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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5. 주의 길을 보여주소서(출애굽기 33:12-16)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351, 2017.09.07 18: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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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빨리 도착해서 즐거운 삶을 누리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 하는 소망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가나안 땅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같이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셔서 생각해보니, 가나안에 빨리 가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야 한다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가나안에 늦게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야말로 무서운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바에야 가나안 땅에 아무리 빨리 간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자녀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가나안에 빨리 가는 것에만 목적을 둔 사람이 많습니다. 사업이 형통해지기를 바라고, 몸이 건강해 지기를 바라고, 명예를 바라서 안달이 났습니다. 이제 우리의 소원을 새롭게 정비합시다. 가나안에 가는 것이 소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소원입니까? 비록 내가 광야에 머물지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모세가 한 일이 있습니다. 7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진밖에 하나님의 성막을 옮겨 세우고 이름을 바꾸어 회막이라고 불렀습니다. 회막이란 무엇입니까? 만남의 장소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 하나님을 만나야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넣어 이름을 회막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출애굽 이후 최초의 형태라 할 수 있는 회막이 세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아직 구체적으로 회막을 짓는 것에 대해서 지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모세의 아이디어입니다. 모세가 이러한 행동을 취한 의도는 이것입니다. 지금 너희들은 하나님과 분리된 관계 속에 있다. 그러므로 각성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깊이 각성하고 이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가서 매달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만나야만 한다.’ 그것이 사는 길이요, 가장 중요한 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회막이라 이름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먼저 회막으로 나아가서 기도 합니다. 이제 그 뒤를 따라가서 벌어지는 현상이 7절 하반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자기가 회막으로 나아갑니다. 그 뒤에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모세를 따라 가서, 회막에 나가 기도하게 되고 따라갈 수 없는 자는, 8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형편이 되지 않는 분들은 자기 장막에서 모세와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회막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경배하며 집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했다는 말입니다. 이 때에 어떠한 결과가 나왔는가는  9절에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구름 기둥이 회막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한 다음,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상징인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떠나서 없어졌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웠는데, 이제 여호와께 나아오는 자를 하나님이 맞아주신다고 하는 표로, 구름이 회막 위에 머무르게 되었단 말입니다. 이 징조를 보고 모세가 용기를 얻어 기도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주의 길을 알기 원한다는 말입니다. 16절 말씀에서, ‘우리를 구별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목적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 다음 15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하나님, 당신이 가지시 않는 바에야 내가 어디로 가리이까? 함께 동행하시지 아니하면 저는 아무데도 못갑니다’ 이렇게 매달립니다. 이때에 모세는 하나님을 친히 목도하는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분수령으로 해서 이스라엘의 어두운 과거는 이제 뒤로 물러가고 새로운 미래가 전개됩니다.

     

       ‘마틴 로이드 죤스’ 목사는 ‘이 본문이야말로 이 시대의 교회를 향한 예언이다’ 말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하나님과의 동행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뒤로 하고, 성장 자체를 가나안으로 추구하고 있다. 거룩함과 성결, 그리고 삶의 변화는 뒤로 하고 성공의 철학에 물들어서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이 오늘 교회의 현실이 아니냐?’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어찌 교회만을 향한 말씀입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은 말세를 사는 우리를 향한 경고입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마음으로 가나안을 향하여 가려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라! 가라! 내 말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내용을 시편106편 15절에서는 이렇게 재해석 합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을 이루려고 네가 그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냐? 그렇다면 이루어준다. 그러나 네 영혼은 창백하게 말라 비틀어져 가는 것을 너는 모르느냐?’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바꾸어야 할 줄 압니다. 가나안 땅, 우리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에 안달한다고 하나님, 예수님 다 잊어버린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소서!, 주의 길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이것이 이스라엘과 모세의 기도이듯, 또한 우리의 기도여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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