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어나라 함께 가자(마가복음 14:32 - 42)
  • 2013.02.07 22:12:20
  • 나르키소스라고 하는 아주 멋진 청년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그를 사모하며 따라 다녔습니다마는 이 청년은 매정하게 거절하고 아무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루는 사냥을 하다가 덥고 목이 마르게 되자 물을 찾아서 샘 곁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물을 마시다가 거울같이 맑은 샘물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우연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물에 비친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모습에 반해버립니다. 자기 모습에 입 맞추려고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 모습이 잡히지 않자, 그는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이 고요한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자 자기의 모습이 자기를 떠나는 줄로 착각하고 그는 자기의 모습을 잡기 위하여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빠져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 이야기입니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다가 죽어간 이 나르키소스의 이름을 따서 "자아 도취적 심리 현상"을 가리켜 나르시지즘이라고 합니다. 나르시지즘이란 한마디로 자기에게 극단적인 매력을 느끼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자기 사랑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이나 주변환경에 대하여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편견을 극대화해서 객관적인 사건이나 현실적인 일을 수용하지 못하고 일종의 자기 환상 속에 사는 것을 가리켜 나르시지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의 결과는 신화 속에 나온 대로 물에 빠져 죽는 것입니다. 비극으로 끝난다는 말입니다.

     

    어떤 부인이 저하고 상담을 하다가 "목사님 결혼하고 나서도 이렇게 외로운 줄 몰랐어요. 저는 젊어서부터 외롭게 살아서 결혼만 하면 다시는 외롭게 살지 않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많은 가족과 살아도 너무나 외로워요. 이 마음은 나쁜 겁니까? 죄가 되는 겁니까?" 이렇게 물어요. 그래서 내가 대답을 했지요. "외롭다고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결혼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부부사이에도 갈등은 있는 겁니다. 내 하나 물어봅시다. 건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병이 없는 것이 건강이지요." "아니올시다. 요즘 현대 의학적 정의에 의하면 건강이란 병이 없는 것이 아니요. 병은 누구에게나 있고 병균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많습니다. 다만 그것을 넉넉히 이길 힘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것을 건강이라 합니다. 이걸 잘 기억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부부사이에 갈등이 그렇게 많습니까?" 그랬더니만 "남편 때문이에요. 그 사람이 나한테 이럴 수가 없는데요." 그리고 남편에 대한 서운한 얘기를 많이 합디다. 한마디로 말해 "남편이 내게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문제는 그럴 수 없다는 그 일이 발생했다는데 있습니다. 이렇게 명백히 발생한 사건을 앞에 두고서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이건 아니야" 이렇게 계속적으로 현실을 부정한단 말입니다. 이 부정하는 그 사람에게는 현실이 현실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해결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현실을 인정하는 것!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나는 옳은데 다른 사람은 다 잘못되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이거 착각이에요. 이게 나르시지즘이라는 겁니다. 나르시지즘이란 잘 생긴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있는 보편적인 속성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자기자신에게 집착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에 대하여 신경도 안 쓰고 현재적 상황에 대해서도 못 보고 자기에게 몰두하는 경향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국에 정신과 의사인 스코트 펙이라고 하는 분은 많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수십 년간 상담을 하면서 한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끝없는 문제 속에서 시달리며 사는 것일까?" 이렇게 질문하고 여기에 대하여 세 가지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상의 많은 문제는 문제 자체가 많아서라기보다 사람들이 현실을 명백히 깨닫지 못하는데 원인이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 고집과 편견 속에서 거기에 빠져서 발생한 사건, 혹은 수용해야 할 현실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환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 해결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둘째, 왜 자기의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는가 하면 현실을 직시하려면 고통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내가 마땅히 치러야 할 고통을 감수하고 정면 대결하다보면 더 큰 고통을 줄일 수가 있는데, 작은 고통을 회피하다 보니 더 큰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문제를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니까 문제는 계속되고, 그 계속되는 문제가 자꾸자꾸 커져서 그 문제 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문제에 대하여 정면적으로 대응해야 된다.

     

    세째, 그렇다면 문제와 맞서야 하는데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맞서야 하는가?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니깐 이렇게 저렇게 맞서라는 공식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나 휴머니즘원리로는 안 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휴머니즘이란 인간이 존귀하고 자기 스스로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글렌 틴더라는 분은 "신이 없어도 인간은 선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논문을 썼습니다. "신이 없어도 인간은 선할 수 있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렇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에는. 그러나 사는 것이 어려워지고 손해가 예상될 때, 휴머니즘이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고 고상한 권력에 의지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 문제없는 사람도 없고, 문제없는 환경도 없고, 문제없는 세상도 없습니다. 다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겠고, 더 나은 환경으로 전진해 나가야 되겠는데 그 방법은 뭐냐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문제를 똑바로 봐야하는 것. 즉 현실을 수용해야 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정면 도전해서 필요한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요. 그리고 그 고통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내가 기준이 아니라 내 의지보다 더 크고 고상한 것에 의지하며 나아갈 때, 결국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방법이 되고 인격성숙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 이 엄청난 사건을 앞에 두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처해 나가시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것이 문제를 만난 신앙인의 모습이 되어야 할 줄로 압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서는 모든 분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법은 죄 없는 자를 죽이라고 판결했고, 종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메시아를 죽게 했습니다. 끝까지 믿어야 할 제자들은 스승을 배신하고 떠났고, 백성은 사태를 알지 못한 가운데 비방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요, 온 우주 질서가 흔들리는 모순 속에 예수님이 놓여 계십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세 가지 명령어를 써서 문제를 극복하십니다. "깨어라, 기도하라, 일어나라" 세 마디 말입니다.

     

    먼저는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34절을 봅시다.

     

    말씀하시되 내 마음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있으라

     

    "깨어있어라, 정신차려라, 의식을 분명히 해라." 그런 말입니다. "현실을 바르게 판단하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명백히 즉시해라. 피상적 감각으로만 짐작하지 말고 허황된 꿈꾸지 말고 눈 똑바로 뜨고 현실을 받아들여!" 그런 말입니다.

     

    요즘 외국인들이 잘 쓰는 말 중에 "imposter phenomenon"이라고 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사기꾼 현상. 이걸 거품현상이라고 번역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척하는 병이요. 없으면서 있는 척, 빚 얻어다가 잔치하면서 재벌인 척, 내면적으로는 거지인 줄도 모르면서 갑부인 척, 허세를 부린다는 말이지요.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대단한 전문가인 척, 한 것도 없으면서 대단한 큰 일을 한 것인 양, 그렇게 자기를 기만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보통 사람들의 70%정도가 이 척하는 병에 걸려 있다는 거예요. 지금 이것이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지금 괴로워하는 거예요.

     

    사실로 IMF는 단순한 금융문제가 아닙니다. 깊은 의미에서는 거품을 빼라는 요구요, 보호막과 껍데기 속에서 안주하던 자세를 버리고 혼자 정정당당히 경쟁대열에 서라고 하는 요구인 줄 압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 교우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 분이 이런 말을 해요. "목사님, 제가 노동부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구직행렬을 봤는데 굉장하더군요. 그 중에 한 분은 나는 그 대학에 원서도 못내 봤는데 그 대학 졸업하고 그 대학원 나오고 그리고 지원을 하는데 월급 100만원 써 놓던데요. 그 사람 제대로 일할까요? 분하고 원통해서..." 제가 얘기했어요. "하겠지요. 안 하면 어떻게 할 꺼요?" "내게 이러한 일이 생기다니 왜 하필 나인가? 나는 이러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이런 생각! 이거 나르시지즘이요. 나는 특별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 잘못했고 나는 의롭다고 하는 생각. 이 나르시지즘. 거품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경제거품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인격적인 거품입니다. 거짓과 거품, 부풀어 있는 자기자신. 이것을 유지해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 아닙니까? 이걸 깨끗하게 부셔버려야 합니다. 없는 건 없는 거고, 무식한 건 무식한 거고, 약한 건 약한 거요. 심지어는 이런 말도 합디다. "다 잃어버렸습니다." 뭘 다 잃어버려요? 원래 없었는데.. 다 착각이지요.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실패했다 망했다 그래서 술 먹고 몽롱한 상태로 회피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 말입니다. 사건을 수용해야 되는 겁니다. 깨어서 사태를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기초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현실을 겸허하게 수용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8절을 봅시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위기는 기도하게 하기 위한 최고의 동력인이 됩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복잡하다 신경 쓸 것 없어요. 내가 신경 쓴다고 될 것도 아니니깐. 나는 먼저 하나님 앞에 내 영혼을 바로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라 말씀합니다.

     

    위대한 사람들에 대한 전기를 연구하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옵니다. 특별히 초인간적으로 위대한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생활 속에 공통적인 습관이 나옵니다. 그것이 뭔고 하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꼭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고요한 시간! 다른 말로는 묵상의 시간, 종교인이라면 기도하는 시간, 이런 시간을 꼭 가지고 산다는 겁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살아가는 것이 위인들의 특징이올시다. 사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고요한 명상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잘 아는 한자 중에 바를 정(正)자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하나 일(一)자 밑에 멈출 지(止)자입니다. "가끔 한 번씩 멈춰라. 그러면 바르게 간다." 그 뜻입니다. 허둥지둥 뛰어다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되냐? 천만에 말씀. 생각하는 시간, 영감을 받는 시간, 가치를 창조하는 시간, 자기를 평가하는 시간. 이런 멈춤의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나는 바쁠수록 더 많이 기도한다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바쁘면 그만큼 더 많이 실수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시면서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이 사건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게 됩니다. 지금 눈앞에는 가야바가 보이고 로마군병이 설치고 빌라도의 비겁한 얼굴이 보입니다만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만민 구원을 위한 아버지가 내게 주신 잔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이 모순된 죽음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은혜의 잔으로 그 의미를 바꿔서 받아들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올시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기도를 끝내고 말씀하십니다.

    42절 봅시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정면 대결이요. 도피하거나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제 십자가는 지게 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당당하게 맞서서 십자가를 집니다. 여기 직면해야 할  현실적 고통이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반드시 치러야 할 정상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사장님이 한 분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몇 년만에 직원이 수십 명으로 불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은행에서 찾아와서는 "돈 얼마든지 대줄 테니까 제발 쓰시라" 해서 아주 큰소리치면서 빚을 빚어다 썼는데, 갑자기 몇 년 동안 장사가 안 되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하나 생각을 하다가 잘되겠지, 잘되겠지 하다가 2년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부도를 맞았습니다. 그가 이제 쫓기는 자가 되어서 호텔 방에서 뒹굴면서 생각하니깐 안 되겠어요.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도 없고 도망 다녀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울화가 치밀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운동을 합니다. 하루종일 산을 끝없이 쏘다니고 지칠 때까지 걷는 중에 울화가 가라앉게 되자 그는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에게 한 번 더 일어설 힘을 주십시오." 기도한 후에 채권자를 찾아갑니다. 도망가려고 했으나 이것이 해결방법이 아니므로 다시 왔습니다. 나 한 번만 더 믿어주시고 밀어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감동시켜서 다시 물건을 대줘서 자립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의 말에 의하면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언제냐 "내가 정말 망했구나"하는 것을 마음으로 수용할 때, 그때가 가장 아팠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수용하고 나니 그 다음에 있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제자들을 한번 보세요. 예수님을 잡으러 사람들이 몰려오는데도,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을데도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어요. 그리고 뭔 일 있나? 몽롱하게 졸고 있다가 기도도 안하고 결국은 다 도망가고 맙니다. 이게 보통 사람입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일어나는 것이 주님의 모습이였습니다.

     

    사건을 부정하고 원망하십니까? 안 됩니다. 먼저는 깨어야 합입니다. 상황을 직시하고 현실을 수용하세요. 그 다음에는 기도하세요. 하나님의 경륜과 뜻이 이 사건 속에 있다. 이 사건 속에서 나를 향한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직면하는 거요. 실종된 진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용기를 가질 때,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나 혼자 이 문제에 직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주님이 나와 함께 내 길을 걸어가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새 출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복잡한 환경 속에 살아가는 저희들입니다. 우리의 인간 관계도 직장문제도 진학의 문제도 경제의 문제도 정확히 볼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는 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받아들이고 받아드리는 만큼 해결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비옵나니 깨어서 문제를 직시하고 더 나아가 그 문제의 신학적인 의미, 날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사건 속에서 듣게 하시고 이제 새롭게 주님과 함께 그 문제를 맞서서 나아가는 성숙한 인격의 사람,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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