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124. 사울의 등장(사무엘상 9:1-4)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182, 2017.12.03 19:18:24
  • 한 나라의 왕은 대단한 자리입니다. 왕은 지극히 늠늠하며 아름다워 사람들이 감히 범접하거나 우러러 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왕도 때로는 그 시작이 아주 평범하고 때로는 비천해보이기까지 하는 형편에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의 경우도 그러하였고, 두 번 째 왕 다윗의 경우도 그러하였습니다. 오늘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기까지는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사울의 첫 등장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면서입니다. 왕이 될 사람이 시시하게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찾으러 다닌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러나 이렇듯 존귀한 왕도 평범한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울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는데서 사무엘을 만나게 됩니다. 이는 사울의 두 가지 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착하고 순종적인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는 자녀들의 태도를 보면 각각 태도가 다를 것입니다. 사울이 그렇게 신분이 낮은 사람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할 때에 사환을 데리고 다녔다는 것은 그가 어느 정도 존귀한 집안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존귀한 집의 아들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따라 이렇게까지 먼 길을 다닌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아버지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아들이라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보통 사환이나 보내지 왜 나를 보내.... 이러면서 짜증을 내는 자녀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버지의 말씀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최대한 순종하려고 노력한 아들이기까지 합니다. 보통은 찾다가 없으면 돌아가게 마련인데 20절을 볼 때 사울은 삼일째 나귀를 찾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나귀를 3일이나 찾았다는 것은 그가 지극히 충성스러운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하루 종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2일, 3일이나 그 잃어버린 나귀를 포기하지 않고 찾는다는 것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임을 나타내줍니다. 그는 나귀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울이 하나님을 알고, 믿는 신앙의 사람임을 알게 해 줍니다. 사울의 종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환은 사울에게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소개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그가 말한 것은 다 이루어지고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환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에게 가서 암나귀의 행방을 물어보자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고집이 있었다면 사울의 말을 무시하였을 것입니다. 못 찾으면 그만이지, 하며 그냥 오던 길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환이 권한대로 아버지의 잃어버린 양을 하나님의 선견자에게 물으러 갔습니다. 또한 사울은 하나님의 종에게 갈 때 무엇을 예물로 가져갈까 물었습니다. 그는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 떨어졌으니 가져갈 것이 없음을 염려하였습니다. 주의 종을 찾아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섬기고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하심에까지 응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울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하는 신앙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이렇듯 자신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만나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됩니다. 사울 뿐만이 아니라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으로서 최선을 다한 다윗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는 한 마리의 양을 지키기 위해 곰, 사자와 싸운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돈을 주고 다시 사면 그만인 양 한 마리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다윗이 목숨을 건 것은 한 마리의 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에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어제 국민일보에 보니까 미국 하버드 대학에 SAT 만점을 받아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한 청년이 하던 공부를 중단하고 올해 10월달에 해병대에 입대한 사실을 소개하였습니다. 얼마든지 군복무를 피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군복무를 대체할 수도 있을텐데 그 어려운 해병대를 지원했느냐고 기자가 물었더니 자신에게 있어서 해병대 입대는 하버드 대학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목숨을 걸만하다고 대답하였답니다.


    어떤 사명, 어떤 자리이든 목숨을 건다는 것은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달란트 비유를 통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큰 것으로 네게 맡기겠다....’ 이런 주님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용한 말씀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만약 저와 여러분이 목숨을 걸고 한다면 존귀한 일이 되며 사람들은 그것을 위대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땅에 위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위대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위대할 뿐입니다.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94847
1988 주일낮 611
1987 주일낮 757
1986 주일낮 442
1985 주일낮 594
1984 주일낮 742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