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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기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재판을 받으시고 사형장인 골고다로 올라가는 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관련하여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삼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그들은 겟세마네 동산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죽음과 같이 하겠다고 큰 소리친 베드로마져 끌려가는 예수님의 뒷 모습만 보다가 계집 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돌아섰습니다.
평소 예수님을 사모하면서 따르던 여인들 몇 사람은 십자가 밑에까지 가서 통곡하며 가슴 아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비웃으며 조롱하였습니다.
이와같은 분위기 속에서 유독 구레네 사람 시몬의 행위는 특이한 사건이었습니다.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를 등에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님이 기진 맥진하여 쓰러지곤 하실 때 그 옆에서 따라가던 구레네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였습니다.
구레네 시몬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여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 주간을 당하면서 잠시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였던 구레네 시몬의 사건을 교훈삼아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우연히 일어난 사건입니다.
시몬은 아마 그날 아침까지도 자기가 십자가를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북쪽 현재의 트리폴리(Tripoli)라 불리우는 구레네에 거주하는 유대인으로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순례자였을 것입니다.
하여튼 그는 자기의 뜻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운반하였습니다.
시몬의 입장에서 볼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한 순간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이와같은 일들이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결혼하는 것, 사업하는 것, 그리고 성공과 실패하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모두 자기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우연히 되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우연히 당한 일이 엄청난 축복으로 연결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에게는 대수롭지않게 여겨졌던 일이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결과를 빚어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관여된 사람들 중에 가롯유다는 은 30에 스승을 팔아버린 자로 악명을 남기게 되었고,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언도하였기 때문에 신자들의 입에서 두고두고 그 이름이 예수님을 죽인 자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던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쳐다보는 순간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되었으며 여기 구레네 시몬은 우연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함께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어느 것도 자기의 계획에 의해서 되어지지 않은 것이며 우연한 일들이었습니다.
(1)인간은 자기의 의지대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매사를 자기의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가장 정확하고 자기의 도덕률이 완전한 것처럼 여기는 나머지 완벽한 자기 계획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이나 교회가 제시하는 신앙생활의 요목들까지도 자기의 판단에 따라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모든 신앙행위는 강요되거나 억지가 되어서는 안되고 오직 자기의 기준에 맞아서 기쁜 마음으로 하여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오히려 인간의 불완전성을 전제하면서 신앙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고 하나님의 강요에 이끌려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은 자도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14: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하였습니다.(요 21:18)
(2)원대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엉겹결에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구레네 시몬의 편에서는 우연히 된 사건이지만 하나님편에서 보실 때는 조금도 어김없이 진행된 그의 계획이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왕국 초기 사울은 아비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사무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때를 이용하여 사무엘로 하여금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삼상 10:1)
신약의 바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열심있는 바리새파의 율법주의자였던 청년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멸하고자 다메섹으로 가던 중 대낮에 큰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 밖의 사건에 접하여 정신을 잃었던 그는 그때부터 선지자 아나니아가 시키는대로 행동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자로 돌변해 버렸습니다.
이 사건도 역시 사전에 계획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행 9:15)
이와같은 원리에서 볼 때 그리스도와 관련된 사람에게는 어느 것도 우연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다윗의 경우 자기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앉고 일어서는 것까지 다 헤아리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시 139:1-2)
(3)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인간의 무능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강조했던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기 백성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선을 이루도록 작용하신다고 말했습니다.(롬 8:28)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자기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하나님을 위해 기여하는 일을 하게 되었기에 이것이야말로 매우 선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 정부의 사형제도 가운데 십자가형이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한 제도였습니다.
십자가의 죄수는 자신이 달릴 십자가 형틀을 어깨에 메고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손과 발에 못을 쳐서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피와 기름이 빠지고 그 상처의 고통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겪어야되는데 어떤 경우는 운명하는 시간이 이틀이나 삼일까지도 간다고 합니다.
(1)예수님의 고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그의 좌우에 강도들도 같이 달렸습니다.
예수께서 강도들과 같은 취급을 받으신 것입니다.
또 유대인과 로마인 등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저주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까지 가중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옆에 있는 강도들과 달리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극형을 받을만한 죄가 없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거짓 증인까지 세워놓고 예수님을 정죄하였으나 죽일만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집정관 빌라도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요 18:38, 19:4, 6)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남을 위해 겪으시는 대속의 고난입니다.
이사야 53: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십자가의 의미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부각되었습니다.
곧 저주와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희생과 평화의 상징으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2)성도가 동참할 수 있는 고난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다고 하는 것이 근본적인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덜어준 것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잠시나마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에게는 보람이요 영광이었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1:24절에 보면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인 복음 전파와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성도의 신앙행위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하는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3. 자손에게까지 미치는 축복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에게 영광과 축복을 약속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4:13절에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1)하나님의 보상원리
구레네 시몬의 예수님의 십자가 동참은 그 자신의 명예로운 이름과 함께 후손들에게까지 계대하는 축복을 남겨 주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마 10:40)
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10:41)
그렇다고 볼 때 시몬은 상을 받기에 충분한 일을 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그 당시에는 잘못 걸려들어 억지로 진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보상 자료에 수록되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3:2절에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했습니다.
(2)자손이 받은 복입니다.
성경의 기록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시몬이 신자가 되었고 그의 아들들이 초대교회에 명성을 떨친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일러 줍니다.
본문 말씀 21절에 "알렌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시몬"이라고 한 것을 보아 구레네 시몬에게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두 아들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성경 기자는 알렉산더와 루포에 대한 소개가 없이 이름만 밝힌 것으로 보아서 이미 그들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잘 알려진 저명인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보낸 문안 인사 중에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한 말입니다.(롬 16:13)
알렉산더라는 이름은 성경에도 나오지만(행 19:33, 딤전 1:20), 이는 흔한 이름이기 때문에 시몬의 아들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루포가 시몬의 아들이라는데는 일반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훗날 로마의 성도들에게 보낸 글 마가복음이나 바울서신에 루포의 이름이 기록되고 바울로부터 문안받을 만한 인물이라면 신약교회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시몬의 아내를 바울이 자기의 어머니라고 불렀다면 그들은 신앙적으로 존경받은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시몬은 어쩌다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을 목도하게 되었고 그 중에도 잠시동안 그 십자가를 대신졌지만 그는 후대에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이름이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자손손 경건하고 복된 인물들로 기록에 남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후대에까지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으로 담당하는 자들에게 이 복된 주님의 약속은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분류 | 제목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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