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칠언(마가복음 15:33-37) [고난주간]
  • 2013.02.07 22:45:55
  • 2차세계대전 말 패색이 짙어가던 일본은 『가미가제』라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미군군함의 굴뚝으로 들어가서 자신과 비행기를 폭발시켜 적군함의 엔진을 파괴하도록 했습니다. 가미가제란 『신의바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섬나라인 일본은 태풍의 피해가 그 어느곳 보다도 심한 곳이기 때문에 태풍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의 존재를 신격화 시켜서 그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출격하기 전에 천황이 내리는 술잔을 받고 『천황만세』를 외치고 나도 죽고 남도 죽이는 『잔인한 잔』을 마시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쓴잔을 앞에 놓고 할 수만 있으면 그 잔을 피할 수 있게해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이 마신 잔은 자신은 죽으나 남은 살리는 『생명의 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예수님조차도 마시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로마에서는 반역죄인들을 처형하는 두 가지의 사형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십자가형과 죽은 송장을 산 사람과 결합하여 묶어 놓음으로서 냄새와 질식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이 몸서리치는 쓰라린 고통이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하여서 십자가를 질 힘을 얻게되었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 유명한 소위 『가상칠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첫째말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3-34)』. 불교의 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慈悲』가 됩니다. 유교의 정신을 요약하면 『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정신은 『愛』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랑치 않으며, 겸손하며, 무례하지 않습니다. 인내하고 관용하고 용서합니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나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지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 안에 믿음이 있고 사랑 안에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대의 복수는 『용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최대의 폭군이라는 연산군은 본래는 심성이 착했으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일을 안 이후로 복수극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쓴 마지막 글은 『용서』라는 글귀를 남김으로서 용서야말로 가장 큰 복수임을 암시해 주었습니다.

    둘째 말씀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2-43』. 성경은 구원의 책입니다. 인간은 끝없이 반역하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용서와 사랑과 인내를 통해서 죄범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는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대상자는 흉악무도한 강도입니다. 세상에서 살 때에 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망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과 질투만 받아 오다가 결국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마지막에 예수를 믿게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을 가룟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3년간 따라 다녔지만 구원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최대의 행운의 사나이는 바로 이 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은 처음도 중요하고 중간도 중요하지만 끝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구원은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된 고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셋째말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19:26-27』. 기독교를 오해하는 사람이나 비난하려는 사람들은 「불효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기독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효를 강조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첫 계명을 『부모공경』에 두고 있으며, 신약에서도 부모공경 사상은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형수를 아들로 둔 부모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형수의 부모는 그 아픔을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조차 없습니다. 어디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없습니다. 아들을 잃고도 오히려 말한마디 할 수 없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이 아픔을 예수님은 아신 것입니다.

    넷째 말씀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마 27:45-46』. 이 말은 순수한 아람어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일상언어가 아람어였습니다. 사람이 이성을 잃어버리면 본능적인 절규가 나옵니다. 그 사람의 성품을 알려면 함께 술을 마셔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성을 잃을 정도가 되면 본심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버림을 당하는 순간입니다. 왜 하나님은 독생자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죄의 심각성을 모르고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아들일지라도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있는 아들까지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심각성입니다.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죄의 심각성을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말씀 -『내가 목마르다, 요19:30』. 교회사에서 가장 긴 시간동안 그리고 가장 격렬하게 논쟁되었던 교리는 기독론이었습니다. 기독론의 핵심은 『예수가 신이냐 인간이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신이라면 인간예수는 부정됩니다. 반대로 만일 그가 인간이라면 신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신이면 목이 마를 이유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단순히 죽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체중 때문에 찢어지는 못 박힌 손발의 엄청난 고통, 혈관의 팽창, 근육경련, 호흡곤란, 갈증, 이런 고통들이 순서도 없이 밀려오고 밀려옵니다. 피와 물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총 맞은 병사가 갈증을 호소하듯이 예수님은 목말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참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말씀 -『다 이루었다, 요19:30』. 요한복음 20장 31절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하였고, 요한일서 3장 8절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을 정리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은 마귀를 멸하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곱째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눅23:46』. 십자가를 앞두고 갈등도하고 고민도하였으나 아버지의 뜻을 명백히 이해하고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전적인 순종을 통해서 구원사역을 완성하시고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마귀가 틈타지 않도록 공조를 굳건히 하는 믿음직한 모습을 봅니다.

    사람은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할 때에 원망이 나오기 쉽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쓸 때 분노와 원망이 나옵니다. 만일 그 순간을 이기지 못하여 변절한다면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하도록 허락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욥을 믿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욥은 그 극한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치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탄은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러온 사탄도 더 이상 시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물러갔습니다.

    십자가위의 일곱 말씀은 너무도 유명하여 매년 이때가 되면 재음미해보는 귀한 말씀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승리했듯이 십자가로 승리하시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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