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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92. 요단강을 건너라(수 3:4-7)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187, 2017.10.12 20:51:11
  •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관한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려 40년을 돌고 돌아 이제야 건너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감격스러운 순간이니까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철저하게 잘 준비하여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는 시간, 때부터 뭔가 잘못 된것 같습니다. 우리 같으면 강의 물이 좀 얕아지는 그런 때를 택해서 건너도록 계획할텐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라고 하는 시기는 물이 제일 많은 때였던 것 같습니다. 5절에 보니 강물이 언덕까지 넘칠 지경인 그런 때입니다. 강에 물이 많은 것은 그만큼 유속도 빠르다는 것입니다. 강은 원래 그래요. 산골짜기에서부터 물이 흘러내려 강에 이르고 그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흐르는 물인데 물의 양이 많으니까 얼마나 물살이 쌔겠습니까? 대단히 위험합니다. 하나님이 왜 하필이면 이 때를 정했느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환경을 보장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하나님만 믿도록 우리를 거친 환경 가운데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환경과 조건 탓만 하고 있으면 우리가 일을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거친 것이 없는 넓고 형통한 길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친 환경, 가시밭길이라도 이기고, 승리하고, 극복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하자원과 땅이 좋아서 선진국이 된 나라도 있으나 거친 산악을 깎고 환경을 개척하여 오늘날 선진국이 된 나라들도 많습니다. 오히려 땅이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하고 기후조건도 좋아 부자나라가 안 된 것이 신기할 정도인데 그렇게 가난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환경과 조건이 복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환경, 조건을 뛰어넘는 자들에게 복이 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직도 자기가 잘 되지 못한 것을 두고 남 탓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러면 안 됩니다.


    또 요단강을 건널 때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 제사장들이 법궤를 어깨에 메고 그 위험한 요단강에 물을 담그라고 하나님이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함을 가르쳐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교회에는 신앙에 솔선수범하는 지도자들이 있어야 성도들이 담대하게 뒤따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수아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없습니다. 여호수아도 제사장들과 앞장을 서서 강물에 발을 담갔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건 별로 중요한사항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교회에서 지도자여야할 사람들이 성도들에게 본을 잘 보이지 못하므로 성도들이 믿음을 배우지 못합니다. 여기 본문의 제사장들처럼 믿음으로 무장하여 위험에 뛰어들어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어야 할 교회의지도자들이 불신, 갈등만 조장하고 믿음을 보이지 못하니 성도들이 믿음을 배우지 못하고.... 그 결과 교회가 자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제사장들이 법궤를 어깨에 메고 백성들 앞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앞세우는 신앙을 나타냅니다. 요단강 물 때가 얕고, 깊고... 언제가 도강하기에 적합하고...하는 이런 것보다도 하나님을 앞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계획은 장황하게 많이 세우나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들이 아쉽습니다. 오히려 기도하라 그러면 바빠서 기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도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루에 2시간 이상 기도하도록 노력해라. 그러나 바쁘다면 하루에 3시간 이상을 기도하라'


    에디슨은 어떤 일을 이루는데 99%의노력에 1%의 영감....이것이 성공을 이루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바꾸어보면 아무리 99퍼센트의 노력이 있다고 해도 1%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성공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채우시는 1%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필수요소입니다. 그리고   0이라는 수와 1, 2.... 라는 수를 생각해 봅시다. 0이 어디에 오느냐에 따라 그 숫자가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아무런 가치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0이 다른 숫자 앞에 온다고 할 때 아무리 0 이라는 숫자가 많이 와봐야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하나님은 실수와 같은 분이시고, 우리는 0과 같은 존재여서 하나님이 우리 앞에 서야 우리의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하나님만 앞세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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