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의 때에 위로 받는 비결(막14:32-42)
  • 2013.02.07 22:06:36
  •   오늘은 마가복음 14: 32-42절의 말씀을 가지고 '고난의 때에 위로 받는 비결'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따라하게 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삶을 산다는 것,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하나의 고통이 지나 가면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오고, 한 종류의 고통이 지나 가
    면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욥기 5장 7절에서 욥의 친구 엘
    리바스는 욥을 향하여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낳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에는 매우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자질구레한 고통에서부터 잔인하고 충격적인 고통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모르고 당하는 고통도 있지만 다가올 고통을
    미리 알고 불안과 긴장속에서 당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그럴 때의 고통은 실로
    우리의 뼈와 살을 마르게 하는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이 바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고
    통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올 고통을 다 아시고 그 고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
    음 다가가신 것이었기 때문에 주님의 고통은 비단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동반한 뼈를 마르게 하는 고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34절에도 보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으니...' 라고 예
    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큰 것
    이었는가?를 암시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잠시 후에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한다는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 심한 어떤 정신적 고통, 그 분이 죄
    인처럼 매달려야 한다는 것, 죄를 모르신 그 분이 죄인이 되어 죄인처럼 십자
    가에 매달리셔야 한다는 수치스러운 고통, 혹은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일시
    적이나마 죄를 짊어지고 그분의 심판을 경험하심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분리
    되어야 한다는, 혹은 십자가의 상황을 앞두고 그가 사랑했던 제자들이 그분을
    버리고 도망감으로써 그분이 겪으셔야만 했었던 그런 배신의 고통, 이런 것들
    이 주님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고통을 예수님은 어떻게 해결해 나가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
    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예수님께서도 그 고통 앞에 어떤 위로를 찾
    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고통이 있습니까? 아픔이 있습니까? 이
    시간 예수님으로부터 그러한 고통을 이기는 지혜와 비밀을 배울 수 있기를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고난의 때에도 위로 받을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 친구나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함으로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
    매....' 그리고 33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
    리고 가실새 심히 놀래시며 슬퍼하사'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그 겟세마네 동산을
    가시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왜 데리고 가셨을까
    요? 우리는 보통 내가 어떤 고통스런 일을 겪게 되면 그것을 남한테 보이기
    싫어합니다. 우리 동양권의 문화는  체면문화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있습
    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동반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왜 제자
    들을 동반하셨을까요?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사람이셨기 때문에 이런 외로움과 고통스런 상황을 직면하
    시면서 누군가로부터 위로 받고 싶어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제자
    들과 함께 있고싶어 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친구 삼아 그 고통의 밤을 함
    께 지내고 싶어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괴로울 때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그럴 때 보통 같이 있어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바로 친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제 그 사람
    이 나와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내가 고통을 당할 때. 그들이 보
    여주는 반응을 봄으로써 우리는 그가 나의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은 우정의 테스트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영국 격언에 보
    면, '좋은 일은 친구를 만들지만, 역경은 친구를 시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
    경은 친구를 시험합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엘케고로도 '고난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들을 우리는 알아본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유명한 과학자였던 퀴리 부
    인역시 '역경에 처할 때 우리들은 진정한 친구들의 숫자를 세어 볼 수가 있다'
    고 했습니다. 친구가 즉 가까운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내가 고통 당할 때, 역
    경을 만날 때 비로소 진짜 친구가 몇 명이냐? 를 우리는 세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잠언17장 17절에도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에 남아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정말 위기를 만났을 때 그때 우리는 참된
    친구를 알아보고 형제를 알아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남긴 이런 감동적인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미국의 같은 마
    을에 살던 친구 두 사람이 전쟁에 징집되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훈련을 받고
    공교롭게 같은 부대에 배치되어 같은 전선에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작
    전 도중 한 친구가 참호를 나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포탄이 머리위로
    나르기 때문에 자기 참호로 돌아오지 못한체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친구를 잃어 버린것을 안 또 한 친구가 견디지 못하고 막 포탄이 날
    아오는데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분대장이 막습니다. 지금 나가면 너도 위
    험해 진다. 그러나 분대장의 시선이 다른데로 쏠린 틈을 타서 그는 재빨리 자
    기의 참호를 나와서 친구가 고립된 곳을 향해 포복해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고립된 친구에게 접근해서 그 친구를 붙들고 들쳐업고 그는 다시 참호
    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친구의 몸에는 이미 많은 파편이 밖혔고 그도 많은 상
    처를 입고 피를 흘리면서 친구를 참호로 데리고 왔을 때 친구는 숨을 거둔 후
    였습니다. 분대장은 야단을 칩니다. 이런 병신같은 이 바보같은 네 친구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너도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이때 그 죽은 친구를 들쳐업고 왔던 친구는 분대장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남겼
    다고 합니다. 분대장님은 무슨 소용이 있느냐? 무슨 의미가 있느냐? 친구는 이
    미 죽었고 저도 부상을 입었으니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씀하시지만, 분대장
    님은 제가 친구를 죽기 직전에 만났을 때 제 친구의 얘기를 듣지 못하셨지요.


    '네 친구가 뭐라고 그랬지? 내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짐, 나는 네가 올
    줄 알았어. 짐, 나는 네가 올 줄 알았어....' 그게 친구입니다. 친구는 고통의 순
    간에 더불어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이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이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이 고독한 순간, 이 고통스런
    순간, 내일이면 십자가를 지셔야하는 그 어두움이 닥쳐오고 있는 그 밤에 제자
    들을 친구삼아 그 동산에 함께 있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친구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제자들의
    반응을 37절에 보시면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우리 한 시간
    동안만 좀 깨어 있어 함께 기도하자, 같이 좀 대화를 나누자. 이 외로운 밤, 이
    고통스런 밤, 주님은 대화를 요구하셨고 기도를 요구하셨지만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친구 역할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서의 기사를 묵
    상하면서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은 친구 노릇을
    못했지만, 친구의 자격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그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상황과 같은 사실을 다루고 있
    는 요한 복음의17장이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직전에 마지막 대화를 나누면서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진정한 친구는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단다. 나는 너희들의
    친구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곁에 좋은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느껴지시는 상황이 있습니까? 방
    법을 말씀 드리죠. 그렇다면 여러분이 먼저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우
    리는 이따금씩 장례식을 가보면 어떤 장례식은 너무나 견디기 어렵도록 쓸쓸
    한 장례식이라고 느껴지는 장례식이 있습니다. 너무나 쓸쓸한 장례식. 사람들이
    없는 장례식, 물론 알리지 못한 상황, 예외적인 상황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
    러나 대부분 그런 쓸쓸한 장례식의 뒷 얘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평소에 다른
    사람을 찾지 않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둔감했던 사람, 나중에 자기가 가장 고독한 상황에 찾아
    오는 사람이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 보다 낫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울 때 함께하는 것
    이 진정한 이웃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극복하면서 어떻게 의미
    에 찬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을 까요? 우리 시대의 탁월한 크리스챤 카운셀러
    요, 의사였던 스위스의 폰 트루니에가 쓴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
    이 배우자와 더불어 마음이 통할  수가 있다면 당신의 아내, 당신의 남편과 더
    불어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애정의 관계를 가질 수가 있다면 그리고 당신의 동
    성 가운데서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몇 명의 친구,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를
    비판하지 않고 내 얘기를 들어 줄 수 있는 몇 명의 친구만 있을 수 있다면 당
    신의 인생의 장에서 아무리 폭풍우가 요란해도 당신은 그 폭풍우를 뚫고 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탁월한 진단입니까? 인생의 장에서 아무리
    우리가 폭풍우와 먹구름을 경험한다 할 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와
    더불어 마음 통하는 애정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내 주변에 내가 무
    슨 얘기를 해도 내 마음속의 얘기를 받아주고 들어주고 함께 할 수 있는 가까
    운 사람 몇 사람만 있다면 저는 인생의 어떤 폭풍우도 뚫고 나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인생은 홀로 걷기에는 홀로 가기에는 너무 고독한 인생입니다. 여러
    분 주변에좋은 친구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없다면 여러분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안에서 이 좋은 친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적합
    한 상황이 저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이 내 친구가 될 수
    는 없지만, 그러나 교회 안에서 몇 사람, 정말 마음이 통하고 함께 기도할 수
    있고, 함께 인생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몇 사람만 사귀어도 여러분의 교
    회 생활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하나님께서 그런
    친구를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속에서도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천온누리교의 7대 영구 목적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교회로서 목장모임을 중요시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주일 날 왔다가 돌아가면서는
    결코 친구로 사귀어지기 힘들지 않겠습니까?(따라하게 한다; 000님 힘들 때 친
    구 되어 줄께요, 내가 힘들 때 친구 되어 주세요)

      둘째: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위로 받는 비결 그 두 번째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가 나를 위로하는 것 중요한 일입니다.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친구들 사이의 위로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
    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때 거기에는 항상 한계가 있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
    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로할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서
    말을 나누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남들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습니
    다. 그 전형적인 실례가 바로 욥의 친구들의 경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위로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상처를 더해 주었습니다. 이럴 때 어떻할까요? 이럴 때
    어디로 갈까요? 이럴 때 누구를 의지할까요?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별로 예수님에게 친구의 입장에서 주
    님에게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님이 취한 태도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 35절에 보시면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은 기사를 누가 복음에서 읽어보시면 누가 복음 22장 41절에 '저희
    를 떠나 돌 던질 만큼 된 거리에 가서 주님은 무릎을 끓고 기도를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고통을 알아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친구예요. 그
    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 때문에 모든 것
    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된 거리에
    가서 주님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이제 누구를 찾습니까? 하나님
    을 찾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본문의 36절을 보시면 '가라사
    대 아바 아버지여....' '아바'란 말은 우리 말의 아빠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입니
    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애칭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마치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돌아가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기대
    고 싶은 심정으로 그 분 앞에 자기의 절망, 자기의 고통, 자신의 아픔을 지금
    속으로부터 끄집어내어 부르짖어 기도하는 순간입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조
    렌이라는 기독교 철학가는 기도를 정의하기를 '기도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단독자의 체험'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주님 앞에 홀로서는 것. 아무도 나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도 여전히 나는 기도라는 수단을 통하여 그 분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또 제임스 휴스톤이라는 학자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우정'이
    라고 정의했습니다.

      예수님은 친구로 여겼던 제자들로부터 위로나 도움을 받지 못하자 하나님앞
    에 그 마음을 쏟아 놓고 있습니다. 그 분은 고독하셨습니다. 외로우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를 수있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친구들도 따라오지 못하는 고독한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부
    도 함께 할 수 없는 외로운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내가 부를 수 있는
    하나님, 내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는 하늘 아버지가 계시다면 결코 우리는 고
    독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독은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위로는 받는 데는 때로 습관과 훈련
    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상황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22장 39절 말씀에 보면 "(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
    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 무릎
    으로 나아가는 것은 평소에 잘 훈련된 습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든지 갑자기 하려고 하면 잘 안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길 드려진 일이라면 위
    급할 때도 더듬거리지 않습니다. 평소 잘 길 드려진 기도의 습관은 위급할 때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위로 받을 수 있는 성도의 가장 큰 비밀 무기 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힘들지만 매일같이 하는 새벽기도의 습관은 어느 날 갑자
    기 나와 가정에 불어닥친 큰 고난을 하나님 앞에서 위로 받게 하는 비밀무기가
    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 위로 받는 비결 그 세 번째 비밀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줄 알
    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확신할 줄 아는
    것 저는 이것이 고통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비밀중의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
    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정말 힘든 것은 이 고통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고통이 아무런 의미 없이 당하는 고통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들 때입니다. 그
    러나 그 고통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힘든 것이어도 '이 고통이 의미가 있
    다, 견딜 만한 의미가 있다' 이것만 확신 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이 어떠한 고통
    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뚫고 나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내
    가 격는 이 고통의 진정한 의미만 확인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말입니다. 환자가 뱃속에 큰 혹이 나있습니다. 그러나 칼로
    수술을 해서 그 혹을 떼어냄으로 내가 건강해 질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소망
    이 있기 때문에 환자는 수술의 고통을 참고 견디어내는 것이 아닙니까?

      본문 36절에 보면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
    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
    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다같이 따라합시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은 생각하셨을 겁니다. 십자가 앞에서 이것이 무슨 뜻이 있을까?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내가 이 수치를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그리고 내일 아
    침이면 저 십자가에 잔인하게 매달려야 하는 것.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주님은 마침내 거기에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맞아, 그것
    때문에 나를 보내신 거야 나는 십자가에 달려야 해, 그래야 내 피로 모든 사람
    들의 죄를 속죄하고 사람들이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구속함을 받고 속량함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하나님 안
    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만들 수가 있어, 나의 죽음이 저 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십자가를 받아 들여야해. 아마도 주님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뜻을 알면, 내 고통의 의미를 알면 우리는 고통과 대결할 수 있습니
    다. 내가 겪는 이 불가사의한 고통도 억울해 보이는 이 아픔도 결국은 하나님
    의 뜻을 이룬다는 확신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는 믿음이 있다면 우
    리는 이것이 하나님이 영광을 위하여 아름다운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이 모
    든 고통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저 유명한 아프리카의 선교사 리빙스톤이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수차례 목숨
    의 위기를 겪어가면서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고 선교를 계속했던 이유가 뭐냐
    고 물었을 때 그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내 머리 속에
    서 한 순간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이 생각으로 일해 왔습니다. 뭡니까?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사명이 다하기 전까지는 나는 결코 죽지 않는
    다고 확신했습니다.'  'I  shall not  die untill my work is done.' 하나님의 사
    역이 나에게 주신 그 미션이 다할 때까지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던 그것. 주께서 뜻이 있어 나를 이곳에 보내셨
    다. 그러면 그 뜻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다. 그것이 그를
    힘있고 용기있고 능력있게 만들었던 비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은 고통입니다. 쉴 새없는 고통이 우리를 아프게하고 우리
    를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만 있다
    면 이 아픔을 함께 나눌 사람만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
    에 내 고통을 아뢸 수 있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살아 있다면,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만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앞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
    다. 고난과 슬픔의 때 서로 의지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
    기를 기도합시다. 설령 우리 곁에 아무도 없을지라도 주님과 같이 하나님 앞에
    무릎 끓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합시다. 갑자기
    고난을 당하더라도 평소에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습관이 있어서 하나님앞에 나
    아가 위로 받은 수 있는 비상체계를 구축해 둡시다. 고통속에서 나를 향한 하
    나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순복하는 믿
    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기도: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으로부터 고난의 때에 위로 받는 비결을 가르침 받게 하시오니 감사 하
    옵나이다. 우리에게 고난의때에도 함께할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을 주옵소서. 내
    가 이웃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고난의 때에 위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게 하시고, 주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함으로 고난의
    때에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함으로 위로
    받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 0 ...

분류  제목  등록일 
분류 없음 2013.02.07
분류 없음 2013.02.07
분류 없음 2013.02.07
분류 없음 2013.02.07
분류 없음 2013.02.07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