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족을 주고자 하여(막 15: 6-15)
  • 2013.02.07 22:26:46
  • 우리나라도 삼일절.광복절.성탄절등의 절기를 맞으면 특별히 가석방을 하듯이 유대나라도 매년 특별한 절기를 맞을때에 죄수 한사람씩을 놓아주는 예가 있었습니다
    이때 유월절 명절을 맞이했는데 석방될 인물이 두 사람 등장하게 됩니다. 한사람은 메시야인 그리스도요 또 한사람은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쿠테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한 사람, 민란의 선동자로서 수감된 바라바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가서 금년에도 전례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달라고 총독 빌라도에게 요구할때에 그들의 심리를 짐작한 빌라도는 일부러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니 대제사장이 군중을 충동하여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하니 그때에 군중은 다시한번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본문 15절에는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주니라고 하였습니다.

    1.하나님께 만족을 주는 사람
    만족이라는 말은 행복이라는 말만큼 사람들이 바라는 것입니다. 무슨일에도 만족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닌 까닭에 만족감은 항상 갖기가 힘든것입니다. 만족감이란 말은 쉽게 말하면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사탕을 사먹기위해 1000원을 달라고 할 때 2000원을 받게되면 아마 그아이는 만족감을 느낄수 있을것입니다. 성도는 당연히 하나님께 만족을 주고자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복음서를 통해서 아는대로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도 제자들이 주님의 마음을 만족하게 해드리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대답을 들으시고 만족하셨습니다. 또 예수를 따르던 군중들이 주님의 곁을 떠나갈 때 너희들도 가고자 하느냐 하시니 제자들은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할 때도 주께서는 만족하셨습니다. 또 나사로의 가정에 가셔서 분주히 일하는 마르다보다 주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듣고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실 때 주님은 만족하셨습니다.
    항상 주님께 만족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바벨론 왕 다리오가 다니엘을 수상으로 삼고자 할 때에 120방백과 총리 두 사람이 다니엘을 시기해 30일간 왕외에 다른사람이나 다른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진다는 금령을 반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 다니엘은 다리오 왕이나 하나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3번씩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사나 죽으나 일편단심 하나님께만 만족을 드리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2.적당히 만족을 주는 사람
    대다수의 사람들이 적당히 만족을 주고자 합니다. 우리말 기묘한 말은 '적당히'라는 말입니다. 원래의 뜻은 '알맞게'라는 말로서 좋지못한 말은 아니었을 것인데 요사이에는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부당한 방법으로 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성도들이 적당히 믿는다는 것은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도 적당히 세상에도 적당히 만족을 주고자 합니다. 세상에서는 인정이 통하고 사정이 통하고 적당이 통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앞에서는 이런것들이 통하지 않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 좋은 예가 됩니다. 또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도 역시 그러합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도 적당히. 세상에도 적당히 만족을 주고자 하지는 않았습니까?

    3.세상에 만족을 주는 사람
    하나님께만 만족을 주는 사람이 신앙제일주의자라고 하면 적당히 믿는사람은 기회주의자요 중립주의자요 세속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를 어떻게 처우해야 하느냐고 군중에게 물을때에 군중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게 하니라 했으니 , 그 결단의 순간에 빌라도는 바로 세상을 무서워하여 세상에 만족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충분히 인정했건만 그 지위에 변동이 생길까봐. 민란이 날까봐. 신상에 해로울까봐. 당연히 죄없는줄 알면서. 불의의 처사인줄 알면서. 부당한 판결인줄 알면서도 그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석방하고 예수는 십자가에 넘긴것입니다.
    고로 빌라도는 오고오는 세대에 걸쳐 수많은 성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사실을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군주의 소리. 불의의 소리. 부정의 소리. 사탄의 소리가 이겼습니다.
    여러분이 빌라도와 같은 자격으로 제판장의 입장에 있다면 분명히 결단성있게 주님께 만족을 줄 수 있다고 장담하십니까?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아 적당히 세상세만 만족을 주지 않았는지 살피면서 남은 인생은 하나님께만 만족을 드리고자 하는 다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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