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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사도행전 2:44-47) [수요]
  • 조회 수: 622, 2017.09.27 16:04:14
  • 아주 동요 비슷한 노래가 있는데 김민기 가수가 부른 노래인데 나눔에 대해서 참 깊은 의미가 실린 노래인 것 같습니다. 가사가 이래요.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에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 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 4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숫자를 더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보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는 예외 없이 교회가 세상 사람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이지 세상에 칭송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에 나타나는 현상은 세상의 칭송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영어의 ‘service’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번역되지만 사람들에게 행하는 ‘봉사와 섬김’으로도 번역됩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온전한 예배는 이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 와서는 그 누구보다 거룩하고 은혜롭게 예배드리는 사람이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그 어느 것 하나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의 모습에서 좀 멀어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세상에서 착한 일,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정말 열심히 봉사하지만,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가 아닙니다.


    예배(service)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봉사(service)이며, 봉사(service)는 세상 속에서 몸으로 드리는 최고의 예배(service)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최상의 봉사로 예배하고, 세상 속에서 최고의 예배로 이웃을 섬기며 나눌 때, 세상 사람은 그런 우리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경제적인 논리로 운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을 체험하고 난 후 그들의 눈에는 경제적 논리가 보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슴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 필요를 따라 나눠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것이 교회의 사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었더니 백성이 그들을 칭송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삶에 나눔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원리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섬기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가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증가하고 크게 부흥하게 되었는데 사도행전 2장 47절에서는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 비결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과 백성의 칭송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교회로 모여 하나님을 찬미하며 예배드렸을 뿐만 아니라, 다시 세상에 흩어져 세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고 섬기며 봉사하였기에 세상의 칭송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모여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하는 일에는 참 열심을 내 왔습니다. 그래서 크게 부흥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7~80년대의 놀라운 성장 기록이 멈추더니 급기야 이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백성에게 칭송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그래도 예수를 믿는 저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사람들이다. 저 교회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다.’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데, 세상 사람의 칭찬을 받을 만한 나눔과 섬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나눔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의 말씀...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있다고 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은 나눔을 통해서 채워지고, 또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원리는 순환의 원리입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그 물은 썪습니다. 그와 같이 재물도 흐리지 않고 고여있기만 한다면 그 재물은 썪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나눌 대상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복을 담는 그릇도 커지는 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누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극히 제한적인데,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오늘 내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누리는 사람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지갑에 돈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습니까? 지구 전체를 100으로 보았을 때 단지 8명 안에 드는 사람이랍니다. 자가용을 타고 다닙니까? 100명 중 5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생활하면서 본 것인데 우리나라 시장 길바닦에서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귀 닦는 솜봉.... 그걸 두 세 개 들고 하루 종일 육교에서 파는 젊은 아줌마를 보았습니다. 그 나라 보통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도 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세계의 25%의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비축한 양식도 가지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늘 두 다리를 뻗고 편안히 잠잘 수 있는 거처도 없고, 상당수의 사람이 영양실조에다 당장 먹을 일용할 양식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국제 기아대책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지구촌에는 1분에 24명, 하루에 3만 5천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5년간 굶어 죽은 사람이, 과거 150년에 걸쳐 이 지구에서 일어난 전쟁, 유혈 혁명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보다도 많다고 합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일진대, 그것을 지켜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안다면 우리가 나누는 삶을 실천해야 하고... 그 실천의 삶이 추석을 앞둔 지금부터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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