이 미래를 개척하는 거예요. 미지의 세계로 가고싶어하는 아이 크게 만들어야합니다. 어디라도 가도록 우리가 그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가는 길을 용납해야 그 아이 희망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
    2. 끼이는 것을 용납하라.
     어른들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게 끼이는 것입니다. 얼마나 끼어 드는지 몰라. 어른 사이에 싹 끼어 들어요. 제자들이 그것이 싫어 여기는 너희들이 끼어 드는 곳이 아니야 끼어 들지 말라고 막 밀어냈잖아요. 아이들은 엄마 아빠 잠자리에 끼어 들고, 언니 오빠 누나들 사이에 끼어 들고 어른들 사이에 끼어 들어요. 아이들도 우리들에게 참여토록 용납하라. 아이들도 좀 끼어 주세요. 나는 이 강단에 이렇게 설교한 다음에 아이들을 주일마다 데려와서 기도하고 싶어요. 우리 사이에 아이들을 끼워주는 사회가 그것이 굉장히 가능성 있는 수준 높은 사회가 아닐까. 제자들은 그것이 못마땅했습니다.
    3. 뛰는 것을 용납하라.
     아이들은 끝없이 뛰어요. 나는 아이들에게 적어도 자기를 억제하는 훈련을 시킬 목적으로 교회 안에서는 뛰지 마라. 만날 때마다 훈계해도 아이들은 끝없이 뛰어요. 말하고 돌아서면 뛰어요. 얘들은 펄펄 피가 끓으니까 걷지 못하고 자꾸만 뜁니다. 그러니까 분위기가 아주 산만해 지지요. 그러나 그 아이들의 뛰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애들이 뛰지 아니하면 병원에 가야합니다. 병든 아이거든요. 그것은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상징이고 마음이 즐겁다는 표현입니다. 아이들도 화나면 절대로 안 뜁니다. 기분 나쁘면 절대로 안 뜁니다. 뛰는 것도 우리에게 굉장히 유익한 것을 전해 주는 것으로 알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4. 먹는 것을 용납하라.
     아이들이 모이면 먹어요. 어려서는 아무 것이나 입에 집어넣어요. 독인지 무엇인지 구별 없이 먹는 것이 아이들의 소질이지요. 애들 기능 가운데 먹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기능이 없습니다. 먹고 버리고 아이들이 오는데 보면 그렇게 지저분해요. 뭐를 쏟고 흘리고 합니다. 아이들 있는 집과 없는 집 가보면 전혀 다른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용납해야 되요. 왜요. 먹어야 살지 않습니까 먹어야 커잖아요. 무엇을 먹고자하는 이 욕구 일차적이요 기본적이요 절대적 욕구라. 이것은 소유 본능과도 관계되지만 먹기 위해서 뭘 쌓고, 일하고, 모으는 가능성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것도 용납하라.
    5. 치는 것도 용납하라.
     애들은 손을 가만있지 못해요. 뭐를 쳐야해요. 누가 뭐 해 놓으면 그걸 툭 쳐 봐야해요. 옆에 낯선 놈이 오면 그걸 한 번 툭 쳐 봐야해요. 큰놈이 작은 놈 툭 쳐요. 가끔 어떤 집 아이들보고 그놈 참 예쁘다하면 툭 치는 아이들 있지요. 나는 며칠 전 집 뒤 산에 갔다가 아이들이 죽 모여와요. 고아원 아이들인지 어딘지 잘 모르겠어요. 옆에서 보고 있으니 그 중 한 놈이 철썩 안기드라구요. 얼마나 반가운지 누군지 알고 나한테 안길가 보냐. 벌떡 들어서 안았더니 나를 탁 치더라고. 아 친절한 놈은 싸가지가 없구나 한데 맞고 내려놓았지요. 아이들은 치는 버릇이 있지요. 어디나 툭툭 쳐 봐야하거든. 그러나 그것은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일일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도 용납하는 것이 그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닐까.
    6. 우는 것도 용납하라.
     아이들은 우는 것입니다. 안되고 화나면 막 울어버려요. 운다는 것은 시끄럽지요. 애들 모이면 울게 되 있습니다. 참 시끄러워요. 그런데 그것도 용납해야됩니다. 왜 우리에게 우는 정서도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필수거든, 울어야 좀 감정의 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른처럼 클래식을 듣고 좋은 것을 감상하는 그런 적이 없어요. 아이들은 좋으면 웃고 화나면 막 울고 하는 것 때문에 우는 정서까지도 우리는 자기 마음의 표현을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 그것도 용납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7. 볼려는 것도 용납하라.
     애들은 뭘 보고싶어합니다. 뭐를 뚫어요. 조그만 틈만 있으면 뚫고 깨뜨리고 그 안의 내용을 보려고 하는 탐구욕이 있답니다. 안 뚫고는 못 배겨요. 요즈음은 문이 다 유리로 되어있지만 옛날에는 종이로 발랐을 때는 애들 있는 집은 문이 성한 집이 없어요. 문 뚫어 놓은 집은 애들 있는 집이야. 애 집에 몇 있는가 알려면 문 뚫어놓은 것 보면 알아요. 못 견뎌. 포장된 선물은 그 내용을 보기 위해 포장을 뚫어야하는 것이 아이들의 심리입니다. 이것도 보고싶어하는 무언가 다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구이기 때문에 이것도 용납해야되는 것이지요.
    8. 찢는 것도 용납하라.
     애들은 뭘 찢어야해요. 갖다 주면 족족 찢어요. 무얼 갖다 두면 금방 찢어버려요. 나쁜 의도가 있어 그런 게 아닙니다. 성경책도 찢어진 집 많이 보았습니다. 애들 있는 집 성경책 성한 집 별로 없어요. 예배보다 갑자기 가서 성경책을 찢어 버립니다. 찢는 아이들 어쩌면 자기의 힘을 과시하거나 확인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어찌하든 사람은 가만히 두고는 못 견디는 그런 성질이 있습니다.
    9. 뱉는 것도 용납하라.
     조금만 구미에 맞지 않으면 뱉어버립니다. 온도가 안 맞거나 구미에 맞지 않거나 느끼하거나 매워도 뱉어버립니다. 애들은 뱉는 습관이 있습니다. 엄마가 비싼 거다 아깝다고 해도 애들은 뱉어버립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하는 능력이지요. 이런 뱉는 것도 용납해야 되 . 애들은 뭔가를 뱉어내며 삽니다. 어른들은 싫으면 싫다는 표현하고 안 좋으면 안 좋다고 표현하고 하루종일 우리들은 그런 말 저런 말하며 살아가는 데 아이들도 자기에게 맞지 않고 싫은 것을 뱉어 낼 수 있는 것도 용납하는 것이지요.
    10. 늦되는 것도 용납하라.
     굉장히 속 상하는 게 하나 있드라구. 20가지 중에 넣었다 뺏다 하다가 넣은 것이지요. 애들의 늦는 것입니다. 늦되는 것. 이해력, 문자터득, 걸음걸이, 언어구사, 등 늦는 것을 못 봐요. 속상하지요. 아이들이 성숙되는 속도는 그 아이의 우수 혹은 열등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어찌 보면 늦게 되는 것이 더 천천히 가면서 완벽해 지는 지도 모릅니다. 서둘러 가는 것보다는 다지며 가는 것도 괜찮은지 모릅니다. 좀 늦되는 것 부모에게 속 상하는 부분인데 어떡하렵니까. 구멍을 뚫습니까. 모터로 장치를 하나 더 하겠습니까 컴퓨터처럼 우수한 칩을 하나 더 갈아넣겠습니까 용납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아이도 그것만은 자기 마음대로 못한 답니다. 애가 못하는 것을 어른들이 어떻게 강요를 합니까 . 여러분, 그 늦는 아이보고 그렇게 윽박지르면 그 아이는 어떡하랍니까 이런 것까지도 용납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는 말속에는 물론 단순히 그때 상황으로 봐서는 앞서 말씀 드린 두 가지가 해당되겠지마는 저는 오늘 여러 가지 10가지 20가지 100가지 일 지라도 아이들을 용납 할 수 있는 어른이 있어야 그 아이는 행복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여러 가지 어른들의 마음에 차지 아니하고 들지 아니하고 어른들에게 불만스러운 아이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꼭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용납하는데 이해와 지원과 조정 혹은 교육이라 했습니다.
     첫째, 아이들을 이해를 해야합니다.
     아이니까 이해를 하잖아요. 아니는 아이답게 태어나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그 아이의 진도나 속도나 가능성은 그 아이의 개성이라 아무도 침해하지 못 한다는 이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첫째입니다. 이해를 해야 용납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해하나 싶죠. 여성들은 그 말 잘해요. 아이고 애비 닮아 가지고 애가 자기 아버지 닮았다고, 남자도 그럽니다. 엄마 닮아서 그렇다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도 이해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굉장히 좋지 못한 이해입니다. 이 아이가 이 측면으론 발육이 늦는지 몰라도 또 다른 면으로는 다른 사람보다 발육이 앞설 수 있고 진도가 빠를 수 있으니까 그 아이의 개성을 전 폭으로 이해하려는 이해 그것이 용납하는 첫째 관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를 다 받아만 준 게 아닙니다. 아이들 오는 것을 받아만 준 게 아니고 애들을 위해 뭘 베풀어 주셨죠. 받아서 베푸는 것이 뭡니까.
     두 번째는, 지원한 겁니다.
     아이를 지원해야 됩니다. 늦으면 늦되는 부분에 대해서나, 지나치게 행동이 과격하면 거기 관해서도 지원해야 됩니다. 그 아이가 어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할 지라도 우리는 거기에 대한 막대한 것을 지원해야 되는데 이해만 하는 게 아니고 두 번째는 무언가를 지원해 주는 것이 내 책임이거든요. 무엇을 지원 할 가를 생각하면 반드시 거기에는 아이디어가 생기게 되 있어요. 그것은 부모가 잘 아는 문제입니다. 아이를 이해하고 지원하라. 오늘 교독문 읽었습니다.
     세 번째는, 잘 조정하라 혹은 교육하라.
     그것이 교육의 찬스거든요. 아이가 어디로 착 가는 애가 얼마나 좋아요. 쉬는 날도 안 나가고 아무 데도 안가고 집에 앉아있다. 엄마가 얼마나 그 애를 개발하기가 힘이 들어요. 얼마나 사물을 가르치고 일깨우기가 힘이 들어요. 어디든 가는 애가 얼마나 좋아요. 손잡고 자 오늘은 바닷가로 가자. 오늘은 산으로 가자.
     저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산책을 합니다. 가끔 어머니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올 때 참 대견스럽고 좋아요. 우리 내외는 반드시 아이들 지날 때 서서 기다립니다. 예쁘다. 착하다고 꼭 얘기를 해 줍니다. 부모를 따라 산에 오는 아이들 먹을 것, 놀이, 볼 것, 시설 등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걷는 겁니다. 나는 그 아이들 보면서 부모의 얼굴을 봅니다. 아 훌륭한 부모로구나.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는 부모가 훌륭한 부모로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무슨 재미 그 얄팍한 재미가 아니고 그 무언가 자연을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산으로 데리고 오는 그 부모,
     여러분, 우리는 그 아이를 그런 태도로 기르는 것 아닙니까. 오늘 어린이주일이니까 일년에 꼭 한번은 어린아이 이야기를 해야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깊이 이해하는 수준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를 윽박지르고 바보 취급하고 기를 죽이고 아이의 기를 꺾는 부모도 없잖아 있거든요. 아이를 깊이 이해해야합니다. 그 아이다운 것이 그 아이입니다. 아이를 도와주십시오. 아이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경제적인 도움 그밖에도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조언이 필요합니다.

     저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저는 모릅니다. 혼자 곰곰이 생각하면 누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 궁금해져요. 제 친구들 중에는 저를 부러워하는 자가 많습니다. 참 부러워해요. 너는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다. 기분이 좋습니다. 참 기분이 좋아요. 나는 내 목적 달성을 벌써 했어요. 나는 목회 하는데 목적 달성이 벌써 이루었어요. 교회 size가 얼마냐 물으면 나는 장로님 12분만 있는 데 가면 목적이 달성이야. 그런데 장로 12분 있는 교회를 거쳐거쳐 여기도 12분 넘으니까 목적 달성 훨씬 넘게 한 사람입니다. 나는 평생에 작든 커든 내 손으로 책을 10권 이상 쓰겠다고 했는데 벌써 14 권 째 썼으니까 목적 달성 벌써 했어요. 나는 우리 아이 셋 중에 한 놈은 유학시키려 했는데 셋 다 미국에서 공부를 해 그것도 목적 달성을 했어요. 나는 건강상으로나 목회상으로나 내 인생 길에 목적 달성을 벌써 했어요. 그렇게 보면 나는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 생각을 합니다.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우리 어머님은 내가 하는 일 잘 못한 일 까지도 백 가지를 해도 그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도와주시고 꾸짖지 않았어요. 방에 별의별 것을 모아 어지럽게 만들고 접고 해도 어머니가 그런 일 하는 것을 귀찮다 하지 않았어요. 해방되고 미군부대 가까이 살아 미군 잡지를 구해다 그림 좋은 것 잘라 모은다고 어지럽게 하고 종이가 날아다니고 해도 어머님이 아들 것으로 소중하게 미루어 놓았지 야 이놈아 그게 무슨 공부냐 그런 꾸중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어요. 내가 무얼 하다 하기 싫어 금방 집어치우면 사내자식이 그것도 못하냐 그런 말씀도 한 적이 없어요. 안 하는 것도 발전하는 거다. 자식에 대해 가장 많이 아시는 분은 어머니입니다. 내가 이만큼 하도록 한데는 어머니 공이 99%입니다. 제가 미국으로 떠날 때도 어머님은 제게 아주 간략한 말씀을 했어요. 어머니는 저를 잘 아시니까. 제 밑으로 동생이 7명 죽었어요. 미안한 얘기입니다. 여러분. 내 동생이 7명이 죽고, 저 하나가 살았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것 마저 죽을까봐 그렇게 했는가 생각이 들어요. 또 죽을까봐 그렇게 겁을 내셨는가봅니다. 나는 그렇지 않게 봅니다. 제가 미국 떠나는 날도 어머님은 너는 미국 가서 네 날개를 좀 펴고 살아라. 여기는 내가 보니까 너 하고는 안 맞는 게 너무 많다고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정작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별로 안 맞는 게 뭐 있어요. 살면 되는데 .
    나는 미국 가서 그 어머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내 인생 길을 정돈해 온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오늘 여러분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정말 그 아이가 원하고, 가야하고, 가진 가능성을 이해하셔야 그 아이는 아이답게 자랍니다. 그래서 운다. 뛴다, 뚫는다, 등등 모든 것은 그 아이가 가진 에너지, 힘이고 가능성입니다. 그 가능성, 그리고 그들이 해야하는 이 어른들 비위에 상하는 막대한 일들이 아이들이 필연적으로 가야 할 그들의 course work, 가야하는 일입니다. 그걸 마스터해야 되요. 울어보고, 두드려보고, 맞아도 보고 넘어져 가는 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 아이가 그 길을 기어코 가야만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니까 우리가 이해하는 마음으로 오늘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용납하라, 용납하라,
    이해하시고, 지원하시고, 교육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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