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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8. 사사 입다(삿 11:1-3)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71, 2017.11.06 22:41:33

  • 사실 삼손을 마지막으로 다루고 사사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이 입다라는 사사의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삼손 이상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입다예요. 그래서 이 재밌는 입다 이야기를 넘어갈 수 없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입다는 므낫세 자손 길르앗의 아들로 기생과 관계를 맞아 출생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천대를 받아 그의 배다른 형제들로 인하여 그 아비의 집에서 쫓겨나서 부랑배들을 이끌고 다니는 일종의 비적패 같은 존재였습니다. 불량배들을 모아 비적패의 두목으로 살던 입다는 마침 암몬 민족과 이스라엘 사이에 영토 분쟁이 일어나자 길르앗의 원로들에 의해 이스라엘 군대의 장군으로 추대를 받는데 처음에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아니 나더러 천하디 천한 놈이라고 가문에서 쫓아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아쉬우니까 딴소리냐?"고 따졌지만 "암몬족을 치면 지도자로 받들리라" 는 그들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입다는 암몬족 왕에게 사절을 보내 "일전에 너희들이 우리더러 자기들 땅에 못 들어오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우리가 기껏 이 지역을 싹 청소해 놓으니까, 지네 땅 침범한 거라며 돌려달라고 우기는 건 무슨 심보냐?" 하며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러나 암몬족 임금은 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고, 이에 따라 입다는 암몬군의 배후를 치면서 아로엘에서 민닛 어귀에 이르기까지 스무 성읍을 함락하고 아벨그라밈까지 진격하여 초토화시키는 아주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미스바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그의 가정에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는데 만약 전쟁에서 이길 시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일 처음 집의 문을 열고 자기를 맞아주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자기의 딸이었습니다. 고작 집에서 나오는 사람이라 해 봐야 하인 따위라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의 딸을 울면서 여호와에게 바치는 비극을 체험하게 되었죠. 이는 아마도 입다가 이방종교문화에 물들어 인신공양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산채로 자기 딸을 정말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렸을까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사람을 제물로 태워서 드리는 것을 이방인의 우상숭배로 여기며 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냥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바쳐져서 평생을 처녀로 살면서 성전봉사에 수종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신학적인 문제니까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 다음에 에브라임 지파의 소행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이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12 부족 중 가장 강성한 부족인데 요셉의 둘째아들 에브라임의 후손을 자처하는 부족으로, 이들은 조상 요셉이 야곱에게서 장자권을 받은 것을 근거로 다른 부족들을 멸시하는 패권적인 태도를 보이곤 하였습니다. 선대의 기드온 때에도 자신들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고 미디안 족과의 전쟁을 한 것을 문제 삼아 기드온을 치러 왔다가 기드온이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서 싸움 없이 물러간 적이 있었는데, 입다에게도 똑같이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심하게 농사를 짓고 살던 기드온과 달리 원래 비적패 두목이었던 입다에게는 협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싸움에 나와서 도아달라고 요청을 해도 콧방귀만 끼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이 무슨 트집이냐고 하면서 입다는 길르앗 전군을 이끌고 에브라임과 싸워 격파하였습니다. 에브라임에서 도망친 길르앗 놈들... 이렇게 에브라임 지파로부터 조롱을 당했던 길르앗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서 입다를 도와 에브라임 지파를 아주 요절을 내죠.

    이제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 입다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사실은 함부로 맹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다는 맹세를 잘못함으로 무남독녀인 자기 딸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받쳐야 하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또한 자기 문제 아니면 뭐든 괜찮다는 생각이 함부로 사람을 제물로 비치는 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의 것이든 사람의 생명은 귀한 것인데.... 어찌 보면 그의 경박한 인명경시사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에브라임 지파가 한 소행은 아주 우리 마음을 언잖게 합니다. 에브라임은 자기들이 대접받기를 원하면서도 민족이 신음하고 고통 받을 때에는 자기들 살기 바쁘다가 사사들이 큰 공을 세워 형편이 좋아지니까 그만 배가 아파서 시비와 간섭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정말 싫죠. 대접을 받으려면 대접 받을만한 짓을 해야죠. 하지는 않고 대접받으려는 그런 심보는 반드시 화를 당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입다의 이야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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