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지로 진 십자가를 통한 복 (막15:21-23)
  • 2013.02.07 22:38:46
  •  소인과 대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능력에 따릅니다. 소인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대인은 자신의 욕망을 사회 도덕적 욕구에 따라 절제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신의 감정도 잘 통제할 줄 알 때에 보통사람과는 다른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소유욕을 비우지 못하면 절대로 남을 도울 수 없습니다. 이런 삶은 하루 아침에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훈련을 잘 받은 개는 며칠을 굶긴 다음 맛있는 고기를 던져도 주인이 먹으라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이런 개는 아주 비쌉니다. 중동지역에서 아주 비싼 말은 우리 돈으로 수십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말은 어떤 말인가 하면 며칠씩 물 한방울 안 마시고도 사막 길을 달려온 뒤에 물가에 갖다놓아도 물을 안 마시고 주인의 허락만 떨어지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말은 겨우 몇백 만원 고기값에 불과한데 자기의 욕망과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말은 수십억원을 한다고 하니 짐승도 그런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의 가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욕망 때문입니다. 인간을 아름다운 인간으로 값비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절제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의 가치는 하나님이 매깁니다. 하나님이 값을 매기는 기준은 우리가 얼마나 영적인 존재로 사느냐 아니면 육적인 존재로 사느냐에 따라서 값이 달라집니다. 인간이 타락한 것은 육적인 삶에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모습으로 살면 우리는 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의 육신적인 삶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은 짐승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서8:5-8절 말씀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육신적인 삶의 자리요, 육신적인 삶의 욕망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결국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기분 좋게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라도 지지 않으면 질 수 없는 무겁고 힘든 것이 십자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위로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에 밤새도록 심문과 고문을 받으며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지친 모습으로 자신이 매달려죽을 십자가, 그 십자가 중 양팔이 달릴 가로횡대 20kg을 지고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예수님을 심문하고 골고다 언덕으로 인도하던 로마 군인들이 곁에 따라가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억지로 데려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가게 했습니다. 여기서 구레네라는 지역은 아프리카의 한 지명으로서 오늘의 리비아 수도인 '크리폴리'입니다. 당시에 핍박으로 흩어진 유대인 즉 디아스포라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아스포라 중의 한 사람으로서 아마도 유월절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날벼락을 만난 것입니다. 누구도 질 수 없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기분 나쁜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시몬을 소개하기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라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시몬의 이름이 유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후에는 그의 아들들도 유명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녀들까지 언급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보면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루포도 믿음의 생활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즉 시몬의 아내도 아주 자상한 분으로 바울에게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문안하라고 할 때 그 문안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이자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어머니로 불렀습니다. 시몬의 아내가 믿음의 어머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불가항력인 은혜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오히려 나는 싫어해도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받고 보니 좋은 것이었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이 져야 할 십자가를 억지로 졌기 때문에 그는 메시야를 믿게 되었고 그 후손들까지도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전해진 엄청난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물론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이 없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해서 안해도 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은 나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종된 삶입니다. 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은 일이라 할지라도 종된 신분으로 안할 수 없고 억지라도 하면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더욱 편안해 집니다.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고 원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만 일한다면 이 사회는 지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과 살고 있는 삶들이 여러분이 기분 좋아서 하는 일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일이 몇%나 될까요?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 억지로 할 때가 많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 공부하고 싶어서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요? 전부 놀고 싶고 다른 것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러나 억지로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하는 것입니다. 군대생활 하기 좋아서 하는 군인들이 있습니까? 아마도 거의 전부가 하기 싫지만 의무니까 억지로라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군대생활 하고 제대해 나올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부대를 향하여 오줌도
    안 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꼴도 보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상일도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하면 유익이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공부도 그렇고 직장 일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억지로라도 하면 유익이 없겠습니까?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더니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와 자손들의 이름까지도 유명해졌습니다. 믿음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억지로라도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억지로라도 하면 복이 되는 일이 무엇일까요?

       첫째, 주일성수와 예배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1783년 5월 24일 삼일저녁에 그날 따라 삼일예배에 가기가 몹시 싫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발길을 옮겨 간 예배당이 올더스게이트에 있는 한 작은 모라비안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도 아닌 평신도가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어 내려갈 때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듣고 깨달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회심하는 체험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수요일 저녁에 억지로라도 교회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감리교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나갔기 때문에 큰 은혜를 체험하고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가기 싫을 때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때 빨리 수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귀사탄이 나를 넘어지게 만들려고 하는구나!'라고 말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주일날에 교회 가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이 많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하기 싫어도 해 보세요. 교회 가기 싫을 때 가보세요 반드시 은혜 받습니다.
        오늘 혹시 교회에 오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오신 분 계십니까?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영이 살려면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오늘날 육신의 일을 따라 가도록 유혹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사야 58:13-14절에 보면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네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 입의 말이니라" 고 했습니다. 레위기 16:31절에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안식일을 스스로 괴롭게 하면서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금식도 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절제하면서 경건한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주일을 편안하게 보내려면 안됩니다. 물론 안식일은 쉬는 날이요 오늘의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로서 영광의 날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온전한 영광의 자리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 땅위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가고 있는 중에 있음을 인식하고 항상 온전히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일날에 돈을 버는 것은 내것이 안됩니다. 출애굽기 16:26-7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에서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만나를 주셨는데 제 칠일에는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날은 없으리라 했지만 말씀을 제대로 믿지 못한 사람들이 일부가 제 칠일에 거두러 나갔다가 결국은 얻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일에 무엇을 해면서 보내야 합니까? 첫째는 예배입니다. 에스겔 46장 3절에 "이땅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통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둘째는 성경을 읽으십시오. 사도행전 15:21절에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선한 일을 하십시오. 마12:12절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네 번째는 성경공부하십시오. 막1:21절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십시오. 전도하시든지 환자를 심방하십시오. 마가복음3:4절에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일과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 복음을 전하십시오. 사도행전 18:4절에 안식일 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
    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육신의 쾌락을 위하여 오락을 행치아니하고 관광가지 않고 돈벌로 가지 않고 잠자지 않고 억지로라도 주일을 지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둘째, 헌금생활은 억지로라도 하십시오.
    고린도후서 9장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헌금은 미리 준비된 것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정한대로 하고 인색함으로나 억지로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기쁨도 없고 감사할 마음도 안생긴다고 해서 헌금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가끔 있는 일이지만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드리는 헌금을 5천원정도 보통 하는데 어떤 날은 집에서 미처 준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꼭 보면 시험들기 알맞게 지갑에는 만원짜리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에 아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색함으로 내는 것을 즐겨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이런 마음으로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안합니까?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또 합니다. 아무리 십일조 생활을 잘 하는 가정이라 해도 돈이 궁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십일만 있어도 궁색한 것을 면할 수 있을 텐데 이달은 그냥 지나갈까 라고 생각하다가 하나님은 이런 마음으로 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낸들 뭐하겠노 라고 생각하고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에 재미가 붙어서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십일조생활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저희가 십의 2조를 지난
    해부터 했습니다. 금년에는 건축헌금을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람에게 '금년부터는 십일조만 합시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늘어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모양으로라도 채워주실 줄 믿고 합니다. 할렐루야! 억지로라도 하면 내게 복이 됩니다. 그것이 신앙의 성장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건의 훈련은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어느 단계에 이를 때까지는 억지로 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처음 시작할 때 말씀을 듣고 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하지만 얼마나 힘드는지 모릅니다. 처음 십일조 하면 절반 뚝 잘라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하다보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그 다음에는 믿음으로 합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억지로라도 감사해 보십시오. 그럴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형편상 도저히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없을 때 억지로라도 힘들어도 빚을 지면서 까지도 해 보십시오. 그때에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십일조 생활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나 안주나 시험해보라고 하시면서까지 억지로라도 하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진 구레세 시몬의 십자가가 결국 그와 그 가문을 구원시켰듯이 억지로라도 하나님께 십일조와 감사헌금, 선교와 장학헌금, 건축헌금 수재민 돕기헌금 등을 하면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면 자란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과 삶을 부요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 억지로라도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찬송을 부릅니다. "기도하는 이 시간 내게는 가장 즐겁다" 기도하는 시간이 즐거워야 합니다. 그래야 텔레비전도 이길 수 있고 취미생활도 이길 수 있고 세상 친구들과 노는 것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기도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다른 교회는 금요기도회도 없다는데, 다른 교회는 특별새벽기도회도 없다는데 기도를 꼭 새벽에 해야 하는가? 기도를 꼭 교회에 가서 해야되는가? 라고 생각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면 됩니까?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동네 한바퀴 빙돌고 바람을 쉬고 오면 잘됩니까? 기도가 안될수록 억지로라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막힌 기도가 뚫립니다. 억지로 기도하러 올라갔다가 방언의 은사를 받고 억지로 기도하러 갔다가 은혜를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단은 기도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기도하지 은 신앙인 을 절대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도 기도하는 사람을 사단은 제일 무서워합니다. 기도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도 중노동입니다. 그러나 기도해 보세요. 새벽기도 해보세요. 마음이 정결해집니다.
    머리가 맑아집니다. 정신이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귀가 뚫립니다. 그리고 하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단은 술마시고 고성 방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고함지르며 싸우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소리내어 기도하는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모릅니다. 새벽기도 억지로 해보세요. 저녁기도 억지로라도 해보세요. 기도가 여러분의 인생을 바꿉니다.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10월1일부터 신약성경통독
    특별새벽기도회를 갖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하십시오. "이번에는 내가 꼭 하리라 그리고 빠지지 않고 하리라"

      넷째, 봉사는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마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기왕 하는 것 십리까지 가 주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봉사하는 일 억지로라도 하십시오. 아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거든 시키는 일보다 더 많아 하십시오. 사람에게 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일입니다. 교회 봉사도 그렇고 이웃에 봉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분 좋으면 봉사하기 쉽습니다. 내가 여유가 있으면 봉사하기 쉽습니다. 반면에 하기 싫다고 하던 봉사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결단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하십시오. 
       여러분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렙다 과부와 엘리야 선지자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사르밧에 한 과부가 살았는데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가뭄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가루 한 움큼과 기름조금 있는 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는 죽을 날을 기다리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엘리야가 나타나서 그 남은 가루로 떡을 만들어 먼저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가루통에 그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이 여인에게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기분 좋게 떡을 만들어 자신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아들도 주지 않고서 엘리야에게 가져갔겠습니까? 억지로 가져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과부의 아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그 아들에게 떠난 영혼을 도로 돌아오게 하여 살렸습니다. 그때에 이 여인이 고백하기를 "이제야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함을 믿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떡을 만들어 가져올 때는 반신반의한 생각으로 기왕 죽는 것 한번 해보자 하고 억지로 떡을 구워서 가져왔다가 큰 복을 받아 가뭄 속에서도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봉사한다면 평생에 봉사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요? 하루에도 우리 마음이 몇 번씩 변하는데 일하다가 하기 싫다고 안하고 오고 오다가 다시 마음에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다시 가서 봉사한다면 아마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심부름을 억지로라도 하면 대가가 주어지거늘 하나님 일을 위하여 봉사할 때 하나님이 갚아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억지로 해서는 안될 일이 있습니다. 벧후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  성경 해석하는 일만큼은 억지로 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망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를 억지로 졌을 때 복을 받았듯이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 주일성수와 예배드리는 일, 기도하는 일, 찬송부르는 일, 헌금하는 일, 봉사하는 일 등은 억지로라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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