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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5. 법궤를 옮기다 실패한 다윗(사무엘하 6:1-7)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785, 2018.01.14 21:13:58


  • 다윗이 어느 정도 통일왕국을 이루고 다윗성을 건축한 후에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에 모시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에 모시고자 한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셨다는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다만 정치적인 꼼수가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윽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법궤를 70년 이상이나 기럇 여아림 땅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었습니다. 기럇 여아림이나 바알레 유다는 같은 지역을 의미하며 바알레 유다는 기럇 여아림의 옛 명칭입니다. 이 기럇 여아림은 이스라엘의 땅이기는 하지만 블레셋과의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엘리의 두 알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의 전쟁에 법궤를 가지고 나갔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겨버립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 빼앗은 법궤를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의 신당에 두었는데 다곤신상을 박살내고,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므로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법궤를 수레에다 실어 벳세메스로 향하게 하는데 이렇게 해서 기럇 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의 집에 법궤가 모셔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기럇 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기기 위해 다윗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3만명을 뽑아냅니다. 자그마한 법궤 하나를 모셔오는데 3만이란 숫자는 너무나 과한 것입니다. 정쟁을 치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듯 큰 군사의 수가 필요했겠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럇 여아림, 즉 바알레 유다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블레셋의 공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한 방책으로 그만한 규모의 군대가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법궤에 대해 이스라엘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지파에서 3만명을 뽑아 올리게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백성들의 단합을 꽤하고 통일왕국의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뽑은 3만명을 이끌고 다윗은 기럇 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의 집으로 가서 새 수레에 하나님의 법궤를 싣고 아비나답의 두 아들 아효와 웃사가 수레를 끌게 합니다. 아마도 아효는 수레를 앞에서 끌게 하고, 웃사는 뒤에서 수레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법궤를 수레에 싣고 갈 때 함께 온 이스라엘 무리들은 수근 비파, 양금...등의 각양 악기를 연주하며 흥을 돋으며 거창한 행진을 만들어갑니다. 그런데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니 수레를 끄는 소가 무엇에 놀랐는지는 모르지만 펄쩍펄쩍 뛰면서 하나님의 법궤가 흔들리며 땅에 떨어지려고 하자 뒤에서 법궤를 보호할 책임을 맡은 웃사가 하나님의 법궤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손으로 법궤를 붙잡았는데 그만 하나님께서 치셔서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두려워하여 더 이상 하나님의 법궤를 옮길 흥미를 잊어버립니다. 그렇게도 거창하게 준비한 모든 일이 허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다윗의 간절한 열망에 찬물을 뿌린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하나님은 다윗을 기뻐하지 않은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7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그동안 율법에 대한 지식들이 잊혀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법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단지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신상을 수레에 옮기던 방식을 본받아 그대로 흉내를 내었던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법궤는 반드시 레위지파 중 고핫 자손들만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습니다. 이것을 다윗이 모르고 수레에 싣고 이동하니 이런 참사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열정, 그 어떤 뜨거움이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을 벗어나는 순간 그것이 어떤 정당성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율법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므로 이 순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법궤를 옮길 때에는 바른 방식으로 함으로 무사히 법궤를 다윗성에 안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가 우리를 이렇게 부끄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소홀히 함이 없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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